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나이 쉬흔 넷. 그의 주소지는 용산구였고, 그가 살던 곳은 종로구였다. 그리고 그는 은평구에서 사망했다. 쪽방촌에서 힘겹게 삶을 이어나가던 김○○씨가 서울 서부병원에서 지난 8일 숨을 거뒀다. 그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한 가족은, 없었다.
"김○○씨, 아직 젊은 나이에 신산한 삶을 마감하셨구료. 제 뜻대로 살 수 없어 힘들었던 세상이었지만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가소서. 당신 삶의 흔적을 기억하고 추모하고자 작은 자리 만들었으니 위로가 되소서."이웃이 사망해도 조문할 기회가 없었지만...
하지만 그가 떠나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추도사가 흘러 나왔고, 쪽방촌 이웃 주민 등 100여 명이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고 한다. 소박하지만 특별한 장례식이었다. 상주는 가족이 아니었다. 장례식 장소 또한 병원이 아니었다. 21일 오전 11시 종로구 돈의동 사랑의 쉼터 교육관에서 '작은 장례 : 돈의동 주민 추모식'이 열렸다.
장례식 상주는 두 단체가 맡았다. 병원에서 화장장으로 바로 갈 뻔했던 무연고자 고 김○○씨의 마지막 길을 위해 돈의동 사랑의 쉼터(소장 이화순, 아래 '사랑의 쉼터')와 서울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사장 김상현, 아래 '한겨레두레')이 힘을 모았다. 이 특별한 '작은 장례'에 대한 주민들의 호응은 좋았다고 한다. 장례식을 마치고 낙원 상가 근처 잔치국수 집에서 국수 대접도 했다고 했다.
'작은 장례'는 병원이나 전문 장례식장이 아닌 주민이 거주하던 곳에서 이웃과 함께 하는 마을 장례다. 사랑의 쉼터와 한겨레두레가 함께 진행하고 있다. 김경환 한겨레두레 이사는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등에 700여 분이 사는데, 무연고자들이 많아 보통 구청을 통해 바로 시신 처리가 되기 때문에 바로 옆에 살던 이웃이 사망해도 조문할 기회가 없다"며 "그런 기회를 마련한 것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화순 '사랑의 쉼터' 소장 역시 "무연고 죽음의 경우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곧바로 화장장으로 가는데 이런 비인간적인 관행을 바꿔야 한다"며 "오늘의 작은 장례가 그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고 한다.
무연고 사망자 한 해 1천 8명...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실제로 비인간적인 '끝'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지난 해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무연고자 사망자 현황'에 따르면, 2014년 무연고 사망자는 처음으로 1천명(1천8명)을 넘어섰다. 2011년 682명, 2012년 719명, 2013년 878명, 매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소개한 김○○씨 경우처럼 중장년층의 고독사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4년 무연고 사망자의 경우 50세 미만이 187명으로 2013년(117명)에 비해 59.8%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길해용 한국유품정리사협회 회장은 <KBS 뉴스>에서 "협회 기준으로는 고독사 40% 가까이가 50대, 그 다음이 40대였다"며 "매년 10% 이상 씩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역시 같은 뉴스에서 송영신 시니어 희망 공동체 대표는 "65세 이상 노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안전망이 작동하고 있고, 여성들을 위한 사회 복지 서비스도 체계가 잡혀 있다"면서 "남성 중년층이 사각 지대"라고 말했다. 중장년층의 외로운 죽음이 늘어나는 이유, 이들을 위한 체계적인 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이날 작은 장례를 공동 주관한 김성만 사랑의 쉼터 팀장은 한겨레두레를 통해 "고인 김○○씨는 건설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성실하게 살았는데 가정이 해체된 이후 쪽방촌에 입주했다"면서 "다시 가정을 회복하고 싶어했지만 끝내 홀로 떠나고 말았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 그 사회 수준을 반영"
"모로 누워 칼 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신영복 선생,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물론 감옥과는 다르겠지만, 쪽방촌 역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할 확률이 높은 환경을 갖고 있다. 김경환 이사는 "방음 시설이나 이런 것이 제대로 돼 있을 리 없어 서로 부딪히거나 미워하는 경우가 많기 마련"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장례식에 온 쪽방촌 주민들이 많은 것은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살아 생전의 외로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이사는 "오늘 장례식에 참석한 주민들이 '이렇게 장례를 치를 수도 있겠구나', '내가 죽더라도 이웃들이 적어도 이렇게 간소하게나마 장례를 해주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면서 "본인의 문제처럼 느꼈을 것이다. 일종의 안도감을 가질 수 있게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작은 장례'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불행으로 여기기 쉬운 사람들' 삶의 방식에 변화를 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김상현 '한겨레두레' 이사장은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 그 사회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한다"며 "그동안 죽음에서조차 차별 받고 소외되었던 분들에게 추모식이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한 김 이사장은 "가장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이의 장례를 가장 성대하고 장엄하게 치르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강조했다.
'한겨레두레'와 '사랑의 쉼터' 두 단체는 앞으로도 무연고자나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장례'를 종로구 전역으로 확산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