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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 오르비에토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시에나로 갑니다. 변화무쌍한 날씨라지만, 어느 순간 안개가 걷히고 봄날 같은 햇살이 마음을 따듯하게 합니다.

차창 밖 나지막한 구릉지에 펼쳐지는 이탈리아 중부평야가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약간 비탈진 넓은 땅의 포도밭이 풍요로워 보입니다. 쏟아지는 햇살과 창밖의 아름다운 풍경이 어우러지니 달리는 버스가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중세풍의 아름다운 도시 시에나

오르비에토에서 1시간 반 남짓 달렸을까? 별안간 솟아난 것 같은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이탈리아 중부 도시 시에나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시에나의 고풍스런 중세의 모습. 멀리 캄포광장 만자의 탑이 보인다..
시에나의 고풍스런 중세의 모습. 멀리 캄포광장 만자의 탑이 보인다.. ⓒ 전갑남

그림물감에 '시에나색'이라는 게 있습니다. 황토색과 노란색의 중간정도라고나 할까요? 이탈리아 시에나의 고색창연한 도시 색깔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라 합니다. 시가지 모습을 보니 시아나색의 유래가 이해가 됩니다. 도시 자체가 시간이 멈춘 듯, 중세풍의 건축물 시가지가 이색적입니다.

우리 일행에게 설명하는 여행안내자의 표현이 멋집니다.

"시에나는 태양의 붉음보다는 수줍은 새색시 볼의 발그레함이 있는, 그런 역사의 흔적들로 빛이 바랜 도시라고 하지요. 그래서 그런지 말년을 보내고 싶어 하는 도시 중 제 1순위로 시에나를 꼽고 있죠."

중세도시의 예스러움과 꾸미지 않은 정서, 여느 이탈리아에서 볼 수 없는 깨끗함까지 시에나의 첫인상이 참 좋습니다.

이탈리아 여행을 하다보면 산꼭대기에 위치한 도시들을 많이 봅니다. 외적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높은 데 모여 살다가 점점 그 규모를 늘렸다고 합니다. 또, 농지의 침범도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산꼭대기의 삶은 아름다운 풍광과 더불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고도 300m의 산꼭대기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도시 시에나는 이탈리아 중부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중세 시대의 특징과 가치가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하고 있어 1995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시에나에 있는 중세의 성벽. 규모나 길이가 어마어마하다.
시에나에 있는 중세의 성벽. 규모나 길이가 어마어마하다. ⓒ 전갑남

우리는 시에나 캄포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견고한 성곽을 따라 이동하는데, 그 웅장함과 오랜 세월의 흔적을 느껴봅니다.

성벽 옆 쉼터 의자에서 책을 보며 담소하는 노부부가 정겨워 보입니다. 뭔가 열심히 메모하는 모습에서 노년의 여유를 느낍니다.

 시에나 성벽 옆 의자에서 한가하게 담소하는 노부부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시에나 성벽 옆 의자에서 한가하게 담소하는 노부부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 전갑남

앞서가던 아내가 내게 말을 합니다.

"여보, 저분들 좀 봐. 도란도란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그러게. 노년의 기품이란 게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네!"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예스러움의 도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아내와 나는 저분들처럼 여백이 있는 노후를 꿈꿔야겠다는 생각을 동시에 합니다.

이색적인 캄포광장의 숨결

 캄포광장과 만자의 탑입니다.
캄포광장과 만자의 탑입니다. ⓒ 전갑남

작고 아기자기한 골목을 지나 어느새 탁 트인 공간이 펼쳐집니다. 시에나 한복판의 캄포광장에 도착합니다.

이탈리아에는 수많은 광장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광장이 캄포광장이라 합니다. 흔히 광장하면 평평한 지형에 네모반듯한 것을 연상하는데, 캄포광장은 좀 특이합니다. 비스듬하게 경사가 진 부채꼴인데다, 바닥도 조개껍질처럼 오목하게 되어있습니다.

광장에는 색깔이 다른 선들이 9개 구역의 경계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는 중세시대 9개 의회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라 전합니다.

 캄포광장의 드넓은 모습. 연말이라 그런지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캄포광장의 드넓은 모습. 연말이라 그런지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 전갑남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물은 푸블리코궁전과 궁전의 종탑입니다. 푸블리코궁전은 지금도 박물관으로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여기에 시청사가 들어있다고 합니다. 시에나의 상징이기도 한 종탑은 높이가 무려 102m나 되며, 14세기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최초의 종지기 '만자'의 별명을 따 '만자의 탑'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캄포광장 건물 벽에 고리모양의 쇠붙이가 눈에 띕니다. 말을 매어두는 고리입니다. 캄포광장에서 '팔리오'라고 불리는 유명한 말 경주대회가 열리는데, 그때 말고삐를 잡아매는 데 쓰이지 않나 싶습니다. 유구한 세월을 견디며 그 자리에 붙어있는 고리가 귀하게 여겨집니다.

