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잠시 머물다 떠날 여행객 주제에 파리지앵 흉내를 내겠다고 설친 것이 문제였을까. 품위 없게시리 그깟 공짜 입장료에 현혹된 것이 문제였을까. 스마트폰을 시계처럼 사용해 온 구식 습관이 문제였을까.
그래도 그렇지 그 이름도 찬란한 파리인데,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해진 종이 지도를 들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느리게 거닐어야 제 맛이지, 이 고풍스런 도시에까지 와서 평소에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앱을 냉큼 열어 빨간색 화살표나 따라가고 그럴 순 없지 않겠는가.
파리의 작은 미술관들은 역사 깊은 고택들 사이나 커다란 나무들 틈에 숨어 있어 찾기 어려울 수 있다는 글을 호주 사람이 썼다는 여행기에서 얼핏 본 것 같기는 하다. 도대체 이 작은 미술관은 얼마나 작길래 이리도 꽁꽁 숨어 버린 것일까.
몽파르나스 타워 근처 잡화점 앞에서 영화배우처럼 생긴 청년을 붙들었다. 부르델 미술관을 물으니 잘 모르는 눈치다. 지도까지 들이밀며 물었지만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여기에 서 있는 건데..." 하며 딱 내가 알고 있는 만큼만 계속 이야기해댄다. 다시 보니 동네 미술관이랑은 별로 안 친하게 생겼다.
그래도 파리지앵인데 이방인을 돕는다는 자존심은 지켜줘야 할 것 같아서 급한 대로 몽파르나스 묘지를 물으니 거긴 잘 안단다. 이 길로 쭉 걸어가면 된다고 흡족한 표정으로 자신 있게 알려준다. 성공했다.
"너 말고 다른 이에게 물어도 여긴 다 알려 줄까?" "응, 그곳은 누구라도 다 가르쳐 줄 거야. 아주 유명한 곳이거든."확인을 받아 두었다. 어차피 다른 날 갈 계획이니까. 갈색 눈이 맑은 파리지앵 청년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일은 성공했는데 내 과업은 이루지 못했다.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한참을 헤매다 보니 이번엔 초등학교가 나타났다. 길모퉁이에서 초록색 유니폼을 입고 깃발 들고 서 있는 여자를 발견하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물었다. 기대했던 대로 잘 알려 준다. 엄마들은 아이들 때문에라도 동네 미술관이랑 친하다. 아무렴. 게다가 공짜인데.
건널목 맞은편에는 예쁜 카페가 있고, 카페 앞 테라스에는 싱그러운 청춘들이 에스프레소를 사이에 두고 앉아 서로를 응시하고 있는데, 이쪽 신호등 아래에는 아이들 하교 길 교통 안내를 위해 하염없이 깃발 들고 서 있는 여자가 있다.
예술의 도시, 낭만의 도시, 자유의 도시, 혁명의 도시 파리일지라도 아줌마들의 일상은 다르지 않은가 보다. 어쩜 유니폼이며 깃발까지 우리나라 초등학교 앞 녹색어머니회의 그것과 색깔도 모양새도 그리 똑 닮았는지.
파리지엔느 녹색어머니회 엄마 덕에 마침내 찾았다. 부르델 미술관(Musée Bourdelle). 앙투안 부르델 거리(Rue Antoine Bourdelle) 16번지. 6층짜리 하얀색 건물들이 촘촘히 늘어선 골목길에 아담한 작은 정원, 그 안에 2층짜리 빨간 벽돌 미술관이 참하게 서 있다.
조각가 에밀 앙투안 부르델(Emile Antoine Bourdelle 1861∼1929)은 프랑스 남부 소도시 몽토방에서 태어났다. 열세 살에 학교를 그만둔 뒤 가구 제조공인 아버지의 밑에서 목공일을 돕는다. 툴루즈 미술학교를 거쳐 스물넷에 에꼴 데 보자르(École des Beax-Arts)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지만 1년 뒤 그만두고 독학으로 조각을 공부한다.
당대 최고의 조각가였던 로댕의 눈에 띄어 그의 문하로 들어간 것이 서른두 살, 이후 마흔일곱에 그의 작업실을 나오기까지 15년을 로댕의 조수 겸 수제자로 작업을 하며 후대에 유명해지는 많은 조각가들의 스승으로도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가 1885년부터 1929년까지 아틀리에로 사용했던 주택을 미술관으로 만든 곳이 이 부르델 미술관이다. 미술관의 공간은 크게 앞뜰과 뒤뜰로 구획된 정원, 대형 전시실과 아틀리에를 포함한 1층과 2층, 별관의 1층과 지하, 그리고 이들을 이어주는 복도 정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앞뜰에는 주로 대형 청동상이, 뒤뜰에는 청동 부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1층 전시실에는 석고 원형들, 2층에는 청동 흉상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1888년 첫 작품을 시작으로 수십 년간 꾸준히 작업한 베토벤 연작 시리즈는 별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가 이토록 베토벤에 집착한 것은 천재 예술가의 광기와 고독에 공감한 까닭일까.
스승인 로댕이 주관적 인상에 충실한 인간의 감정 표현에 집중했다면 부르델은 오히려 그보다 고전적이다. 고대 신화나 현실의 영웅 등 주로 남성을 대상으로 한 그의 작품들은 매우 웅장하고 역동적이며, 질감 또한 거칠고 투박하다.
오르세 미술관에서도 만날 수 있는 그 유명한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는 당장이라도 활을 쏘아 날려 버릴 것처럼 근육이 살아 있고, <죽어가는 켄타우로스>는 비극이 절절히 전해져 자세히 들여다보기조차 힘들다.
거대한 기마상 <알베아르 장군 기념상>과 이를 둘러싼 <승리> <힘> <자유> <웅변>의 여신상들도 눈에 띈다. 곱게 흐르는 여인의 선과 면이 인상적인 <열매>는 부르델 작품에서 좀처럼 찾기 어려운 분위기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페넬로페> 앞에선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결혼 후 1년 만에 전장에 나간 남편을 20년이나 기다린 여인 페넬로페,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돌아와 극적 재회를 이루는 남편 오디세우스. 갸우뚱 턱을 받친 채 다리를 삐딱하게 내밀고 선 풍만한 이 여인이 어쩐지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를 들려 줄 것만 같다.
생애 마지막까지 사용했던 가구와 소품, 집기류 등을 그대로 보존해 둔 아틀리에도 인상적이다. 찰흙 반죽을 하던 낡은 작업대와 의자, 크고 작은 작업 도구와 이젤 등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매일 오전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작업을 했다는 부르델. 고된 창작의 공간을 엿보며 고뇌와 열정이 가득했을 고독한 새벽 시간을 상상해 본다.
아담한 정원에 앉아 있으니 세상이 참 고요하다. 유모차 끌고 나온 엄마와 아이, 폴짝거리며 조각상 사이를 헤매는 동네 꼬마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조각상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모사 작업 중인 한껏 진지한 예비 예술가들은 작품보다 더 오래 눈길이 머무는 장면들이다. 그네들의 평안함이 나를 정화시킨다.
길 건너 오래된 아파트가 보인다. 저기 방 한 칸 빌려 1년쯤 살아보면 어떨까. 게으른 휴일 아침이면 진한 커피 한 잔을 내려 담고 햇살 가득한 베란다에 나와 앉아 19세기 조각상들을 무심히 바라보곤 하겠지. 그런 날이 인생에 한 번 쯤 있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