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후 5시쯤 되면 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양떼들이 떠난 문시아리 언덕으로 몰려와 축구를 한다. 소와 양떼들이 핥고 지나간 목초지는 말끔하게 풀을 깎아 놓은 잔디구장 같다. 히말라야 설산이 에둘러 있는 풀밭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그 모습을 사진기에 담고 있는데 아이들이 내게 축구공을 내밀었다.
"함께 축구하지 않을래요?""무릎을 다쳐서 어렵겠는데......""어느 나라 사람입니까?""코리아.""아시아 최고의 축구팀 코리아!"아이들은 공을 차다말고 내게 우르르 몰려들어 내 신상 파악을 위해 학교에서 배운 온갖 영어를 동원했다. 아이들 중에 유일하게 손전화기를 가지고 있는 한 녀석이 코리아를 검색해 지도를 보여주며 이곳이 맞는가 물었다. 남쪽이 잘린 북쪽만 나와 있는 지도였다.
"그것은 반쪽 코리아다.""잠깐만 기다려 보세요."녀석은 다시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남북한이 다 그려져 있는 한반도 지도를 보여줬다. 나는 아이들에게 코리아가 둘로 나눠져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하나의 코리아로 기억하길 바랐다.
톱니바퀴 모양으로 뾰족이 솟아 있는 히말라야 설산 빤자졸리에 구름이 쉬어가던 날,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 나는 아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손전화기에 깔려 있는 번역기를 켜들고 영어는 물론이고 힌디어를 들려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내게 끊임없이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한국에서 축구를 가장 잘 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맨체스터의 박지성.""아, 맨체스터! 루니와 호날두 알아요?""루니는 영국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포르투갈 선수.""메시를 압니까?""메시는 아르헨티나 선수."우리는 짧은 영어로 소통했지만 서로 친해진 것은 영어가 아니었다. 축구였다. 아이들은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는 모르고 있었지만 아시아를 대표해 오랫동안 월드컵에 나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메시와 호날두가 있습니다."키가 작은 녀석이 메시,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큰 꺽다리 녀석이 호날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한다. 아이들은 내가 무릎을 다쳤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축구를 같이 하자고 한다. 바지를 올려 압박 밴드를 한 무릎을 보여줬다. 녀석들은 내 무릎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했는지 내게 공을 굴리며 한번 차보라고 한다. 가볍게 축구공을 공중에 띄워 헤딩을 했더니 잘한다며 박수를 친다.
"아시아 최고의 축구팀 코리아!"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축구하는 아이들
거듭해서 함께 축구 하자는 아이들에게 손을 내저었다. 뛰어다니기에는 무리라 말해놓고 저만치에 외 떨어져 앉았다. 녀석들이 대여섯 명씩 나눠 공기주입구가 배꼽처럼 툭 불거져 나온 축구공을 몰고 다닌다. 국적 불문하고 어느 동네 축구가 다 그렇듯이 여기저기서 요란한 소리를 내지른다. 목초지가 떠들썩해지고 저 멀리 히말라야 설산까지 그 기세가 오른다.
나의 어린 시절이 그러했듯이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려가며 지칠줄 모르고 뛰고 또 뛴다. 공을 찰 때마다 신발이 더 높게 날아가는 녀석, 굼뜨게 움직이다가 자빠지는 녀석, 그 사이에서 메시와 호날두의 별명을 가진 녀석들의 몸놀림이 단연 날렵하다. 그 둘 중에서 좀 더 날렵한 녀석은 메시다. 메시가 그렇듯이 키는 작지만 상대적으로 큰 녀석들을 연달아 제치며 연속해서 두 골을 넣는다.