 시에나에서 본 말고리. 세월의 깊이가 느껴진다.
시에나에서 본 말고리. 세월의 깊이가 느껴진다. ⓒ 전갑남

팔리오 대회는 완장 없는 말을 타고 경마하는 대회입니다. 이 대회는 중세 때부터 시작되었다니 그 유래가 대단합니다. 일 년에 단 두 차례(7월 2일, 8월 16일) 열릴 때는 수만 명의 관광객들이 시에나를 찾는다고 합니다. 시에나 각 구역의 대표기수들이 정해진 시간 동안 가장 많이 달리는 자를 우승자로 뽑습니다.

지축을 흔드는 말발굽소리와 이를 응원하는 수만 관중의 함성이 광장을 가득 메웠을 것을 상상하니 시에나의 펄떡대는 심장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광장을 느릿느릿 둘러봅니다. 광장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유분방합니다. 양지 바른 자리에 아무렇게나 앉아 담소를 나누고, 어떤 사람들은 아예 드러누워 쉬고 있습니다. 소풍이라도 온 듯 여럿이서 음식을 나눠먹는 사람들의 표정도 즐거워 보입니다.

 캄포광장의 자유분방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캄포광장의 자유분방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 전갑남

일행 중 한 분이 내게 말을 겁니다.

"여기선 젊은 여성들도 대놓고 담배를 피우네!"
"이태리는 실내에선 금연이고, 밖에서의 흡연은 관대한 것 같아요. 문화적 차이죠."

광장에서 남녀노소가 가릴 것 없이 흡연하는 장면이 쉽게 목격됩니다. 너른 광장에 널려있는 담배꽁초도 눈에 거슬립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식당과 술집은 물론 대부분 공공장소의 실내는 엄격하게 금연구역으로 지정하였으나,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광장까지 금연구역을 확대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시에나 두오모, 경이로움에 탄성

 시에나 두오모 성문. 성문 사이로 성당의 보인다.
시에나 두오모 성문. 성문 사이로 성당의 보인다. ⓒ 전갑남

캄포광장에서의 여유를 뒤로 하고, 우리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시에나 두오모로 자리를 옮깁니다.

좁은 골목길로 접어듭니다. 구불구불 비탈진 길의 예스러움과 정갈한 고풍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걸어서 얼마 가지 않아 계단에 오르자 웅장하고 화려한 시에나 두오모가 눈앞에 들어옵니다.

지금처럼 기술과 문명이 발달하기 전, 무슨 재주로 저렇게 예술적이고 멋들어진 건축을 지을 수 있었을까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시에나 두오모. 화려함과 웅장함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에나 두오모. 화려함과 웅장함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전갑남

시에나 두오모는 측면과 후면, 그리고 종탑까지 흰색과 녹색, 그리고 검은색 줄무늬의 조화가 특이합니다. 로마네스크양식에 고딕양식을 갖추긴 했지만, 경건함과 단순함을 추구한 중세고딕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성당 정면은 로마네스크양식의 하부 구조 위에 섬세한 조각들로 장식하고, 고딕양식 특유의 화려함을 더해 눈길을 빼앗습니다. 거기다 좌우대칭의 균형감과 조화로움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사를 자아내게 합니다.

시에나 두오모는 1196년부터 1215년까지 기본적인 완성을 하고, 증축공사를 계속하다, 1339년부터 대규모 확장공사를 진행하였다고 합니다. 1382년 페스트가 휩쓸어 시에나가 쇠퇴일로로 접어드는 바람에 성당의 확장도 멈추게 되었습니다. 좀 더 늘려보려는 인간의 욕심에 신의 노여움을 샀을까요? 결국, 시에나는 경쟁관계였던 인근 피렌체한테 밀리고, 세계 최대의 성당을 지으려던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시에나 두오모의 화려한 자태.
시에나 두오모의 화려한 자태. ⓒ 전갑남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아내가 어린아이들의 환호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 앞에서 손짓하며 부릅니다.

"여보, 여기서 내 사진 한 방 부탁해요!"
"이 사람, 더 좋은 데 놔두고 하필 이곳이야!"
"새해에는 우리도 여기 있는 아이들의 비상하는 모습처럼 건강하게요! 어서 찍어요!"

 광장 한편 청동 조각상에서의 아내.
광장 한편 청동 조각상에서의 아내. ⓒ 전갑남

광장 한편에 있는 '아이들의 날개 짓하는 조각'에 아내가 포즈를 취합니다. 자신의 기쁨을 온몸으로 환호하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아내가 환한 표정을 짓습니다. 나는 순간 "찰칵!" 셔터를 누릅니다.

다음 여정을 위해 발길을 돌리면서, 노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도시 시에나에서 아내와 나는 밝은 웃음을 잃지 않는 노후를 생각해봅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2월 29일부터 1월 6일까지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탈리아#시에나#캄포광장#시에나 두오모#팔리오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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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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