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만 3∼5세 무상 보육·교육 공통 프로그램) 예산 갈등이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중앙 정부와 지방 교육청은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교육감들은 누리과정이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만큼 국고지원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교육부는 법령상 교육감이 교육청 재정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편성해야 한다며 이를 거부하는 교육청에 대한 감사원 감사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사태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일선 교육 현장의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켜져만 간다. 과연 해법은 없는 것일까.
복잡한 셈범과 첨예한 입장이 공방을 벌이는 것 같지만 사실 문제는 단순하다. 누리과정에 소요되는 4조 원 가량의 예산을 누가 부담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중앙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가, 아니면 지방 교육청이 부담해야 하는가.
누가 돈을 댈 것인가를 정하려면 누가 이 사업을 결정했는가를 보면 된다. 누리과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고 중앙 정부의 정책 결정 사항이다. 누리과정처럼 지역적 차이에 상관없이 전 국민에게 보편적, 공통적으로 제공되어야 할 정책은 당연히 중앙정부의 몫이다.
다만 서비스 전달체계의 측면에서 결정된 정책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지방 교육청이 그 업무를 대행하는 것이다. 누리과정이 지방정부의 자체 사업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대행사업이라면, 그 예산 또한 중앙정부에서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다.
이렇게 보면 간단한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으니 '복잡한 속내'가 있다는 얘긴데, 그래서 이 책을 꺼냈다. 김태일 '좋은예산센터' 소장이 쓴 <재정은 어떻게 내 삶을 바꾸는가>이다. '이제는 알아야 할 지방재정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지방재정의 쟁점과 현황을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누리과정처럼 중앙정부의 대행사업으로 인한 재정 갈등은 지방 자치의 최대 현안이다.
지방정부, 무슨 돈을 어떻게 쓰고 있나?
지방정부의 권한과 의무는 '지방자치법'이 규정하고 있다. 법령에 따르면 지방정부는 지방행정 관리, 복지, 산업진흥, 생활환경시설의 설치 관리, 교육, 지역민방 및 소방에 관한 사무 등 6개 분야 57개 사무를 처리하도록 되어 있다. 이 중 교육은 지방교육청이 지역민방 및 소방업무는 지역소방본부와 소방서에서 담당한다.
자체업무 외에 중앙정부의 업무를 대행 집행하는데 이를 '위임사무'라고 부른다. 복지는 지방정부의 자체업무이지만 실제로는 중앙정부 위임사무가 자체업무보다 훨씬 많다. 누리과정을 비롯해 기초연금,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 등이 모두 위임사무다. 자체업무는 지방정부의 자체 재원으로 충당한다. 반면 위임사무는 중앙정부로부터 지시를 받고 사업비 지원을 받는다.
저자는 자체업무와 위임사무에서 발생하는 지방재정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자체업무의 경우 지방정부가 재량을 가지고 과욕을 부려 문제가 된다. 대규모 개발사업이나 남발하는 지역축제로 인한 예산 낭비와 재정 위기는 '지역 토호-공무원-지역 정치인'의 견고한 카르텔이 만들어내는 만성적인 문제다. 중앙정부 대행업무에서는 지방정부가 자기 재량없이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데서 오는 적합성 문제와 중앙정부가 사업경비의 일부를 지방정부에 떠넘긴다는 문제가 있다.
재정이란 돈을 얼마나 걷어서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 하는 문제다. 책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GDP(국내총생산) 약 1400조 원 중 30%가 정부 몫이었다. 이는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편인데 그 이유는 복지지출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조세수입을 기준을 삼으면 국세(중앙)와 지방세의 비율은 8 대 2 정도다. 그러나 지출을 기준으로 삼으면 전체 지출 중 중앙과 지방의 비율은 4 대 6으로 역전된다. 지방정부의 지출이 더 많아서 놀랄 수도 있겠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지방정부 지출의 상당 부분은 대행업무가 차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출의 '내용'만 놓고 중앙과 지방의 몫을 따지면 대략 7 대 3 정도가 된다고 한다.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은 두 가지다. 첫째, 왜 지출은 지방정부가 더 많이 하는데, 조세수입은 중앙정부가 훨씬 많을까? 둘째, 지방자치를 한다면서 어째서 대행사업 규모가 자체사업 규모보다 더 클까? 저자는 "수입과 지출의 중앙 대 지방의 몫 정하기와 지방정부의 자체사업과 대행사업 규모 정하기를 잘하는 것은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위해서 몹시 중요하다"고(78쪽) 설명한다.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 어떻게 봐야 하나?지방정부가 담당하는 대행사업의 문제점은 복지업무에서 두드러진다. 특히 대행사업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방 교육청 예산은 거의 국고지원금으로 충당한다. 복지 분야 사업의 급증으로 재정곤란을 겪는 지방정부가 속출한다.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중앙정부의 사업을 대신 집행하면서 돈까지 부담해야 하니 불만이 많다. 저자는 "대행사업은 지방정부 사업에 국고로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 사업에 지방재정으로 보조하는 것"이라며 "이렇게보면 대행사업은 국고보조사업이 아니라 지방재원징발사업이 된다"고(116쪽) 지적한다.
