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보면 국민통합이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한상진 국민의당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은 15일 자신의 '이승만 국부(國父)' 발언을 철회하지 않았다. 그는 이날 안철수 의원과 함께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을 예방한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나라가 너무 이념적으로 분열돼 있기 때문에 국가 정체성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문제가 있다"라며 이 같이 말했다. 또 "다소 문제제기가 있었는데 오늘 이 문제를 또 언급하기보다는 가까운 시일 내에 훨씬 자연스러운 맥락에서 얘기할 기회가 금방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신이 지난 14일 국립 4.19 민주묘지 참배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라고 평가한다"라고 한 것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란 얘기다. 특히 한 위원장은 자신의 발언이 뉴라이트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는 논란이 일자, "당의 공식입장이 아닌 개인적 생각"이라고 진화에 나선 바 있다. 그런데 단 하루만에 자신의 발언을 '국민통합적 관점'이라고 다시 강변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이번 논란에 대해 국민의당이 강행돌파를 택한 셈으로 볼 수 있다. 또 당의 정체성과 노선을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공존'으로 확실시 한 것으로도 읽힌다. 이를 통해 이념적 유연성과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더불어민주당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한편, 중도·보수층으로 지지층의 외연을 확대시키겠다는 전략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은 이명박 정부 당시 대통령연설기획비서관이었던 이태규 창당실무준비단장, 정용화 호남미래연대 이사장 등을 합류시키면서 이 같은 방향을 일부 드러낸 바 있다.
천정배 측 "5.18 묘역에서 전두환=구국의 영웅 부르는 격"문제는 이 같은 방향성이 기존 야권 지지층의 이탈을 부를 수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당도 이 같은 상황을 인식한 듯, 가까운 시일 내 백범 김구 선생 묘역도 참배할 예정이다. '이승만 국부' 발언으로 촉발된 정체성 및 역사인식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행보다.
그러나 이미 흠집은 나버렸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승만 국부 발언은) 이승만 개인에 대한 평가 외에 대한민국이 언제 세워졌는가의 문제와 직결된다"라며 한 위원장의 발언을 뉴라이트의 '건국절' 주장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사실 어떤 이가 대한민국의 '국부'라 불리기 위해서는 그의 사상과 철학이 현재에도 계승해서 마땅한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꼬집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과 연대할 것으로 봤던 천정배 의원의 '국민회의'도 한 위원장의 '이승만 국부' 발언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장진영 국민회의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국민의당 현역의원들은 '이승만 국부' 발언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라"라면서 "국민의당과 한상진 위원장은 이 발언으로 인해 상처받으셨을 유족들께 깊이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정선거에 항거하다 희생당한 300위의 영혼이 모셔져 있는 성지에서 이 전 대통령을 '국부'라고 표현한 것은 광주 5.18 민주묘지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구국의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질타했다.
또 "국민의당에 입당한 더불어민주당 출신 현역의원들에게 답변을 요구한다"라며 "이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국부라는 한 위원장의 발언에 동의하는가, 이 전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굳게 세우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굉장한 헌신으로 근대화를 이끌었다는 한 위원장의 발언에 동의하는가"라고 물었다.
앞서도 국민회의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민의당의 정체성 및 정책방향과 합치된다고 생각한다"는 한 위원장의 발언을 비판하며 "최근 건국절과 국정교과서 논란으로 정치지도자의 역사인식에 대해 어느 때보다 민감한 지금, 국민의당의 역사인식과 자의적인 역사해석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국민회의 "국민의당에 그런 식으로 하면 같이 못 한다는 논평"즉, 야권 내 '반(反) 더민주' 진영이 균열조짐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특히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날(14일) "천 의원은 이미 창당준비위 단계까지 가 있기 때문에 야권의 대통합 차원에서 추진하고자 한다"라며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 국민회의 관계자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이번 논평은) 우리는 너네랑 같이 하고 싶은데 그런 식으로 하면 같이 못 한다는 경고"라며 "문재인 대표가 우리와 야권 대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말한 시점에서 이런 논평이 나가면 오해를 살 여지도 있었지만 (이승만 국부 발언이) 너무 잘못됐기 때문에 안 할 수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전날 문 대표의 '통합' 발언은 "전혀 얘기가 오간 적도 없는,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국민회의가 혁신대상으로 봤던 광주·전남 현역의원이 대거 탈당해 국민의당으로 입당한 점이 "곤혹스러운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그는 "앞서 더불어민주당의 친노 패권 문제와 구태 청산을 요구했는데 구태가 (탈당으로) 정리돼 버렸다, 이제 친노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2선으로) 물러날 지 봐야 한다"라며 "천정배 창당준비위원장도 '당장은 할 생각이 없다'라고 표현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