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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정부가 하는 일들을 보면 마음이 씁쓸해진다. 교묘하게 분칠한 말만 들으면 꽤나 번드르해서 금방이라도 너나없이 행복하게 잘 살 것처럼 보이나 그 속내를 들추면 어이가 없다.

대통령은 '국민행복시대'를 구호로 내걸고 당선했다. 이 나라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부는 어떤가. '꿈을 키울 수 있는 교육, 끼를 펼칠 수 있는 교육, 행복한 교육 실현'이란 말도 마찬가지다. 교육부가 앞장서서 억지를 써서 교육을 훼방 놓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차라리 가만 두면 좋으련만 정권의 입맛에 맞게 교육과정을 누더기로 만들기 일쑤고, 정부의 약속인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에 어물쩍 떠넘기고도 너무나 당당하다. 요전날에는 작은학교 죽이기를 적정 규모 학교 육성이라고 억지를 쓴다.

그러니까 12일, 교육부가 시도교육청에 '적정 규모 학교 육성 및 분교장 개편 권고기준(안)'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제껏 도시 농촌 구분 없이 학생 수 60명 이하이던 적정규모 학교육성 추진 권고기준을 읍·면 지역은 초등 120명, 중등 180명 이하로, 도시 지역은 초등 240명과 중등 300명 이하로 바꾸겠다는 말이다. 학생 수가 어느 정도 되어야 다양하고 질 좋은 교육이 이루어지고 교육 운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다.

그 때문에 일어나는 폐해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말로는 권고이지만 학생 숫자로 학교와 시도교육청을 줄 세우고 그 점수에 따라 학교 운명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말하지 않아도 그 말 뒤에는 학생 숫자로 교원 정원을 줄이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깎겠다는 속셈이 숨어있다.

자연스런 귀결로 국민이라면 누구나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헌법 제31조와 교육기본법 제4조도 경제의 논리 앞에서는 아무 힘도 쓰지 못한다.

거꾸로 물어보자. 학생이 많아야 교육을 잘할 수 있는가. 하긴, 저들 머릿속에 든 교육이 어떤 모습일지 짐작이 간다. 시멘트와 벽돌로 세운 네모난 교실에 교사만 빼고 죄다 최신 기기들로 가득 채워놓고 아이들이 줄줄이 앉아 배우는 모습일 것이다. 무슨 일을 해도 북적하니 잘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거기엔 아이 하나 하나의 배움이나 삶 따위는 안중에 없다.

통폐합으로 사라질 초등학교 수 교육부가 제시한 권고기준에 따른 강원도 내 통폐합 대상 초등학교
통폐합으로 사라질 초등학교 수교육부가 제시한 권고기준에 따른 강원도 내 통폐합 대상 초등학교 ⓒ 이무완

교육부 권고 대로라면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다른 지역은 두고 강원도 지역만 보면 초·중·고교 가운데 절반은 문을 닫아야 한다. 고성, 영월, 횡성, 홍천, 화천 같은 군 지역은 통폐합될 학교가 65%가 넘는다. 초등학교로 좁혀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영월, 횡성, 화천, 고성, 삼척 지역 초등학교는 열 곳 가운데 여덟 곳이 사라지고 만다.

학교가 사라지면 아이가 사라지고 마을이 사라진다. 이는 학교를 적정 규모로 살리는 일 쪽보다 죽이는 일에 더 무게가 실린다. 학교가 없는 농촌도 죽고 만다. 이는 인구의 도시 집중을 더욱 심화시키는 동시에 농촌 공동화를 이끌 것이다. 더구나 지방교육자치 따위는 언제라도 뒤엎겠다는 협박이기도 하다.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51조에서 밝히고 있듯 학교의 학급 수와 학급당 학생 수는 교육감의 권한이다.

작은 학교는 그저 아이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골골이 있는 작은 학교들은 아이들에게는 배움터이지만 학교에 기대어 살아가는 지역 주민에겐 일터이다. 동문들에게는 고향을 기억하고 공동체의식을 키워주는 교육 문화 공간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제까지 작은 학교 통폐합이 지역 사회나 교육 현장에 얼마나 활기를 불어넣었는가를 생각해 보시라. 사람들을 도시로 내쫓고 지역사회와 경제를 허무는데 더 큰 기여를 해오지 않았는가. 이는 지금까지 통폐합이 주는 교훈이다.

백 걸음 물러나 교육부 권고 기준 대로 따랐을 때 우리는, 우리 아이들은, 우리 교육은 행복할 수 있을까. 적정한 규모만 되면 교육부가 입에 달고 사는 행복한 교육 세상이 될까. 분명 아니다. 오히려 이 땅 어디에 살든 교육 받을 권리를 누릴 수 있을 때 '행복한 교육 세상'이 될 것이다.

아이들에게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땅과 하늘과 바람을 사랑하고 이웃과 어울려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이고 사람다운 삶이라고 깨우쳐줄 생각은 못하고 어찌하여 고향을 떠나 도시 아이들 시늉을 하면서 떠돌이로 살라고 부추기는가.

역설 같지만 지난 세대가 증명해 주고 있다. 농촌 부모들은 자신이 겪는 고통과 설움을 더는 자식에게만은 물려주지 않으려고 빚을 산더미처럼 지면서도 자식 공부를 열심히 시켰다. 남보다 더 배우고 출세해서 잘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지금 어찌 되었는가.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농촌은 식량도 자식도 말도 글도 죄다 도시에 빼앗기고 늙고 병든 어르신들만 남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 도시의 큰 학교로 간 아이들은 행복했는가. 좁아터진 운동장과 교실에 한창 몸을 놀리고 손발을 놀리며 마음껏 뛰어야 할 아이들을 붙잡아 놓고 공부 기계로만 자라야 했다.

잘 알다시피 학교는 '돈'을 불리는 시장판이 아니라 '아이'를 기르는 배움터이다. 국가가 있어서 학교가 있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있어서 학교가 있고 교육부가 있다. 작은 학교에서 아이는 땅과 물과 바람과 햇볕을 빨아들이고 자기가 발붙인 곳에서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교실과 교과서만 있다고 학교가 아니다. 땅과 사람이 모두 아이에게는 교육과정이고 수업이고 학습이고 체험이다. 그렇게 자라난 땅의 바탕과 결을 닮아서 저마다 다르면서도 고향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우뚝 자라날 것이다. 교육부가 말하는 '꿈을 키울 수 있는 교육, 끼를 펼칠 수 있는 교육'도 저절로 피어날 것이다.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적정 규모 학교 육성 및 분교장 개편 권고 기준'이라는 이름만 봐서는 좋은 법 아닌가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역 교육 여건은 살펴보지 않고 자본의 논리로 지역의 숨통을 막고 교육을 훼방 놓는 걸 알고 나면 누구라도 반대할 것이다. 이것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통폐합#작은학교#적정 규모 학교 육성#강원도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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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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