지난해 12월 28일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문'을 발표했다. 도발적일 정도로 전격적인 것이어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다수의 국민들에게 선전포고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야당 대표는 즉각 반대 성명을 내었고, '정신대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을 비롯한 많은 시민 단체들이 반대 시위에 돌입했다.
또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유흥식 주교)는 '한일 위안부 합의문'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며, 한일 양국의 정부 관계자들이 이 문제를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지난 4일 발표했다. 주교회의 성명은 한일 위안부 합의문의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서울 종로구 율곡로에 위치한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지키기 위한 학생들과 시민들의 행동은 연일 계속되고 있다. 한일 합의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는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 등 보수단체들의 거친 시위에 당당히 맞서는 '효녀연합' 등 청년단체와 시민들의 행동은 한결 뜨거운 기운을 발산한다.
소녀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노년층 보수단체들과 청장년층을 주축으로 한 시민단체들의 대립 현상을 보면서 나는 우습게도 위컴의 '들쥐론'을 상기한다. 조금은 엉뚱한 생각일 것도 같지만, 전적으로 생뚱맞은 것은 아닐 터이다.
새삼스럽게 36년 전 위컴의 '들쥐론'을 떠올리는 심정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가 정권을 찬탈할 당시 주한 미8군 사령관 위컴이 했던 말을 나는 확연히 기억하고 있다. 이른바 '들쥐론'이다. "한국인은 '들쥐'와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건 그를 따른다"라는 말이었다.
좀 더 명확히 풀어 말한다면, "한국인은 '들쥐근성'을 가지고 있어서 누가 어떤 방법으로 지도자가 되건 전후좌우를 따지지 않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도 못하고, 설혹 그름을 알더라도 전적으로 그를 따르고 복종하며 충성한다"라는 뜻일 터였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모욕감으로 치가 떨렸다. 신군부의 만행을 묵인하고 정권 찬탈을 방조한 미국의 한국 주둔군 사령관이 공개적으로 한 말이라니,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하고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기도 했다.
그러나 단순한 모욕감이 아니었다. 이상한 모멸감이었다. 겉으로는 분노를 표출하면서도 속으로는 찔리는 것이 있었다. 외국인에게 우리 민족의 열등한 근성과 치부를 들켜버린 데서 오는 미묘한 자기모멸감 같은 것이 실은 더욱 뼈아팠다. 말하자면 이중의 아픔이었다. 외국인에게서 모욕을 당했다는 감정과 우리 민족의 약점을 들켜버렸다는 수치심이 내 가슴에서 쌍곡선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때로부터 위컴이 지적한 우리 민족의 '들쥐근성'을 되새기고 확인하는 비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북한을 생각하면 위컴의 '들쥐론'이 오버랩 되곤 한다. 북한의 전체주의와 독재체제는 우리 민족의 들쥐근성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에서 세계 유일의 폐쇄왕조 체제가 유지되는 비결은 바로 우리 민족의 들쥐근성에 있다. 그것을 빼고는 북한의 신기하고도 가공할 독재체제를 설명할 길이 없다.
거기에서도 나는 수치심을 느낀다. 북한도 우리 동포, 같은 민족이 아닌가. 바로 우리 민족에게서 세계 유일의 폐쇄왕조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 다시 말해 우리 민족 특유의 들쥐근성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내게 좀 더 얄궂은 수치심으로 작용한다. 정말이지 우리 민족은 별종이다. 세계인들에게 창피스럽고, 그만큼 슬프다.
북한의 독보적인 폐쇄왕조 체제를 가능케 하는 들쥐근성은 남한에도 있다. 남한 사회의 곳곳에서도 들쥐근성의 유형들을 접하고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세습 체제로 유지되고 있는 개신교의 일부 대형교회들이다. 대형교회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우리 민족 특유의 들쥐근성과 광신(狂信)의 기류들이 잘 결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특이성이 빠른 기간 내에 가공할 성장을 이룩하여 수많은 대형교회들을 출현시켰다.
북한의 왕조체제와 남한 대형교회 세습체제의 유사성'반공'을 입에 달고 사는 일부 대형교회의 교역자들은 기절초풍할 말일지 모르지만, 북한의 왕조체제와 남한 대형교회들의 세습체제는 한마디로 닮은꼴이다. 두 집단의 공통적인 성격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왕조체제와 남한 대형교회들의 세습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우리 민족 특유의 들쥐근성과 광기에 가까운 극렬함, 두 기둥이다.
그래서 나는 세계 10대 교회들 중에 한국교회가 1, 2, 3위를 비롯하여 7개나 되고, 세계 50대 교회들 중에 한국교회들이 절반에 가까운 23개나 되는 현상에서도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특이성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느껴지기보다는 우리 민족 특유의 약점을 노출시키는 것으로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사실은 내게 이상한 공포감마저 갖게 한다.
