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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 옆에서 짓고 있는 배정훈·지훈 형제의 컨테이너 주택.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 옆에서 짓고 있는 배정훈·지훈 형제의 컨테이너 주택. ⓒ 배정훈

인천광역시 강화도에서 석모도로 가는 배가 뜨는 외포리 선착장. 그 입구 조그마한 밭 위에 큰 무역항에서나 봄직한 육중한 컨테이너가 한 대 서 있다.

옆면에 출입문은 물론 창문까지 뚫려있는 걸로 봐 그냥 컨테이너 같아 보이진 않는다. 굳게 닫힌 문을 열면 칸막이가 된 방이 여러 개 있고 바닥칠까지 깨끗하게 마감돼 있다.

"우리가 만든 집입니다. 아마 웬만한 가정집보다 편안하고 따뜻할 거예요."

나이에 비해 한참 앳되어보이는 배정훈(34)·지훈(33) 형제는 확신에 찬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형은 교대 3학년, 동생은 소위 명문대 졸업반. 형제 모두 늦깎이 대학생인 이들은 왜 바닷가에 와서 이 험한 일을 하고 있을까.

형제가 힘을 합쳐 낡은 집을 새집으로... "곧 본전 뽑아요"

형 정훈씨는 "대학에 들어가 보니 친구들 모두 비싼 월세 때문에 힘들어 하더라"며 "우리가 힘을 합쳐 낡은 집을 개조한 다음 싼값에 청년들에게 제공해보면 어떨까 생각한 거죠"라고 말했다.

형제 모두 어려서부터 건축 설비 일을 하시는 아빠를 많이 따라다녀 집수리가 낯설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지난 2013년 가을, 형제는 '쓸 만한' 집을 찾아 나섰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유동인구 맵을 뒤졌다. 청년들이 많이 거주하면서도 집값이 비싸지 않은 지역 부동산에 일일이 전화로 문의했다. 가장 먼저 나온 집이 성북구 석관동의 대지 60평짜리 2층 단독주택.

집이 워낙 낡아 세입자가 안 들어오는 집이었다. 집주인으로선 안 그래도 들어오겠다는 사람도 없는데 집도 좋아지고 세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듬해 1월 4년 계약을 하고 2월에 공사에 들어가 한 달만에 수리를 끝냈다. 배관이나 전기같은 큰 공사는 사람을 불러야 했지만 인테리어, 하수도공사 같은 건 형제가 다 했다. 침실은 각자 쓰지만 거실, 부엌은 같이 쓰는 셰어하우스 같이 운영했다.

최고 월 35만 원에 대학생 7명을 받았다. 1년이 지나면 5만 원씩 깎아주고, 비누·치약·칫솔·휴지 등 생필품까지 제공했는데도 다행히 매달 조금씩 수익이 생겼다.

"처음엔 그저 '남으면 좋지'하고 생각했는데 실제 운영해보니까 남더라구요. 2년 반에서 3년쯤 지나면 투자비를 회수하고, 그 때부턴 진짜 수익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배정훈·지훈 형제의 컨테이너 주택 내부에 배관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배정훈·지훈 형제의 컨테이너 주택 내부에 배관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 배정훈

 배정훈·지훈 형제의 컨테이너 주택 내부 바닥공사가 끝난 모습. 주택 내장과 외장은 컨테이너가 옮겨진 후에 이뤄진다.
배정훈·지훈 형제의 컨테이너 주택 내부 바닥공사가 끝난 모습. 주택 내장과 외장은 컨테이너가 옮겨진 후에 이뤄진다. ⓒ 배정훈

"이제 2호점을 지어보자"... 자신 있게 나섰지만

자신이 붙은 형제는 2호점 개설에 나섰다. 그러나 곧 난관에 부딪혔다. 1호점 때처럼 서울시내 대부분의 부동산을 다 알아봤지만, 예전같이 고쳐 쓸 만한 집이 나오지 않았다.

TV에서 셰어하우스 형태의 주택이 인기 있다고 몇 번 방영된 지라 집주인들이 쉽사리 집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직접 하거나 재건축·빌라 업자들에게 파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나마 나온 곳도 임대료가 너무 비싸거나 도저히 수리할 수 없을 만큼 낡았다.

형제가 고민 끝에 찾아낸 게 컨테이너 주택이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컨테이너를 활용한 미국의 'my micro NY 프로젝트'라는 게 있었다. 우리나라 기획재정부에서 '나라키움 대학생 주택'도 컨테이너를 쌓아서 만든 것이었다. 그래도 난관은 계속됐다.

"막상 컨테이너 주택을 만들려고 하는데 작업할 땅이 있어야지요. 경기도 일산에서부터 찾기 시작해서 김포를 지나 결국 이곳 강화도까지 오게 됐어요. 아무래도 섬으로 가니 땅값이 싸더라구요."

부모님과 돈을 보태 밭 300평을 샀다. 부모님은 200평이 주말농장을 하고, 나머지를 형제가 쓰기로 했다.

작년 10월에 20여 일을 작업해 내부수리를 완료했다. 방이 3개이고, 주방을 포함한 공용공간은 따로 마련됐다. 1-2인 가구가 살기에 딱 맞는 맞춤형 주택인 셈이다.

그러나 진짜 난관은 이제 시작이었다. 컨테이너 주택만 완료해놓으면 갖다놓을 곳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1호점을 찾을 때 봐뒀던 자투리땅을 주인들이 팔려고 하지 않았다.

난감해진 형제는 국공유지를 찾기 위해 정부청사가 있는 세종시로 내려갔다. 안행부, 국토부 등 정부기관을 찾아갔으나 국유지는 불가능하니 지자체로 찾아가라고 했다.

결국은 서울시로 다시 올라왔다. 다행인 것은 서울시가 이들과 같은 자발적인 주거개선사업에 매우 적극적이라는 것.

시가 빈집을 사들여 고친 뒤 저렴한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빈집살리기프로젝트'나 시가 토지를 매입해 임대사업자에게 싸게 빌려주는 '토지임대부사회주택' 같은 사업은 이들 형제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사업이다.

형제는 최근 협동조합을 만들어 신청한 뒤 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배정훈·지훈 형제가 "우리가 청년 주거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배정훈·지훈 형제가 "우리가 청년 주거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 김경년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업으로 하는 겁니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이들은 과연 이 사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짓고 몇 년 지나면 본전을 뽑는다고 하지만, 본인 생활비를 충당하고 가족까지 부양할 수 있을까.

이들의 대답은 "1호점도 수익분기점은 넘고 있으니까 여러 개 한다면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도저히 안 되겠으면 그 때까지 쌓은 기술로 다른 데 가서 먹고 살 수 있지 않겠냐"는 것. 이들은 틈틈이 설비, 목공일을 배우고 있고 건축관리사나 부동산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형 정훈씨는 전공 살려 교사가 되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정교사 자격증에는 관심이 없다"며 "우리는 이 일을 단순 아르바이트가 아닌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동생 지훈씨 역시 "고생이 되더라도 2번째, 3번째 집을 계속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형과 함께할 것을 다짐했다.

형제는 "얼마 전 이 방면 전문가인 아빠가 컨테이너 주택에 와서 직접 보시고는 '괜찮아 보인다'고 하시더라"며 뿌듯해했다.

안신훈 서울시 주택정책과 주무관은 "젊은 사람들이 '청년 주거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며 스스로 찾아와 놀랐다"며 "장기적으로 충분히 사업성이 있고 그런 사례도 있는 만큼 이들의 사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가능한 지원책을 적극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컨테이너주택#대학생#보후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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