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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조대에 매달려 있는 감
건조대에 매달려 있는 감 ⓒ 이경모

"어머니, 말려 놓은 감 다 버릴게요."
"왜 버려. 그냥 놔둬라."
"안 돼요. 옷에 감물이 들고 감이 마르기 전에 바닥으로 떨어져요. 저기 바닥에 감이 떨어졌잖아요."
"그래도 한 줄만이라도 그대로 놔둬."

며칠 전 아침. 아파트 베란다 건조대에 걸어 놓은 감을 치우면서 어머니와 가벼운 말씨름을 벌였다. 무슨 사연인가 하면….

지난해 12월, 한 후배가 대봉 한 박스를 줬다. 그런데 대봉이 홍시가 돼도 먹을 사람이 없겠다는 생각에 어머니는 곶감을 만들 계획을 세우셨다. 노안 때문에 눈이 잘 보이지도 않으실 텐데 감 껍질을 예쁘게 벗겨 꼬챙이에 꿰 말리지 않고 감과 감 사이에 끈을 연결해 묶어놓고는 건조대에 걸어 놓으셨다.

홍시를 냉동실에 넣어두면 여름에도 여러 방법으로 먹을 수 있는데, 그 감이 건조대에 주렁주렁 걸려 있어 깜짝 놀랐다. 게다가 옷에 감물이 들면 쉽게 지워지지 않아 자칫하면 옷을 버릴 수도 있다.

감에 얽힌 추억 몇 가지

 마르기 전에 바닥으로 떨어져있는 감
마르기 전에 바닥으로 떨어져있는 감 ⓒ 이경모

대개 곶감용 감은 8월에 나오는 단단한 수시(水枾, 물감)다. 근데 어머니께서 껍질을 벗겨 말리는 감은 곶감용 감이 아니었다. 그뿐 아니라 계절이 겨울이라 햇볕에 말려도 건조되지 않는다. 홍시가 돼 바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어머니가 한 줄만 남겨두라는 말도 뒤로 한 채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감과 건조대에 걸려있는 감을 음식물쓰레기통에 모두 버렸다.

그런데, 버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감 껍질을 벗기느라 애쓰셨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 데다가 어머니의 아까워 하는 눈빛 그리고 어렸을 적 감에 얽힌 추억들이 생각나면서 뭔가 죄를 지은 것 같았다.

앞마당에 심어진 감나무는 봄이면 하얀 감꽃으로 집안을 밝게 해주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가을에는 빨갛게 물든 감잎을 제공했다.

봄날 감꽃은 우리들의 간식이었고, 놀이도구였다. 떨어진 감꽃을 주워 먹기도 하고 감꽃을 실로 꿰 팔찌도 목걸이도 만들었다. 납작한 감도 쓸모가 있었다. 우리는 그 납작한 감 가운데 구멍을 뚫고 나무를 꽂은 다음 감에 조개껍질을 박았다. 그런 다음 물이 흐르는 길목에 두면 물레방아가 됐다. 먹을 것이 없는 시골에선 감이 익는 걸 기다리지 못하고 떫은 감을 따 45℃ 정도의 물에 15~24시간 담가두면 '타닌'(tannin)이라는 떫은 맛이 빠지면서 단감이 된다.

곶감용 껍질도 말려 먹었던 배고픈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의 나는 멀쩡한 감도 버린 것이다.

환하게 웃는 어머니

"어머니, 뭐하시려고 동태를 건조대에 걸어놓으셨어요?"

아직 감 사건(?)에 대한 잔상이 사라지지 않았는데, 지난 14일 아침엔 감이 걸려있던 자리에 동태가 걸려 있었다. 연세가 더해지면서 기억력이 많이 떨어지시지만 옛날 습관은 그대로이신가 보다. 그때마다 그냥 어머니와 부딪히지 않고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그러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어머니, 동태가 잘 마르고 있네요."
"설에 맛있게 먹자."

어머니께서 환하게 웃는 모습이 내 눈에 가득 찬다.

지금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비린내를 맡으며 건조대에서 동태를 말릴 시대는 아니다. 그런데 나는 이날 어머니와의 대화방법을 알았다. 그냥 하고 싶으신 대로 두고 응원을 곁들이면 누구보다 더 좋아하신다는 것을.

 감이 걸려있던 자리에 동태가 걸려있다.
감이 걸려있던 자리에 동태가 걸려있다. ⓒ 이경모

덧붙이는 글 | 월간 첨단정보라인 2월호에 게재합니다.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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