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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학상이 탄생했다. 2016년 2월 26일 서울 '문학의 집'에서 시상하게 될 제1회 김건일 문학상이다. 상금이 3백만 원이라고 하니 큰 상은 아닐지라도 한 시인의 이름으로 시상되는 상으로는 결코 적은 금액을 준다고 할 수 없다. 김건일 시인은 1973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한 원로 시인이다.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한 43년 시력을 가지고 있다.

1990년 가을이었다. 기자는 한 출판사에 들렀다가 출판사 사장으로부터 여러 권의 자사 출판 시집을 선물 받았다. 그 중에 하나가 김건일 시집 <뜸북새는 울지도 않았다>였다. 이 시집이 눈에 띄었던 것은 대부분의 시집이 모호하여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이 시집은 유독 소박하고 담백하여 제목부터가 정감이 가는 것이었다. 고향의 향수를 물씬 풍기면서 시집은 내게 다가왔다. 그렇게 시집을 읽고 한동안 시인을 잊고 지내다가 4~5년 전 페이스북을 통해 시인을 다시 만났다.

김 시인은 광화문 사랑방시낭송회 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낭송회 행사의 사진과 시를  페이스북에 올린 걸 보고 그 행사에 참석하게 됨으로써 직접 대면하고 처음 인사를 드리게 되었다. 시낭송회를 통해 종종 뵙다가 한동안 나에게 바쁜 일이 있어서 행사에 참석하질 못했다. 그러던 중 얼마 전 페이스북을 보다가 제1회 '김건일 문학상'을 시상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떻게 문학상을 제정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여 시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여 이 기사를 작성하게 되었다. 시간이 촉박하여 직접 찾아뵙진 못하고 질문지를 작성하여 메일로 보내드리고 그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직접 운영하는 약초상회 앞에 선 김건일 시인
 직접 운영하는 약초상회 앞에 선 김건일 시인
ⓒ 최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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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선생님 존함을 딴 문학상 시상 소식을 듣고 갑자기 인터뷰를 요청드리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1973년 <시문학>지를 통해 등단하시고<풀꽃의 연가><땅따먹기><뜸북새는 울지도 않았다><꿈의 대리 경작자><꽃의 곁에서>등 다섯 권의 시집을 내셨습니다. 신경림 시인은 선생님의 시에 대해 "이 시집은 오랫동안 맛보지 못했던 시를 읽는 재미를 다시금 맛보게 해주었다. 이 시집의 시들은 큰소리 나고 손뼉소리 요란한 곳을 찾아 허겁지겁 달려가지 않고 작은 것, 버림받은 것, 시시한 것, 돌보는 사람 없는 것들을 안고 그 속에서 가치를 찾고 있는 데서 서로 통한다. 또 이 시들은 관념 속에서 나온 가락이 아니라 현실 또는 생활 속에서 나온 가락이기 때문에 허풍스럽지도 않고 오만하지도 않다는 데서도 통한다"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시가 난해하고 독자와의 소통이 되지 않아 독자들이 시집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데 선생님의 시에 관한 생각은 어떠신지 문학관이라고 할까, 선생님의 시에 관한 생각을 말씀해 주시지요?
"저는 시가 생활 속에서 솟아나는 생의 애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는 시인이 꿈꾸는 생활을 언어로 먼저 꿈꾸면서 그저 꿈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시가 갖고 있는 꿈의 세계로 시인이 직접 찾아가고 생활하고 땀을 흘리면서 실제로 시의 세계를 현실의 세계로 환원시키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시는 행동언어이며, 꿈과 언어와 행동이 삼위일체 혼연일체가 되는 경지야말로 참된 문학이라고 믿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 광화문 사랑방시낭송회가 매달 이어지고 있습니다. 며칠 전 페이스북을 보다가 제1회 김건일 문학상 시상식에 대한 안내를 보고 놀라움과 감동을 동시에 받았다고 할까요. 개인의 존함을 딴 문학상이 어떻게 제정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이 문학상 제정을 언제 어떻게 구상하셨는지 말씀해주세요.
"처음에는 좀 거대하게 상을 만들까하고 생각을 했으나 무명에 가까운 제가 큰 스케일로 나가면 건방지다는 생각에서 우선 제가 다닌 건국대학교 출신 위주로 문학상을 수여하고 그다음에 제가 하는 광화문사랑방시낭송회가 주축이 되는 대한민국시낭송상을 제정해볼까 궁리하고 있습니다. 우선 건국대학교 중심으로 먼저 제1회 김건일문학상을 시상하게 되었고 곧이어 광화문사랑방시낭송회가 주축이 되어 시낭송경연대회를 개최하여 사회에 시를 전파시키는 운동에 역점을 두고 동시에 시낭송상을 제정 시상하려고 합니다."   

- 정말 큰일을 계획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문학인을 대신하여 감사드리며 제정의 취지라고 할까, 목적에 대해서도 알려주시고 어떤 절차를 밟아 수상자를 결정하게 되는지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같은 방식으로 수상자를 내실 계획이신지요?
"제가 재학 중에 건국문단을 만들었고 졸업 후에도 문학회가 없던 시절에 동문들을 중심으로 건국대문학회를 제가 중심이 되어 창립했습니다. 아무 근거도 없이 문학상을 시상하는 게 너무 무모한 것 같아서 우선 건국대문학회 위주로 시상을 하고 대 사회적으로는 사랑방시낭송대회 위주로 범 문단적인 낭송문학상을 운영해볼 생각입니다."  