최근 세상에 드러난 박성배 목사의 66억 탕진 도박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목사를 무조건 믿고 따르며 추앙하는 신앙 태도, 들쥐근성의 발호 때문에 66억을 탕진하는 목사의 도박 행위도 발생되는 것이다.
들쥐근성과 광기에 가까운 극렬성은 '조중동' 등 수구 족벌언론도 마찬가지다. 친일과 친미와 반공을 입에 달고 사는 세습 족벌언론들의 토양도 사실은 들쥐근성이다. 세습 족벌언론들을 지탱시키는 조건도 따지고 보면 북한의 폐쇄적 왕조체제, 그리고 남한 대형교회의 세습체제와 같은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
폐쇄적 왕조체제 속에서 광기 어린 모습을 연출하는 북한 주민(세분하자면 주요 행사에 참석하거나 동원되는 사람)들이나, 세습체제가 유지되는 남한 대형교회 교역자(또는 교주)들의 광적인 설교를 들으며 아멘 소리를 연발하는 극렬 신자들이나, 언론 본연의 사명보다는 사주(社主)의 이익에 맹종하는 세습 족벌언론의 먹물들이나 동질의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그들 내면에 잠재된 우리 민족 특유의 들쥐근성과 광기는 위치와 상황은 다르더라도 매한가지다.
우리 민족의 그 특이성, 그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30여 년 전에 위컴이라는 미국인이 지적한 '들쥐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실은 그 근성이 오늘의 '들쥐천국'을 만들었다. 남한의 들쥐상황은 북한의 들쥐왕국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줄 뿐이다. 그것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 또한 시야가 좁은 들쥐의 습성 때문이다.
한국인인 내가 1980년에 처음 들었던 미8군 사령관 위컴의 '들쥐론'을 회억하며 우리 한국인들의 특이성을 말한다는 것은 분명 불행한 일이다. 그때로부터 30여 년이 지나고 있는 오늘에도 그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 채 내가 오늘 또 다른 유형의 '들쥐우리'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서 나는 절망에 가까운 슬픔과 공포를 느낀다.
이 대목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우상화 현상, 이른바 '박정희 향수'로 말미암은 박근혜 정권의 출현도 북한의 왕조체제를 가능케 하는 우리 민족의 들쥐근성과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설파할 수 있으나, 그 얘기는 길게 하지 않겠다.
들쥐근성의 발호를 제어하는 오늘의 기운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서, 나는 왜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 앞에서 오늘 다시 위컴의 들쥐론을 떠올리는가? 들쥐론의 세 갈래 작동을 뼈아프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 정부의 태도에서 들쥐론의 음험한 기운을 느낀다. 이번 '한일 합의'의 배경에는 미국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일본을 지극히 편애해온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차원에서 일본 정부를 편들며 한일 합의를 한국 정부에 종용했다. 미국 정부는 한국인들의 반발심리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한국인들을 얕잡아보고 공개적으로 들쥐론을 발설했던 30여 년 전 위컴의 시각이 오늘 그들의 심중에 내포되어 있었다.
아베의 일본 정부는 미국을 등에 업고 한국을 얕잡아보는 태도로 협상을 밀어붙였다. 한국 정부가 미국이라면 기를 펴지 못한다는 것을 일본은 잘 알고 있었다. 미국의 종용이 쉽사리 성사되리라는 것을 믿고 그들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올 수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 정부가 발휘한 들쥐근성이다. 한국 정부 또한 보수층의 들쥐근성만을 믿고 일을 저질렀다. 자신들이 어떻게 결정하든 국민들은 따라줄 것으로 믿었고, 국민 아무에게도 의견을 묻지 않았으면서 국민은 정부 결정을 이해해야만 한다고 강변했다. 국민 의사는 전적으로 무시한 채 미국의 종용에 굴종하여 쉽게 일본과 타협을 한 것은 그야말로 들쥐근성의 발호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은 다시 한 번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자존심도 없고 줏대도 없는 국가로 치부되고 있다. 그것은 세게 각국의 언론 보도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런 사실을 한국 메이저 언론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고, 한일 합의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보수층만 모르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한국의 국민대중은 30여 년 전 미군사령관 위컴이 들쥐론을 설파할 때와는 양상이 확연히 다르다. 특히 젊은 층은 재래의 들쥐근성을 단호히 배격하고 있다. 일본 돈 10억 엔에 민족의 자존심과 역사를 팔아넘기는 것을 거부한다. 아울러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거부한다. 정부 말만 듣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는 모두 물에 빠져 죽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젊은 층의 깨어 있는 행동이 이 나라를 미래로 견인한다. 그것의 상징적인 현상이 오늘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지키려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한일 합의를 '역사의 매듭'이라고 강변하며 찬성 시위까지 해대는 보수층의 들쥐근성은 역사의 뒤란으로 사라질 날이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