관중은 단 둘. 나와, 녀석들 중에서 유일하게 손전화기를 가진 녀석이다. 축구를 하지 않고 내 옆에 앉아 자동차 운전하는 게임을 보여주더니 이번에는 인도의 인기 가수 노래를 들려준다. 감미로운 목소리에 힘이 넘치는 인도 가수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누구지?""인도의 인기가수, 허니싱입니다. 부라더 미카싱도 인도의 인기가수입니다."구름에 가려 언듯 언듯 드러나던 다섯 형제 봉우리, 히말라야 설산 빤짜줄리에 그림자가 들이워질 때까지 아이들은 말들이 초원을 뛰어다니듯 공을 쫓아다닌다. 환호성과 탄식, 지청구가 뒤섞여 저 높은 설산까지 오른다.
그렇게 나는 매일 오후 5시 무렵이면 문시아리 언덕에 올라 명상을 하거나 끈 풀린 동네 개들처럼 할 일 없이 어슬렁거리며 축구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다. 그렇게 닷새째를 보내고 '문시아리 청소년 동네 축구팀' 아이들과 헤어질 날이 돌아왔다.
오늘도 아이들이 "헤이" 손짓을 하며 반갑게 맞아준다. 한 녀석이 무릎은 괜찮아졌냐고 묻는다. 많이 좋아졌다고 하니까 내 앞으로 공을 던지며 한번 차보라고 한다.
처음 문시아리에 도착했을 때에 비하면 무릎이 한결 나아졌다. 무릎 상태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축구공을 가볍게 띄워 돌멩이 골문 사이로 슛을 날렸더니 아이들이 "와!" 환호성을 보낸다. 하지만 박수 칠 때 떠나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용을 부렸다. 이번에는 녀석들이 내게 다가와 공을 빼앗으려 한다. 내가 헛다리 짚기로 두 녀석을 제치고 슛을 날리자 "나이스!" 감탄을 내지른다.
무릎이 시큰거려 온다. '아이구, 무릎 아파 죽겠네' 소리도 못 지르고 녀석들 감탄사에 그저 웃기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공차기는 거기까지였다. 녀석들이 더 많은 공차기를 요구했다면 밑천이 드러났을 것이고 무릎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이다. 녀석들에게 한국의 태권도 얘기를 꺼내지 않았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태권도 시범까지 보여줬으면 어찌했겠는가. 앞차기 돌려차기 뒤 돌아 차기, 날아 차기... 별의 별 것을 다 보여 달라고 했을 것이다.
아이들을 만난 지 닷새째, 녀석들은 이제 내게 "헤이", "헬로우", "컴 온" 식으로 나만큼이나 짧은 영어를 격식없이 구사한다. 깊이 있는 영어를 구사할 수도 없었지만 나는 그런 격식 없는 언어들, 단순한 단어 몇 개로 통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언어 소통이 원활해 녀석들과 나 사이에 나이를 따지고 격식을 따졌다며 오히려 소통이 잘 되지 않았을 것이다.
뒤늦게 온 녀석이 장미꽃 한 송이를 내민다. 어제도 내게 장미꽃을 건네 줬던 몬티, 붉은 장미꽃 향기처럼 몬티 녀석의 향기로운 마음이 느껴진다. 녀석은 나를 좋아한다. 나 또한 웃음이 많은 녀석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나는 녀석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다는 것에 미안했다. 그 고마움을 갚음하는 대신 녀석에게 농담을 건넸다.
"너 여자 친구 없냐?""예...""이 장미꽃은 여자 친구에게 줘야 하지 않니?"".......""남자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아니요!"절대로 아니라며 몬티 녀석의 얼굴빛이 발그레해 진다. 다른 녀석들도 덩달아 부끄러운 표정으로 웃는다. 나는 몬티 녀석이 상처를 받을까봐 얼른 뒷수습을 했다.
