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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설이면 자연스레 오가는 인사말일 겁니다. 설을 맞아 가까운 이들에게 진솔한 마음을 드러내는 편지를 써보는 건 어떨까요? '설날에 쓰는 편지', 지금 시작합니다. [편집자말]
벌써 설 명절이네요. 명절마다 고부간 갈등이나 부부 간 갈등이 많이 발생한다는데, 우리는 그럭저럭 큰 부딪침 없이 보내고 있는 거 맞나요?

당신은 이미 잊었겠지만 사실…. 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명절에 관한 안 좋은 추억이 있어요. 이렇게 편지를 써봐요.

명절에 관한 안 좋은 추억 첫 번째

대여섯 가지의 전, 잡채, 갈비찜, 만두 등 잔뜩 먹거리를 만드시는 시댁의 첫 명절. 형님이 생기기 전 유일한 며느리였던 제가 명절 내내 주방에 쪼그리고 앉아 음식을 만들어내고 아이도 없는 우리가 1년은 먹음직한 음식을 한 보따리 들고 집에 돌아올 때 당신이 내게 건넨 말.

"고마워. 고생했어"

친청에서도 안 하던 가사 노동과 효도를 결혼으로 강요받는 느낌이 들어서였을까요. 첫 명절을 보내는 아내의 고생이 뻔히 보임에도 어머니께 아무 말하지 않던 당신이 건넨 그 한마디가 저의 명절 노동을 알아줘 고마우면서도 살짝 원망스럽더군요.

명절에 관한 안 좋은 추억 두 번째

 설 음식(자료사진).
설 음식(자료사진). ⓒ 임현철

결혼하고 첫 번째 명절에 빚은 만두를 다음 명절까지 다 못 먹어 냉동실에 고스란히 뒀다는 것을 제가 식구들 앞에서 이야기했을 때 시어머니께서 농담 한마디하셨죠.

"왜 내 아들 굶겨?!"

그때 시어머니께 만두가 아직도 남았더라고 말한 저의 의도는, 지난 명절 음식도 다 먹지 못했는데 두 번째 명절에도 정말 많은 음식을 했기 때문이었어요.

지금도 그때도 맞벌이로 바빠서 주중에는 둘이 같이 저녁식사를 할 틈도 아예 없었죠. 당시에는 아이도 없어서 더욱 음식의 소비가 없었을 거예요. 아이들이 생긴 지금에야 주말에 세 끼를 다 챙겨 먹지만 당시 둘이만 지낼 땐 늦은 아침과 이른 저녁, 두 끼만 챙겼잖아요. 또 주중에 같이 식사할 틈이 없다 보니 이른 출근을 하는 부부의 시간에 맞춰 아침만을 먹었죠.

그러니 시댁에서 그릇 서너 개에 꽉꽉 담아주신 만두, 사실 만두뿐만 아니라 다른 음식들조차 다 먹을 새가 없었노라는 의도로 이야기를 꺼냈는데 어머니가 하신 말에 전 깜짝 놀랐답니다. 당신과 제가 우리 부부의 상황을 설명을 드려도 어머니는 만두가 얼마나 영양가가 높으며 아침에 먹기 좋은 음식인지 말씀하셨죠. "아침을 밥으로 먹는다잖아"라고 상황을 정리해주신 시누이가 얼마나 감사하던지.

사실 오랜 기간 알고 보니 우리 시어머니는 드라마에 나올 법한 '엽기 시어머니'와는 완전히 거리가 멀 뿐더러 무섭지도 않으신, 세상에 둘도 없는 점잖으신 분이에요. 저도 인정.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제가 그때 많이 서운했나 봅니다.

그 뒤로 몇 번의 명절을 보내며 시어머니가 어려워서 음식을 많이 만들어도 아무 말 못하던 그 때, 당신이 나서서 아무리 말려도 손이 크고 정이 많으신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싸 보내려고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주방에서 떠나지 않으시며 음식을 만드셨죠.

먹을 것이 부족하던 부모님 세대는 명절만큼은 식구들이 모여 기름지고 맛있는 것을 먹어야만 했죠. 그러나 옛날과 달리 지금은 자주 만나기도 하고 먹을 것이 부족하지도 않아서 꼭 명절에 고칼로리의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할 이유가 없어졌어요. 더군다나 결혼 6년간 아이가 생기지 않아 우리 둘만(맞벌이로 바쁘게 지내던 그 시기엔 특히 더) 냉장고를 꽉꽉 채워둘 필요가 없었고요.

특별히 고된 노동 때문에 반갑지 않은 명절

 차례상(자료사진)
차례상(자료사진) ⓒ pixabay

아이가 둘인 지금이야 시어머니의 음심은 늘 감사하지만 명절만 되면 평소보다 많은 시간을 부엌에서 머물러야 하니 전 명절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네요.

최근 신문에 맞벌이 부부의 가사노동시간을 비교하는 기사가 나왔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이 남성보다 현저하게 긴 편이라는 기사였죠. 비단 우리 집뿐만 아니라 다른 집들 역시 가사노동과 육아에 있어서 남자에 비해 여자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얘기에요.

그러니 저뿐만 아니라 모든 아내들이 시가에 먼저 가서 평소보다 많은 일을 해야 하는 명절을 그리 좋아하지 않더라도 당신이 그리고 남편들이 좀 이해해줬으면 좋겠네요.

사실 당신은 가사나 육아를 무척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남편이에요. 힘든 베란다 청소나 재활용품 분리수거는 온전히 당신의 몫이고 설거지도 자주 돕죠. 정리나 기분전환이라며 수시로 가구의 위치를 바꾸는 노동을 시켜도 제 의견을 존중해줄 뿐더러 육아도 적극 참여해서 늘 고맙게 생각해요.

그럼에도 첫 번째 회사의 입사 동기로 사회에 발을 내딛고 17년 동안 똑같이 돈을 벌며 일하는 나는 왜 당신보다 가사나 육아에 더 많은 부담을 가져야 하냐고 가끔 속으로 불평해요.

당신도 알다시피 육아의 경우 아이들이 아프거나 유치원에서 상담할 일들이 생기면 온전히 엄마에게 의존하게 되죠. 가사의 경우 역시 지금 냉장고에 있는 것을 꺼내 먹고, 서랍에 있는 옷을 꺼내 입는 당신의 살림과 달리 저는 오늘이 아니라 내일 혹은 일주일 후까지의 먹거리와 입을 거리를 고민하고 준비한다는 것이 다르기 때문일 거예요.

물론 이런 일들보다 더 중요한 가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당신이 홀로 해내고 있다는 거 나도 잘 알고 있어요. 아직도 자신이 세상의 중심인 아이들과 시시때때로 까칠해지는 아내의 투정을 받아주어 늘 고맙게 생각해요.

지금에야 고백하는 이런 사소한 고비가 있었어도…. 우리 부부 지난 14년 서로 잘 지낸 거 맞죠? 우리가 같이 보낸 열세 번, 아니 스물여섯 번의 명절마다 서로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해온 시간보다 앞으로 더 길게 우리 앞에 놓인 삶을 서로 잘 보듬어가며 지내요.

사회생활에서는 동반자이자 선의의 경쟁자로, 두 아이에게는 부모로서 앞으로도 지금처럼 지내요. 더도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일상의취향by까칠한 워킹맘"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70점엄마#설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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