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베네치아 캠핑장의 실체, 전격 해부! 우리가 베네치아에서 살림을 차린 곳은 관광지(산마르코광장)로부터 육로로는 60km, 배편으로는 40분 거리에 있는 '카사비오'란 동네였다. 이 동네 캠핑장으로 오던 날, 나는 베네치아 숙박업소의 수와 규모, 위용에 놀라 기절할 뻔했다. 지금까지 본 중 세계 최고다. 혹시 이곳에 방문할, 심장 약한 캠퍼가 기절하지 않도록, 나름 사명감을 가지고 지금부터 베네치아의 캠핑장에 대해 자세히 알려줘야겠다.
먼저 눈에 띈 것은 길 가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였다. 이는 호텔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곳으로 공짜라고 광고를 하고 있었고 한참동안 호텔과 어우러져 달리는 차장 밖 풍경을 장식했다. 호텔과 인포메이션 센터가 어느 정도 잦아들자 관광객을 주요 고객으로 할 만한 큰 마켓이 끊이지 않고 나타난다. 또 큰 마켓이 좀 잦아드니 이번에는 캠핑장 안내판이 나오는데 그 수가 엄청 많다. 별이 4개짜리인 고급캠핑장이 꽤 많다. 안내판에 안내되지 않은 작은 규모의 캠핑장도 길 가에 즐비하였다.
우리가 목적지로 정한 곳은 '마리나 드 베네치아'란 캠핑장으로 가격대가 센, 큰 풀장이 4개나 엮여 돌아가는, 지상 낙원일 것이 분명한 별 4개짜리였다. 모처럼 마음먹고 비싸고 좋은 곳을 골랐다. 무엇보다 수영장 시설이 마음에 들었지만 보다 큰 이점은 베네치아에 가는 선착장에서 가깝다는 것이었다. 거의 마지막에 있던 그 캠핑장에 도착할 즈음 베네치아, 다시 말하면 이탈리아, 더 정확히 말하면 몇 가지 사건으로 인해 내가 그리 탐탁해하지 않는 이탈리아의 캠핑장 수에 솔직히 압도되어 좀 많이 쫄았다.
#.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별 네 개 '최고급 캠핑장'아 그런데. 드디어 서서히 다가오는 캠핑장의 간판은 유난히 세련된 느낌이었고 우리가 캠핑장에 들어섰을 땐, 캠핑장을 상징하는 깃발보다 더 많은 스태프들이 좌우로 발랄하게 정열 해 있었다. 왜 하필 유니폼의 색상은 그리 선명한 노란 빛인지. 속도를 줄여 스태프 가까이 섰을 때 "예약하셨어요?"한다. 안 했다고 하니 "1주일이 최소 숙박 기간인 거 아세요?" 그런다. "아! 4, 5일 정도 머물려고 하는데 안 되나요? " 그러자 미안하지만 안 된단다.
친절히 우리를 안내하며 밖으로 나가는 길을 알려 주겠다고 했으나 우린 잘못해서 출구가 아닌 캠핑장 안쪽으로 더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당황한 노란복장의 스태프가 다시 오더니 따라오란다. 휴~ 밖으로 나왔다.
아~ 거절당하고 이렇게 마음이 편한 것은 처음이다. 최소 1주일을 머물러야 한다는 그들의 숙박 원칙을 융통성없이 그대로 적용해주어서 참 다행이다. 아무도 모른다. 안쪽으로 들어갔을 때 눈앞에 펼쳐진 미니골프장의 선명한 초록색, 저만치 보이던 어린이 풀장의 형형색색 슬라이드들. 이런 고급스런 수준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즐기며 놀고 있는 아이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풍경에서 느껴지던, 왠지 우리랑 사는 수준이 다를 것 같은 분위기.
이곳은 내가 보아온 인간세상이 아니었다. 파 라 다 이 스. 즉 지상낙원 같았다. 과연 지구 반대쪽에서 온 우리들에게도 지상낙원일 수 있을까란 질문에 이미 마음속으로 회의적인 결론을 내놓은 터라 다른 캠핑장을 찾으러 나오는 마음이 차라리 가벼웠다.
아우~ 완전 깜놀이야. 거의 20년 전 프라이드 베타 타고 고급스런 골프장에 구경 갔다가 입구 앞에서 제재당하고 되돌아 나올 때 잠시 슬쩍 봤던 골프장의 위용에 기죽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 우리에겐 너무 익숙한, 별 세 개 '평범한 캠핑장'그 다음 찾아간 곳은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캠핑장으로 선착장과 가장 가까워 이동이 편리한 장점이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맞다. 지금껏 이런 느낌과 비슷한 캠핑장에 머물렀었다. 마음이 편해진다.
리셉션에 들어가 4, 5일 묵을 건데 괜찮으냐고 하니 당연하단다. 노골적으로 험담하기 위해 최최최~고급 '마리나 드 베네치아' 캠핑장은 안 된다고 했다니까 표정이 일그러지며 '걔네들 하는 짓 항상 재수 없어, 일 년 내내' 하는 느낌이다. 여권을 넘기고 애들 정보를 쓰고 있노라니 남편이 많이 당황스런 얼굴로 다가와선 풀장이 있나 물어보라고 한다. 없는 것 같다고. 아니다 다를까 없다고 한다. 현과 쭈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물속으로 뛰어들 자센데. 큰일이다.