"몬티야, 꽃을 줘서 너무 고맙다. 남자를 좋아하냐 했던 말은 농담이야 알지?""농담이라는 거 알고 있어요.""너희들 중에 여자 친구 있는 사람!""아무도 없어요.""사실 나도 여자 친구가 없다. 하지만 남자 친구는 많다."녀석들 모두가 와하하 웃는다. 몬티가 내게 장미꽃을 준 것처럼 인도에서는 남자와 남자의 우정 표현이 동성애자 혹은 남녀의 애정표현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거리에서 남자들끼리 다정하게 손을 잡고 다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어깨동무하고 다정하게 걷는 청년들도 볼 수 있다. 그들은 내게 장미꽃을 건네준 소년, 몬티처럼 서로 꽃을 선물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동성애자라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서로 손을 잡거나 꽃을 선물한다고 하여 동성애자들은 아니다.
오늘도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 두 성인 남자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산책을 나서는 것을 목격했었다. 문시아리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경찰서를 지나야 한다. 그 경찰서 앞에서 두 명의 경찰이 손을 잡고 나란히 걷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성인 남자들이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을 본다면 분명 동성애자일 것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을 것이다.
한 녀석이 몬티하고 기념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사진기를 달라고 한다. 몬티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문득 몬티가 내게 건네준 저 장미꽃은 우정의 징표가 아니라 나를 수행자로 대접 해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낯짝이 화끈거렸다.
"유 아 마이 도스터, 당신은 나의 친구입니다"오늘은 문시아리 언덕 축구장에 보통 때보다 많은 열댓 명의 아이들이 몰려왔다. 서로 다른 동네 아이들과 시합을 할 모양이다. 나는 녀석들이 음료수를 마시며 땀을 식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녀석들에게 돈을 내밀며 말했다.
"누가 음료수 사올래?"아이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상의한 끝에 두 아이가 기분 좋게 음료수를 사러 언덕을 내려갔다. 나머지 녀석들은 편을 갈라 우르르 몰려다니며 여느때처럼 저 높은 설산에 닿도록 고래고래 소리 질러가며 공을 찼다. 하지만 시작한 지 20분도 채 안 돼 언덕 아래로 굴려간 축구공이 키 작은 가시나무에 찔려 펑크가 나고 말았다.
공이 펑크가 났는데도 아무도 심통을 부리거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다들 낄낄거리며 내 곁으로 몰려와 앉았다. 음료수를 사러간 녀석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거리가 너무 먼 곳에 마켓이 있다. 공연히 음료수를 사준다고 했나 싶다. 심부름 떠난 녀석들에게 괜히 미안했다. 이곳 목초지 축구장에서 마켓까지 가고 오는 거리가 최소한 삼사십 분 거리다. 음료수를 사러 간 아이들을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이 내게 힌디어를 알려줬다.
"샤바스!""왓 이즈 민 샤바스?""샤바스 이즈 나이스, 버리아 이즈 베리 나이스." 힌디어로 '샤바스'는 '잘 한다', '좋다'라는 뜻이고 '버리아'는 '아주 좋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뻐센드 이즈 라이크. 위 베리 뻐센드 유.""미 투."좋아 한다는 힌디어로 '뻐센드'. 녀석들이 힌디어로 나를 아주 좋아한다며 한국어로 어떻게 말하는지를 물어본다. "좋다" "아주 좋다" 좋아 죽겠다"라는 우리말을 따라하다가 이번에는 가족 사항까지 물어본다.
"자녀가 있습니까?""아들이 둘 있다. 아들을 힌디어로 뭐라 하냐?" "베따, 베타!""아, 베따! 유 가이즈 아 마이 베따!""노, 노, 프렌드!""오케이, 마이 프렌드!""유 가이즈 아 마이 굿 프렌드!"힌디어로 아들을 '베따'라고 한다. 하여 녀석들에게 너희들은 내 아들이니, 나를 아버지라 부르라 했더니 친구라고 부르겠다고 한다. 녀석들이 "마이 프렌드, 프렌드" 해가며 새삼스럽게 악수를 청하며 내 손을 잡는다. 그리고는 '친구'라는 힌디어를 알려준다.
