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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순희씨가 월출산 숲에서 소나무의 생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추씨는 국립공원 월출산에서 15년째 숲 해설 자원활동을 하고 있다.
추순희씨가 월출산 숲에서 소나무의 생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추씨는 국립공원 월출산에서 15년째 숲 해설 자원활동을 하고 있다. ⓒ 이돈삼

"참나무요. 나무를 껴안으면 차갑지 않고 푹신해요. 겉보기에는 딱딱해 보이는데요. 꼭, 엄마 같아요. 손발이 성한 데 없이 쩍쩍 벌어진 몸이지만,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내어주는... 그 엄마를 닮았어요. 그러면서도 숲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우월함이 있어요. 큰 나뭇잎으로 햇빛과 만나요. 다른 나무보다 성장 속도가 빠를 수밖예요. 주변 환경에 따라 가지를 만들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고요."

가장 좋아하는 나무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한 추순희(48,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씨의 대답이다. 의외였다. 사실 참나무는 나무 가운데 으뜸이라지만, 우리 산에서 가장 흔한 나무이기 때문이다.

"꽃이 모두 경이롭지만, 애기풀(꽃)이요. 자세히 봐야 보일만큼 아주 낮은 데서, 그것도 조그맣게 피는 꽃인데요. 정말 앙증맞아요. 보라색 꽃이 화려하고. 씨도 하트 모양으로 예쁘게 여물고요."

추씨가 가장 좋아하고, 마음이 간다는 꽃이다. 그녀는 국립공원 월출산에서 15년째 숲 해설을 하고 있다. 그것도 자원활동이다. 지난 2013년엔 국립공원 명예의 전당 '자원봉사 부문'에 입성했다. 지난 1월 26일 월출산에서 추씨를 만났다.

"솔직히 숲에 미쳐갔어요, 저의 마지막 출구였던가 봐요"

 추선희씨가 숲 해설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국립공원 월출산. 전라남도 영암과 강진에 걸쳐 있다.
추선희씨가 숲 해설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국립공원 월출산. 전라남도 영암과 강진에 걸쳐 있다. ⓒ 이돈삼

 월출산은 기묘한 바위들로 이뤄진 산이다. 크고 작은 바위들의 동창회 같다.
월출산은 기묘한 바위들로 이뤄진 산이다. 크고 작은 바위들의 동창회 같다. ⓒ 이돈삼

전북 진안에서 나고 자란 추씨는 1992년 결혼하면서 영암에서 살았다. 하지만 힘에 겨운 나날이었다. 쿨하고 대범한 성격이었지만 힘들었다. 자주 울었고, 많이 아프기도 했다. 그럼에도 살아내야 했다. 꼬박 10년을 그렇게 살았다.

추씨가 숲 해설과 인연을 맺은 건 지난 2001년이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주관한 '자연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였다.

"그동안 숲의 겉모습만 봤더라고요. 내면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이 품고 있는 아픔도 있는데요. 죽기도 하고, 다시 태어나기도 하고요. 삶과 죽음, 고통까지도 다 품고 있는 게 숲이고, 산인데요."

힘겨운 일상에서 만난 숲과의 신선한 만남이었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가 다시 보였다. 나무를 끌어안고 울면서 자신의 아픔을 씻어냈다. 낮은 데서 사는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와 눈을 맞추면서 가치를 알게 되고, 자신의 고통이 아물어지는 걸 느꼈다. 숲이 주는 치유였다. 월출산의 아름다움에도 매료됐다.

 추순희씨가 월출산 숲에서 소나무의 생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1월 26일이다.
추순희씨가 월출산 숲에서 소나무의 생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1월 26일이다. ⓒ 이돈삼

내친김에 추씨는 심화교육을 받았다. 식물과 곤충을 보면서 '왜?'라는 의문을 품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왜 얼레지는 꽃잎을 뒤로 젖힐까? 왜 도토리거위벌레는 도토리에 알을 낳고 참나무 가지를 떨어뜨릴까? 모든 게 궁금해졌다.

추씨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식물들을 찬찬히 살폈다. 자세를 낮추고, 눈높이를 맞췄다. 관련 서적도 뒤적였다. 전문가한테 묻는 일도 다반사였다. 시나브로 마음의 눈이 열리기 시작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식물까지도 눈에 들어왔다.