- 어떤 문학상은 원로들을 대상으로 시상을 하고 어떤 문학상은 젊은 시인들이 주로 수상자가 되곤 하지요. 김건일 문학상은 어디에 초점을 맞춰 심사를 하실 예정이신지 궁금합니다. 시인에게 시상하는지 아니면 소설가나 수필가에게도 시상이 되는지요?
"원로나 저명한 문학인 위주가 아니고 장르를 초월하여 실력, 인품, 장래성을 보고 수상자를 선정합니다. 저는 심사에 일체 관여하지 않고 대학교수와 현역문인 3.4명으로 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시상에 공정성을 기하려고 합니다."

- 심사의 기준이 있을 텐데요. 선생님의 문학관을 반영한다든지 혹은 다른 기준을 정하셨는지 아니면 전적으로 심사위원들에게 결정권을 주어 객관적 기준에 맡기셨는지요?
"사실 저는 강력하게 제가 심사에 관여하고 싶었지만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서 상금과 행사비용만 부담하기로 하고 시상식에만 참가할 것입니다."

- 어떻게 시상금을 마련하실지 궁금합니다.
"제가 일 년에 350일쯤 영업을 하고 약초 가게를 운영하고 절약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술과 담배 노름을 안 하는 게 저의 생활철칙입니다. 문학상 외에도 문학단체에 조금씩 후원금을 내고 있습니다. 큰 걱정 없이 문학상이 운영되고 시낭송문학상 운영도 가능하리라 봅니다."

- 문학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편파 시비가 일기도 하고 공정성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합니다. 일각에선 나눠먹기식으로 문학상이 운영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시각에 어떻게 대처해나갈 생각이신지요?
"저는 돈을 주고받는 문학상은 한 번도 받아보지 않았습니다. 흙의 문예상과 자유시인상, 한국예총문학대상도 제가 로비를 해서 받은 상이 아니고 이제까지 작품 발표도 남에게 실어달라고 부탁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 문학상도 시상은 실력 위주, 작품성 위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심사위원 제위께 서면으로 부탁드릴 것입니다. 심사위원이 누군지도 저는 모릅니다."  

- 2006년에 제 5시집<꽃의 곁에서>를 상재하신 후 꽤 오랜 시일이 지났는데요. 시집을 다시 출판하실 계획은 가지고 계신지요?
"시집 <꿈의 대리 경작자>와<뜸북새는 울지도 않았다>는 한때 교보문고에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지만 그 수입은 백만 원도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시집이 몇만 권이 발간되었는데 유감스럽게도 헌책방에 가면 제 시집이 제일 많이 쌓였습니다. 저의 아내가 결사반대하여 자비출판은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 대신 제 블로그에서 제 시가 많이 유통되고 해병대원들이 제 시를 노래로 작곡한 <기다리는 바다>를 합창하는 것을 듣곤 합니다."   

- 선생님은 시력이 43년이 되시는 원로시인이신데 선생님께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시인이라도 있으신지요? 앞으로 작품 활동의 계획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사실 저는 대학민국의 노벨상 수상자가 되겠다고 큰소리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부할 줄도 모르고 타협할 줄도 몰라서 아무 것도 이루질 못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제일 깨끗한 시 정신을 가진 시인이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김건일이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두루두루 많은 시인들의 작품을 읽었지만 누구의 영향을 받았다고 딱히 짚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 광화문 사랑방 시낭송회를 오랫동안 이끌고 계신데요. 사랑방 시낭송회에 대해서도 소개 말씀 부탁드립니다.
"1994년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김건일, 윤제철, 박수진, 오만환, 조정애, 정종배, 노선관, 이혜옥 시인등이 주축이 되어 매월 두 번째 토요일 오후 5시부터 시낭송회를 하기 시작하여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개최했는데 설날 추석날이 간혹 걸려서 지금 243회를 마쳤습니다. 서정주, 구상, 황명, 권일송 시인, 그리고 소년한국일보 김수남 사장님이 직접 낭송을 들려준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쪽 광화문 나무카페에서 30명에서 40명쯤의 시인들이 매월 참여하고 있습니다."  

- 여담이 될지 모르겠는데요. 성악가 조수미씨가 선생님의 생질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조수미씨의 어렸을 적 모습이나 기타 조수미씨와 관련하여 들려주실 이야기가 있으면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조수미는 나의 둘째 누나 김말순 여사와 조은호씨 사이에 태어난 첫 생질입니다.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잘 치고 끈기가 있어서 어머니가 시키면 반항하지 않고 끝까지 공부시간을 지켰습니다. 한때 한집에 살았는데 그때 나는 이미 시인으로 등단해 있었지만 한집에 살면서도 대화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음악수업에만 몰두해있었고 내가 농촌문학 한다고 고향으로 내려가서야 예술에 관하여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김건일 시인과 조수미 성악가 두 분은 외삼촌 생질 지간이다
 김건일 시인과 조수미 성악가 두 분은 외삼촌 생질 지간이다
ⓒ 김건일 시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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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시간 소상하게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쪼록 김건일 문학상이 훌륭한 문학인에게 시상되어 우리 문학을 한층 더 발전시키고 풍요롭게 하는데 이바지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일하여 만약에 여유가 있다면 문학인을 돕고 시가 이 세상에 넓게 퍼지는데 일익을 담당하는데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문학상이 오래 오래 존속하도록 방책을 세우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인천in에도 실렸습니다



#김건일#조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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