대행사업에 따르는 갈등을 해소하려면 길은 두 가지다. 애초에 중앙정부 사업은 지방에 맡기지 말고 중앙이 책임지는 방법과 지방정부에 위임할 것이 아니라 아예 '이양'하는 방법이 있다.
저자는 '국민연금관리공단'을 통해 중앙정부가 직접 국민연금 집행을 책임지는 것처럼 기초연금, 보육료, 국민기초생활급여도 같은 방법으로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각각을 따로 만들기 어려우면 아예 '사회복지청'이라는 것을 신설해 관련 업무를 담당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이랬을 경우 복지전달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읍면동과의 관계는 행정을 간소하게 하면서 충분히 협력적으로 역할을 설정할 수 있다고 본다.
대행사업을 아예 지방정부의 자체사업으로 이양한다면, 기존의 국고보조금은 지방세를 늘리는 형태로 전환된다. 이 경우에 복지사업은 단체장의 성향이나 지자체의 재정여건에 따라 달라질 우려가 있다.
중앙정부가 공통으로 제공하던 복지서비스가 지방마다 다르게 적용된다면 형평성에서도 논란이 생길 것이다. 학자들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민기본선'이라는 것을 정하자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복지 사업의 지방 정부로의 전환은 국민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상당한 불안요인을 안고 있기 때문에 받아들여지기는 힘들 것이다.
지금까지 대행사업에 따른 지방정부의 의존재원 비중을 줄여야 '자치'를 더 많이 확보할 있다는 주장이 계속되어 왔다. 저자가 보기에 이것은 정확한 문제제기가 아니다. 예컨대 재정자립도가 낮다고 해서 무조건 '자치'의 수준이 낮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복지사업의 증가에 따른 지방정부의 의존재원 증가를 놓고 자치 수준이 떨어졌다고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요점은 제대로 된 자치, 건실한 지방재정 운영을 위해 재정자립도 자체 보다는 어떤 연유로 재정자립도가 낮은지, 의존재원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128쪽)이다.
교육을 단체장 업무로 통합하면 어떻게 될까?복지에서 지방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지만 대부분은 중앙정부에서 만든 사업을 집행할 뿐이다. 못하면 욕먹고 잘해도 생색이 나지 않는다. 지방정부에서 생색낼 수 있는 분야는 역시 대규모 개발사업이다. 그러나 대규모 개발사업은 십중팔구 지방재정을 위태롭게 하며 대개는 소수에 이득이 집중된다. 지역주민 대다수에게 이득이 되면서 생색내는 사업은 없을까? (15쪽)이와 관련해 저자는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교육을 단체장의 업무로 하자는 것이다. 둘째, 지역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것이다. 지역개발이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것은 지방토호-지역 정치인-공무원이 한통속이 되어 지방정치를 왜곡하고 지방재정을 낭비하는 토건개발 사업을 지양하자는 의미다. 이에 대해서는 무분별한 개발사업 남발로 재정위기를 초래한 사례들을 봤을 때 응당 적절한 지적이다.
토론이 필요한 부분은 교육을 단체장 업무로 하자는 주장이다. 현재 교육의 책임자는 광역시장, 시도지사가 아니라 시도 교육감이다. 교육이 다른 행정업무와 별도로 분리되어 있다. 그래서 교육감도 직접투표로 선출한다. 헌법이 보장한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교육이 분리 자치는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국가 교육 전체를 책임지는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교육의 분리가 교육자치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면 교육부 장관도 선거로 선출해야 일관성이 있는 것 아닌가?
유독 지방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서만 단체장이 아니라 별도의 책임자를 뽑는 제도는 세계적으로도 봤을 때도 예외적이라고 한다. OECD 국가들 중 한국을 제외하고 미국, 스위스 정도가 있을 뿐이다.(258쪽) 저자는 "교육자치를 분리함으로써 성과만 좋다면야 비록 근거가 미약하더라도 시비할 일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도 교육감이 펼치는 자기 지역의 교육정책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공약 이행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오히려 교육이 단체장 업무가 되면 단체장 선거에서 교육 공약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핵심 이슈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보다 나은 지방자치를 바란다면 교육자치 분리는 통합으로 바꾸어야 한다"며 "교육자치는 교육행정을 다른 행정과 분리하라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받는 교육이 그래야 한다는 것, 즉 교육은 전문가에 의해 제공되어야 하고 외압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정치적으로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제대로 된 공공 교육서비스 제공을 위한 올바른 체계를 단체장으로 할 것인지, 교육감으로 할 것인지는 분명 논의의 여지가 있다. 당장 누리과정 논란의 해법이 교육을 단체장 업무으로 통합하는 것이라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시도교육감 소관이든 단체장 소관이든 지금처럼 중앙정부가 국고보조금을 무기로 지역정부를 쥐락펴락하려는 행태가 시정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자치는 요원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재정은 어떻게 내 삶을 바꾸는가> (김태일, 좋은예산센터 지음 / 코난북스 펴냄 / 2014.7.)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