"프랜드 이즈 도스터"'도스터', 친구라는 힌디어를 배워가며 나는 녀석들과 친구가 됐다. 친구가 되는데 국적과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친구의 진정한 의미를 새삼 일깨워준 녀석들은 단순히 언어를 통한 친구가 아니었다. 닷새 동안 나이와 언어를 뛰어 넘어 서로 가슴을 열어 눈을 맞춰가며 사귄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10여 년 전, 시골집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우리 집 아이들 친구들과 함께 하룻밤을 지낸 적이 있었다. 그때 무서운 얘기를 해달라는 아이들 성화로 '이야기 만들기' 놀이를 했다. 천하무적의 괴물 고양이가 흉가 집에 보물을 숨겨놓고 있는데, 그 보물을 어떻게 가져 올 것인가라는 이야기 놀이였다. 그 이야기의 줄거리며 결말은 아무도 모른다. 나는 단지 이야기를 설정했을 뿐이었다. 아이들 각자가 풀어나가야 했다.
아이들은 천하무적의 고양이에게서 보물을 가져오기 위해 저마다 이야기보따리를 꺼내 놓았다. 보물을 빼앗기 위해 작대기에서부터 칼과 총, 핵무기에 이르기까지 온갖 무시무시한 무기가 등장했고 맛있는 고기며 생선, 진수성찬의 요리와 엄청난 돈으로 유혹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 어떤 무력이나 유혹은 천하무적 고양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무런 말도 없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한 아이가 말했다.
"고양이와 친구가 되면 되잖아." 서로가 사심없이 모든 것을 내줄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되면 고양이의 보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가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맞장구쳤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친구가 되는 것이고 또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은 바로 친구라며 결말을 내렸다.
문시아리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 놀이를 하고 싶었지만 언어의 높은 장벽 때문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문시아리 아이들과 나는 이미 그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고 있었다.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문시아리 아이들이 먼저 내게 손을 내밀어 국적이나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 '도스터'가 돼 주었던 것이다.
우리가 간단한 힌디어와 한국어를 공부하는 동안 두 녀석이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열댓 명이 마실 수 있는 분량의 음료수를 사왔다. 건네준 돈이 부족할까 걱정했는데 거스름돈까지 챙겨온 아이들은 자신들이 마실 페트병 음료수 몇 병과 더불어 나를 위해 따로 캔 음료를 사왔다. 축구할 때는 소리 소리 질러가며 형, 아우 없이 뒤엉켜 뛰어다니던 녀석들이 음료수를 마실,때는 내 것과 형들 것부터 챙긴다. 나이와 상관없이 '도스터', 친구가 되었지만 나를 나이 많은 친구로 정중히 대했던 것이다.
아이들과 헤어질 시간이다. 아이들은 내일이 일요일이라서 오전부터 축구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친구, 내일 오전에 만나요.""친구들아. 나는 내일 떠나야 해.""언제 떠나는데요.""내일 이른 아침."장미꽃을 가져온 몬티는 말이 없었고 못내 아쉬운 눈빛으로 왜 떠나야 하는가 묻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그냥 떠나야 한다고만 대답했다. 정들자 이별이다. 여행은 이별의 연속이다. 목적 없는 여행길에서 수없이 많은 인연들을 만나고 이별한다. 우리의 삶이 그렇다. 만나고 헤어지고 사별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끊임없는 이별의 연속이다. 삶은 이별의 여행이다.
"너희들이 오랫동안 그리울 거야.""우리도 그리울 것입니다. 내년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굿바이 마이 도스터.""굿바이 마이 도스터."아이들과 헤어져 숙소로 돌아오는 길목에 히말라야 설산이 분홍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사방 천지가 평화로운 기운으로 가득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이들이 내게 알려준 단어들은 모두가 평화롭다. '좋다', '아주 좋다', '아주 잘한다', '좋아한다', '아주 좋아한다' 그리고 '아들, 딸 가족, 친구'에 관한 단어들이다. 그 단어들과 함께 메모장에 새겨놓은 아이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몬티, 템버리, 모케스, 요기, 티프료스 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