"솔직히 숲에 미쳐갔어요. 저의 마지막 출구였던가 봐요. 숲이. 나도 모르게 나를 쏟아 부은 거죠. 그랬더니 보이더라고요. 곤충의 생태를 알게 되고요. 꽃 한 송이의 가치도, 나무의 생각도 보이고요. 그 순간 기쁨과 행복, 희열을 느꼈어요. 자연을 내 삶으로 받아들이고, 위안을 받고요. 희망의 끈도 다시 찾게 되고요. 나의 인생을 바꿔줄 하나의 방향키였던 것 같아요."

추씨는 숲에서 새로운 의지를 배웠다. 어렵고 힘든 나날을 견뎌내는 방법도 알게 됐다. 다른 누군가에 희망을 주면서 사는 법도 깨달았다. 이듬해부터 탐방객들을 대상으로 숲 해설을 시작했다.

 월출산의 숲길에 선 추순희씨. 폭설이 내린 직후인 지난 1월 26일이다.
월출산의 숲길에 선 추순희씨. 폭설이 내린 직후인 지난 1월 26일이다. ⓒ 이돈삼

 추순희씨가 하얀 눈이 쌓인 월출산의 숲길을 걷고 있다. 지난 1월 26일이다.
추순희씨가 하얀 눈이 쌓인 월출산의 숲길을 걷고 있다. 지난 1월 26일이다. ⓒ 이돈삼

추씨가 숲 해설사로 자원봉사를 한 게 벌써 15년째다. 해설을 하면서 스스로 성장했다. 그 성장을 통해 행복의 맛을 알고, 성취감도 느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 행복했다. 그녀는 탐방객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해설을 했다. 탐방객들이 숲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으로 만들어줬다.

"사람들은 자연을 볼 때 주관적이죠.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보는 겁니다. 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것도 그런 연유고요. 저는 그런 마음을 바꿔 줬어요. 들여다보고,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요. 나무나 숲의 입장에서 생각하도록이요. 자연의 모든 생명들을 통해서 우리 삶을 바라보는 거죠. 자연의 생명과 우리 삶의 공감대를 만들어주려고 했죠."

추씨의 감성있는 해설이 탐방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해설을 요청하는 탐방객들이 늘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표창을 받았다. 환경부장관 표창과 국무총리 표창도 받았다.

 추순희씨가 펴낸 책 <숲은 번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의 표지. 추씨가 15년 동안 숲 해설을 하며 자연에서 배운 삶의 지혜를 풀어 놓았다.
추순희씨가 펴낸 책 <숲은 번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의 표지. 추씨가 15년 동안 숲 해설을 하며 자연에서 배운 삶의 지혜를 풀어 놓았다. ⓒ 이돈삼

추씨의 활동은 숲 해설에만 머물지 않았다. 환경을 주제로 한 연극 시나리오도 몇 편을 썼다. 자동차도로에서 죽어가는 야생동물과 불법 밀렵으로 희생되는 동물 이야기를 다뤘다. 숲을 파괴하는 사람들도 풍자했다. 연극으로 만들어 봉사자들과 함께 무대에 올렸다.

최근엔 자연을 주제로 한 에세이집을 냈다. <숲은 번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솔트앤씨드 펴냄)가 그것이다. 15년 동안 숲 해설을 하면서 자연에서 배운 삶의 지혜를 담았다. 숲속의 나무와 식물, 곤충을 관찰하며 느낀 생각들을 이야기로 풀어냈다.

"숲에는 삶의 애환이 담겨 있어요. 따뜻함과 지혜도 있고요. 전쟁과 공존이 함께하며,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과 희망도 있고요. 자연에서 얻은 이런 지혜가 저의 서툰 삶을 지탱해 주더라고요."

추씨가 숲에서 발견한 힐링법이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을 마음에 담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녀가 오늘도 숲 해설에 나서는 이유다.

 추순희씨가 눈 내린 월출산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추씨는 15년째 국립공원 월출산에서 숲 해설 자원활동을 하고 있다.
추순희씨가 눈 내린 월출산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추씨는 15년째 국립공원 월출산에서 숲 해설 자원활동을 하고 있다. ⓒ 이돈삼



#추순희#월출산#숲해설사#국립공원#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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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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