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명의 영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11명은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이들은 고유어인 스와힐리어로 찬송가를 부른 다음, 손에 손을 맞잡고 기도했다. 이어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또다시 기도했다.
11명의 여인들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환자들이다. 케냐 현지에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는 공인현 선교사는 이 여인들과 10년째 인연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공 선교사의 말이다.
"지난 2003년부터 키베라 지구내 학교에 급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2006년 키베라 지구 내 에이즈 환자가 둘 중 하나라는 소식을 접했다. 당시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여성들의 고통이 크다. 케냐 의료법상 본인 동의가 없으면 에이즈 검사가 이뤄지지 않는다. 일부 남성들은 증상이 있어도 에이즈 검사를 거부하고, 만약 여성이 에이즈 환자로 판명될 경우 죄인 취급하며 학대한다."공 선교사는 이후 에이즈 환자 열두 가정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한 달에 두 번 꼴로 정기모임을 가졌고, 매월 먹을 거리와 자녀 학비 일부를 지원했다. 공 선교사는 올해엔 이 여인들에게 월세를 지원해주려고 한다. 여인들과의 만남에서도 이 같은 계획을 밝혔다.
그렇다고 무작정 이들의 손에 돈을 쥐어주려는 건 아니다. 이 여인들에게 소일거리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월세에 해당하는 자금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일거리란 바느질 수공예품 만들기. 공 선교사는 여인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판매하지 않고 후원자들에게 제공하려고 한다. 공 선교사는 아주 조심스럽게 "조그만 공동체를 이뤄 탐욕적이고 야만적인 물질만능주의를 극복하고 싶다"라는 소망을 내비쳤다.
에이즈는 가난의 질병
이 같은 지원에도 이 여인들의 삶은 매우 고달프다. 이 여성들은 싱글맘이거나, 남편과 사별했거나, 남편의 행방을 모른다. 이들이 사는 곳은 아프리카 제1의 슬럼가인 키베라다.
대게 에이즈 하면 문란한 성생활을 떠올린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에이즈는 성폭력, 혹은 에이즈 환자인 남편이 남성우월주의를 내세워 질병을 숨긴 채 성관계를 가져서 발생한다.
또한 에이즈는 가난의 질병이다. 가난에 따른 열악한 환경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져 생기는 질병이 에이즈라는 말이다. 이 여인들의 존재는 에이즈의 실상을 그대로 증언한다.
에이즈는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증후군이기에, 합병증이 최대 위험요인이다. 언제 질병에 노출될지 모른다. 그래서 이 여인들은 매일이 불안하다. 생각이 생계 문제에 이르면 이들은 한숨을 내쉰다. 여인들이 한 달을 살기 위해 내는 월세는 우리 돈으로 5만 원 정도다. 아이들 학비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합병증이 생기면 일을 못하고, 그렇게 될 경우 길거리에 나앉아야 한다. 종종 감금 당하는 일도 벌어진다고 한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면 병세는 더욱 악화된다.
일상의 고단함 때문인지 이 여인들의 찬송가와 기도엔 간절함이 절절이 깃들어 있다. 이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이들의 찬송을 들으며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피부색은 달라도, 말은 통하지 않아도 간절함은 인간 존재가 지닌 본연의 감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작성한 지유석 시민기자는 지난 1월 23일부터 2월 8일까지 케냐를 방문했습니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여인들과의 만남은 지유석 시민기자의 케냐 방문 기간 중 이뤄진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