어쩔 수 없기에 여권을 돌려받고 돌아서는데 직원이 나를 다시 부른다. 다가가니 이 동네 캠핑장 지도를 건넨다. 참 친절한 직원에게 나 또한 정말 어렵고 민망스런 질문을 건넨다.
"이 중에서 하나만 추천해주세요."두 곳을 추천해준다. 한 곳은 별이 세 개, 한 곳은 별이 네 개이다. 별 세 개짜리가 현재 위치에서 가깝기도 했지만 이미 베네치아의 별 네 개짜리 규모에 쪼그라진 마음이 펴질 기미가 없어 생각할 것도 없이 얼른 별 세 개짜리를 찾아 나섰다.
#. 이마저도 놀라울 뿐인, 별 세 개짜리 고급 캠핑장
카사비오 동네 카사비오 캠핑장이다. 역시나 들어서니 지금까지 우리가 유럽 여러 나라에서 보아온 별 세 개짜리 캠핑장의 규모와는 엄청나게 다르다. 가격이 물론 비쌌으며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마켓은 미니마켓이 아닌 슈퍼마켓으로 없는 게 없다. 물론 비싼 가격이다.
둘째 날 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수용인원이 천 명을 능가하겠다.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대여하는 방갈로, 분양한 펜션, 캠핑장이 쫘아아아아악 있다. 이곳에 오니 어린 아이가 있는 네덜란드 사람들도 많지만 특히 덴마크와 독일이 많다. 물론 현지인도 많고.
50집 중 동양인이 한 집인 거랑 500집 중 동양인이 한 집인 거랑 느낌이 이토록 다를 줄 몰랐다. 엄청난 캠퍼들 수에 동양인(리씨네) 인구밀도가 소수 첫째자리까지 줄어들어 솔직히 주눅이 잔뜩 들었다. 남쪽으론 전용비치가 쫘악 있고 풀장엔 아이들을 배려한 다양한 슬라이드는 물론 레스토랑도 2개나 된다. 베네치아로 드나드는 교통편과 투어 상담 부스가 리셉션 옆으로 늘어서 있고 터키 마사지 숍까지 있다. 우리 옆집은 덴마크 집인데 외동딸인 듯, 20대의 과년한 딸을 데리고 왔다. 그림이 좀 이상하긴 하다.
놀이터는 지금까지 본 모든 것들 중 최고의 시설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2층짜리 구조물이 성곽처럼 놀이터 주위를 감싸고 돌아간다. 아이들은 요리조리 몸을 숨기며 성곽 1층, 2층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오던 날부터 현과 쭈는 놀이터에 매료되어 말이 통하거나 안 통하거나 상관없이 시간 날 때마다 놀이터로 출근했다. 화장실 간다고 하면서 슬쩍 오는 길에 들러서 놀고 오는 눈치다.
둘째 날 저녁이든가? 그날은 아이들이 온종일 캠핑장 앞 비치와 풀장에서 번갈아 논 후 저녁 식사를 하고는 또 놀이터에서 논다고 나갔다. 제법 어둑어둑했고, 다른 집들은 대부분 보호자가 와 있던 것 같아 나도 설거지를 끝내고 시간을 내서 특별히 가보았다. 아이들이 많지 않은 가운데 현이는 모래에서 줄넘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아마도 다른 아이들 앞에서 자신의 줄넘기 실력을 뽐내고 싶었던가 보다.
사실 캠핑을 시작하고 아빠로부터 줄넘기를 배웠는데 엄마, 아빠가 감탄할 정도로 이젠 자세가 그럴 듯했다. 첫날과 마찬가지로 캠핑장 한쪽 구석에선 쿵짝쿵짝 음악 반주에 맞추어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리고 있었다. 어제는 단체 여행자들의 뒤풀이인가 했는데 가만히 보니 신나고 들고 뛰는 게 어린 아이들이었다.
나 : 어, 저기 애들이 놀고 있네. 애들이 저기 다 갔나보구나?현 : 어제도 그랬어. 나 : 재미있겠는데. 현이도 갈래?현 : 나도 가도 돼? 저거 공짜야?나 : 현이도 가고 싶었니? 현 : 응나 : 그럼 가고 싶다고 말하지 그랬어?현 : 돈 내야 되는 줄 알았는데.......나 : (순간 멈칫하며) 아니야, 우리도 가 보자. 한국에서 많은 돈을 들고 나온 것이 아니기에 빠듯한 여행이었다. 아껴 쓸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7살 현이는 엄마, 아빠의 주머니 사정까지 생각할 만큼 마음이 여물어 있었다. 아, 이런 상황에서 마음이 쫄리고 궁색해지는 건 비단 엄마, 아빠뿐이 아니었구나! 가봐야겠다. 도전!
덧붙이는 글 | 2012년 맞벌이 엄마, 아빠, 5살, 7살 두 딸은 직장과 유치원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쉼(태국), 사랑(터키), 도전(유럽캠핑)을 주제로 5개월간 여행하였습니다. 본 여행 에세이는 그중 도전을 주제로 한 유럽캠핑에 관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