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으로 두 차례 투옥과 국내최초 유아휴직제도, 주5일제 근무제도 도입, IMF시절 금융노조 두 차례 파업 성공, 금융노조위원장 시절 최초의 노정협상 결과 합의서 체결 등을 인정받아 한국노총 최초로 '전태일 노동자상'을 수상했고, 세 차례 한국노총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사회개혁 조합주의'를 주창해온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자신의 노동철학을 담은 책을 냈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펴낸 <노동은 밥이다>(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2015년 11월)는 이 최고위원의 걸어온 노동운동의 소신과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철학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노동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갈수록 전문화 되고 다양해지고 있어, 이 때문에 경영진이 생산현장에서 대두되는 혁신의 과제와 방도를 직접 찾아내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혁신적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통해 발견한 혁신의 계기를 경영진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제도화 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노동자의 창의적 발견이 가져오는 경영성과를 노사가 공정히 배분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춘다면 노사 모두 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를 위한 제도가 노동자의 경영참가라고 강조하고 있다.
"노동자의 경영 참여가 기업 혁신을 가져오고 그 성과가 노사에게 공정하게 배분되는 선순환이 이어진다면 노사관계는 단순한 계약관계에 근거를 둔 배타적 관계에서 기업이라는 생산현장의 공동 주인이라는 연대의식이 형성될 것이다. 노동자들이 경영의 열린공간을 통해 중간관리자를 거쳐 최고경영자의 지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면 노동자들의 노동의욕과 소속감이 높아지고 자아실현의 욕구가 충족됨으로써 직무에 대한 만족감과 사기를 높이는 새로운 기업문화도 창출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2001년 한국노총 금융노조위원장 시절 파업으로 수배를 받고 있을 때, 수백명의 경찰 포위망 속에 지리산 피아골에서 수배생활과 포위망을 뚫고 유성 한 pc방에서 이 과정을 쓴 인터넷 글이 당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2년 1월 해고자 상태이기 때문에 금융노조위원장을 출마하지 못하게 될 위기에 처하자, 아는 지인을 찾아 주유소 오일뱅크 직원으로 취직해 피선거권을 획득한 일화도 당시 회자되기도 했다.
"낙심한 채 길을 걷는데, 내 눈에 뱅크라는 간판이 들어 왔다. 현대오일뱅크 주유소 간판이었다. 아 저것도 뱅크(bank)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급히 현대오일뱅크 연신내주유소로 달려갔다. 사장이 아는 사람이었다. 내가 금융노조 선거용으로 취업을 부탁하자 사장은 내가 정신이 이상해진 게 아닌가 의심했다. 잔말 말고 일단 취직부터 시켜달라고 했다. 취직을 한 후 노조를 만들고 금융노조에 가서 당당하게 말했다. '오일뱅크도 뱅크다. 뱅크노조에 가입해 달라.' 나는 주유기 호스 들고 기름 넣는 직원이 아니고 금융컨설턴트로 취직했다." - 분문 중에서결국 가입이 돼 두 번째 금융노조위원장선거에서 당선이 됐다.
저자가 한국노총 위원장 시절 조합원들의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내부 운영을 민주화하고 정책결정과 실행 과정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노력했다. '현장과 함께 국민과 함께' 슬로건으로 정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과거 의사결정기구가 산별대표자로 이루어진 '회원조합 대표자회의'였는데, 16개 시도 본부장까지 참여하는 중앙집행회의를 신설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특히 전국 차원에서 이직이 대규모로 이뤄지고 하늘과 외국 등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직선제 선거인명부 작성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700여명의 대의원으로 치러진 한국노총위원장 선거를 3000명 규모의 선거인단제도를 도입했다. 노동운동이 대중운동으로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얻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받은 사업을 펼쳐나갔다." -본문 중에서그는 노동조합이 현장과 유리된 채 교조적인 이념에 의해 재단된다면 운동은 대중적 지지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이념이 현장의 요구보다 앞서게 되면 조합원 다수에 의한 대중운동이 아니라 소수에 의해 다수가 끌려가는 기형적인 운동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는 이념 편향적 운동과 전투적 조합주의의 한계가 민주노총의 문제점이라고도 꼬집고 있다.
"민주노총이 민주화에 큰 기여를 했다. 노동운동의 변화에 개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여전히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많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모든 사회운동은 시대의 변화와 시대정신을 잘 읽어 국민들과 함께하는 대중운동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투쟁의 일변도의 노선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좌파의 선명성을 보여주는 징표인양 일정한 타협을 통해 합법적인 공간을 유지하면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도 무리하게 싸움으로 몰아간다." -분문 중에서저자가 한국노총위원장 시절 대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조 차원의 지원과 통일선봉대를 통한 한민족 의식 고취를 실천하기 위해 힘쓰기도 했다. 저자는 통일 이후의 순조로운 사회통합을 위해 노동운동이 할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적 이념적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은 남북 노동자들 간의 연대의식을 통해 완화할 수도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남북한 교류를 발전시켜가기 위해서는 정치적 사안, 경제적 사안, 인도적 사안 등을 분리해 다룰 필요가 있다. 남북한이 아직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데다 정치적 상황은 그 속성상 부침이 심하다. 이런 조건에서 정치적 문제와 경제, 사회적 교류, 인도주의적 교류를 연계해버린다면 남북한의 교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힘들다. 경제적 협력에서는 중간에 단절되면 나중에 이어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정치관계가 아무리 첨예한 상황이라해도 북한 주민들을 돕는 인도주의적 지원을 중단하다면 그 자체가 인도주의 정신과 배치될 뿐만 아니라 통일이후 갈등해소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 분문 중에서 민족적 차원에서 남북이 하나가 돼야 하지만 할 말을 못하고 그들에게 저자세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오히려 상호이해와 동질성 회복에 저해가 된다고 꼬집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고 노무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도 냉정하게 성찰해 놨다. 인생의 전기를 마련해준 분들로 상고에 진학길을 인도한 우베다 수녀, 상업은행 입사시험을 도와준 고향친구 이삼걸 전차관, 투쟁 최전방에서 도와줬고 감옥까지 따라온 김동만 현 한국노총위원장, 2000년 12월 금융권 파업투쟁시 투쟁현장을 끝까지 함께한 김문호 현 금융노조위원장, 항상 인품을 존경해 온 박인상 전 한국노총위원장 등도 책 속에 담았다.
후배들에게 용팔이 위원장이란 별칭으로 통하고 있는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1953년 경북 안동에서 가난한 농가 10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상업은행에 입사했다. 군복무후 직장으로 복귀해 독학으로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상업은행노조위원장, 금융노련위원장, 금융산별노조위원장과 세 차례 한국노총위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