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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기름 참이슬이 아니고 참기름이다. 어쩌면 이슬 한 방울 얻기 보다 참기름 한방울 얻기가 더 힘들 수도 있겠다.
참기름참이슬이 아니고 참기름이다. 어쩌면 이슬 한 방울 얻기 보다 참기름 한방울 얻기가 더 힘들 수도 있겠다. ⓒ 김민수

참기름과 들기름의 차이를 모르시는 분들은 없을 것이다. 참깨를 볶은 후 짠 기름은 참기름이요, 들깨를 볶아 짠 기름은 들기름이다.

그러나 들깨와 참깨를 구분할 수 있는 분은 많지 않을 것이다. 소비사회는 우리의 먹을거리가 식탁에 오기까지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최종적인 상품으로만 보여준다. 사실, 생산과정을 제대로 본다면 우리의 식탁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어릴적 부모님은 농사를 하셨는데 산등성이를 개간해서 만든 밭, 집 옆 평지의 밭, 논이 조금 있었다. 다양한 농사를 지으셨지만, 들깨는 깻잎을 얻어 반찬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키웠고, 참깨는 참기름을 얻기 위해 키웠다. 자연스럽게 잎을 따서 자주 반찬에 오르는 들깨는 집 옆의 밭에, 참깨는 산등성이를 개간해서 만든 밭에 심었다.

그러니 어린 마음에 산등성이를 개간한 곳이 들이니 그곳에 있는 것이 '들깨'요, 집 옆의 밭에 있는 것은 이파리까지 먹는 것이니 '참깨'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어머님은 식물 중에서 '참'자가 들어가는 것은 대부분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하셨다.

기름집 기름을 짜내기전에 깨를 볶는 도구
기름집기름을 짜내기전에 깨를 볶는 도구 ⓒ 김민수

그래서 고등학교때까지 농사짓는 것을 지켜보고, 농사일도 도왔지만 나는 참깨와 들깨를 헷갈렸다. 단지 내 머릿속에 각인 된 것은, 들깨는 기름을 짠 후에 깻묵을 남기고 참깨는 소금과 함께 빻아서 깨소금으로 쓴다는 것이다.

군것질이 부족하던 어릴 적에는 깻묵을 조금씩 먹기도 했으나,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낚시에 재미가 들려 고기를 유인하는 데 깻묵을 썼다. 그리고 깻묵은 거름으로도 아주 유용해서 몇 해 전까지 옥상에서 어머님이 농사를 지을 적에는 가름집에 가서 깻묵을 사오기도 했다.

기름틀 기름을 짜는 기계, 우측 옆에는 기름을 다짠 깻묵이 쌓여있다.
기름틀기름을 짜는 기계, 우측 옆에는 기름을 다짠 깻묵이 쌓여있다. ⓒ 김민수

참기름이든 들기름이든 생각을 하면 입에 침이 고인다. 고소함에 대한 추억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한 겨울에 보리밥에 이런 저런 시래기를 올려놓고 고추장에 참기름 혹은 들기름을 넣고 비벼먹던 추억도 한 몫 할 것이다.

한 방울의 고소한 기름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가 들어갈까? 깨알같이 작은 것들이 모이고 모여 한 방울의 기름을 만든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삶이 그러하지 않은가? 깨알같은 시간들이 하루하루가 쌓이고 쌓여 오늘의 나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많은 정성이 들어가도 아주 약간의 불순물이나 이물질이 들어가면 그 기름을 사용할 수가 없다. 물론,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라면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독성을 품고 있는 것이라면 아무리 기름이 아까워도 버려야만 한다.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은가? 사람은 살다보면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의도적이지 않은 실수 같은 것들은 다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음으로 인해 우리 삶을 더 성숙하게 만든다. 그러나,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혹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을 농락하는 사악한 행위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한다면, 그 삶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

기름붓 김에 기름을 바를 때 사용하는 기름붓도 고소하게 생겼다.
기름붓김에 기름을 바를 때 사용하는 기름붓도 고소하게 생겼다. ⓒ 김민수

그런데 사실, 이 세상엔 가짜들이 얼마나 많은가? 오죽했으면 기름집에서 "이 기름이 진짜 원조 국산 참기름인가요?"라고 물을까?

진짜인 척 행세를 하지만 가짜가 많은 세상이다. 나라를 사랑한다, 국민을 사랑한다는 말을 입만 열면 하는 이들치고 제대로 나라를 사랑하거나 국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정말 진솔한 사랑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 같은 것이다. 그래서 가만히 있어도 고소한 참기름의 냄새가 풍겨나듯 알 수 있는 그런 사랑이다.

온갖 사랑한다는 말이 난무하는 세상, 무엇이 진짜 사랑이란 말인가?

김에 바르는 기름은 들기름이란다. 왜 참기름이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그렇단다. 참기름이나 들기름이나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 미묘한 차이들이 있기에 그렇게 사용하는 것이리라. 그렇다고 행여 다른 기름을 사용한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터이다.

어쩌면 이렇게 완벽한 조합은 아닐 수 있으나 '이것이나 저것'을 다양하게 선택해도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사회는 단 한 번의 실패, 단 한 번의 선택에 대한 실패는 곧 전인적인 삶의 실패로 귀결이 되니 행복지수가 낮은 사회일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절구 참깨는 소금과 함께 빻아서 양념으로 사용한다.
절구참깨는 소금과 함께 빻아서 양념으로 사용한다. ⓒ 김민수

기름집에서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추억의 편린의 퍼즐을 이리저리 맞춰본다.

참으로 무엇인 참인지 거짓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세상엔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라 썩은 악취가 가득하다. 사람들도 그렇다. 고소한 사람을 만나기는 가뭄에 콩 나듯이고, 넘쳐나는 이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같은 것은 아예 없는 이들이 넘쳐난다.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인가? 신뢰가 무너져 버렸다. 윗물이 탁한 까닭이다. 정치인들의 공약은 대부분 당선되기 위한 거짓말이요, 선동이고 대통령 조차도 집권 3년차가 되도록 공약하나 제대로 지키지 않아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국회의원들도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지 국민을 위한 정치는 손놓은 듯하다.

그런데 4월 총선이 다가오니 우편함이 정치인들이 가증스러운 웃음 가득한 홍보물로 넘쳐난다. 이제 몇 달간은 국민에게 읍소하며 '한 표 주십쇼!' 하겠지만, 당선이 되면 곧 국민 위에 군림하며 자기들 이익을 위해서나 일하겠지. 물론, 가물에 콩나듯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국회의원도 있다고는 믿어야지 어쩌겠는가?

나는 기름집에서 "이 기름이 진짜 원조 국산 참기름인가요?" 물으려다가 '진짜'가 실종된 시대에서 '진짜'를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하는 생각에 그 질문을 거둔다.

혹자는 '가짜라도 고소하기만 하더라' 할지도 모르겠으나, 가짜는 가짜일뿐 진짜가 아니고, 거짓은 거짓일뿐 참이 아니다.

제발, 이번 총선에서는 진짜와 가짜를 잘 구분해서, 국민들의 삶을 고소하게 만들어 주는 이들을 뽑았으면 좋겠다.


#참기름#들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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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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