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만드는 건 아주 재밌었어요. 근데, 대사관 생활이 그렇지 않더라고요. 요리를 하면서 보람을 찾을 수 없었어요. 생활 여건도 열악했고요. 한 마디로 '멘붕'이 왔어요. 내가 반쪽으로 쪼개질 것만 같았거든요. 그래서 그만뒀어요."윤지아(30)씨의 말이다. 그녀는 프랑스에 있는 한국대사관 관저의 주방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윤씨는 지금 고향, 전라남도 장흥의 토요시장에서 아주 작은 카페 겸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주방을 포함한 면적이 모두 20㎡밖에 안 된다.
프랑스까지 날아갔던 요리사가 시골마을의 재래시장으로 내려온 사연이 궁금했다. 그녀를 지난 1월 27일 장흥토요시장에서 만났다.
요리사 꿈꾸던 아이, 프랑스로 향하다
윤씨의 꿈은 어려서부터 요리사였다. 큰며느리였던 어머니(이소라·55)가 집안의 대소사를 다 챙기면서 즐겁게 요리하던 모습을 보면서 꿈을 키웠다.
"엄마가 요리할 때 콧노래를 부르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힘들었을 텐데…, 그랬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정말 요리가 재밌는 것으로 생각했거든요."요리사의 꿈을 깊이 품은 건 중학교 때였다. 학교 가정교사의 각별한 지도를 받으며 공부를 했다. 부모의 반대가 심했다. 지금과 달리, 요리사에 대한 인식이 낮은 탓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학교성적도 아주 좋았다.
윤씨의 본격적인 요리 공부는 스무 살때 시작됐다. 한 대학의 한국음식연구원에 들어갔다. 요리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를 하고 싶어서 24살 때 대학입학 수능시험을 준비했다. 이듬해 배재대학교 외식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한식 조리를 배우려고 전주대학교 전통음식문화학과에 편입했다.
그러는 사이 윤 씨는 각종 요리 경연대회를 휩쓸었다. 가사 기능경진대회 1등, 대학생 요리 경연대회 왕중왕전 장려상, 전주 한식반찬 공모전 장려상을 받았다. 한국 국제요리 경연대회 주니어 라이브 금상, 전국 죽순요리 경연대회 대상, 한국식공간 페스티벌 테이블세팅 공모전 대상을 받았다.
업계에서 촉망받던 윤씨는 크고 작은 행사에도 참가, 음식을 제공하는 일을 했다. 롯데호텔 한식당에서 실습을 했다. 여러 사람과의 경쟁을 뚫고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 관저의 요리사로 뽑혀서 일도 했다.
향기로운 사람들과 살기 위해 그만둔 대사관 주방장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을 6개월 만에 그만둔 윤 씨는 고향을 떠올렸다. 도시생활을 접고 고향에서 향기로운 사람들과 살고 싶었다. 때마침 장흥토요시장에서 특산품을 팔던 아버지(윤은갑·64)가 품목 전환을 고려하던 중이었다.
부모의 허락을 받아 시장 판매장을 레스토랑으로 바꿨다. 좁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다가 직접 인테리어 설계를 하고 작업도 대여섯 달 동안 직접 했다. 돈을 아끼면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꾸몄다.
"장흥은 모든 식재료가 나는 고장이에요. 높은 산이 있고, 넓은 들이 있고, 청정한 바다도 있고요. 여기서 난 최고급 식재료로 요리를 해보고 싶었어요. 내 고향의 훌륭한 식재료를 자랑하면서요."윤 씨는 시장 안에 카페 겸 레스토랑을 열었다. 시간과 공을 들여 밥을 짓고, 손님들과 날마다 새로운 인연을 짓고, 또 손님들은 재밌는 추억을 짓는다는 의미를 담아 상호도 내걸었다. 식단은 갖가지 스테이크, 샐러드 등 식사류와 뽕잎차, 커피 등 음료다. 부모가 운영을 거들고 있다. 가족경영이다. 손님들이 집에 초대받는 기분을 느끼도록 해주려고 노력한다.
윤 씨는 음식재료 대부분을 시장 안에서 구입한다. 한우고기, 표고버섯, 키조개, 매생이 등 모두 지역에서 생산된 로컬푸드다. 그날그날 조금씩 사서 쓴다. 장흥에서 나지 않는 양식의 양념류만 인터넷을 통해 살 뿐이다.
"재밌어요. 엄마 따라서 다니던 시장에, 아빠가 장사하던 그 시장에 돌아온 것도 좋고요. 다른 상인들도 저를 손녀 대하듯이 정겹게 대해주고요. 요리를 하는 것도, 시장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소소한 일상이 다 즐거워요. 행복하고요."돈도 먹고 사는 데 부족하지 않을 만큼 번다. 도시에서 열댓 시간씩 일을 하고 번 돈으로 월세를 내고, 먹고사는 데 급급했던 것에 비해 한결 낫다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걸 실패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또 다른 사람들과의 행복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는데요. 도시보다 더 정 많은 사람들이고요. 세속적인 욕심만 조금 버리고 온다면, 시골에서 여유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윤씨의 짧지만 굵은 생각이다. 그녀는 오늘도 행복한 마음으로 저녁 요리 준비를 시작한다. 요리의 값어치를 인정해 주면서 맛있게 먹는 손님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