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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주기다. 박완서 작가가 돌아가신 지 벌써 5년이다. 세월이 쏜살 같음을 새삼 느낀다. 그의 죽음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다작 작가기도 하거니와 영원한 현역 작가일 것 같은 그의 소설을 더 이상 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박완서라는 이름은 친숙하고 정겹기까지 하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5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친숙하다. 그의 사후 그의 작품, 그에 관한 작품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세월이 쏜살 같다고 느꼈던 이면에는, 그가 우리 곁을 떠난 걸 인지하기 힘들 정도로 '그의 작품'과 '그에 관한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는 사정이 있다. 독자에게 그는 여전히 현역 작가이다.

소설가의 소설(글)은, 소설가의 사상을 대변할 것이다. 그렇다면 소설가의 말은 무엇을 대변할까? 아마도 소설가 자신을 대변하지 않을까 싶다. 소설(글)이 외부를 향한다면 말은 내부를 향한다고 할 수 있겠다. 박완서 작가는 그동안 수많은 소설을 써왔다. 나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소설을 봐 왔다. 종종 그의 말을 들어왔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살아 있었고 소설로 말을 대신해 왔다고 생각했다. 

박완서, 그는 살아 생전 어떤 말을 했을까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표지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표지 ⓒ 달
이제 떠나고 없는 그의 말이 듣고 싶던 찰나, 소설가 박완서의 대담집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문학동네)이 나왔다. 살아 생전 그는 어떤 말을 했을까. 그의 소설과 일맥상통할까. 아니면 소설에서와는 다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말과 그의 소설은 일맥상통한 면이 매우 많았다. 그리고 1980년부터 2010년까지, 데뷔 10년부터 영면에 들기 바로 전 해까지의 생각 또한 일맥상통했다.

박완서 작가는 1970년 사십이라는 나이에 문단에 데뷔했다고 한다. 지각생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늦게 데뷔했는데, 이후 왕성한 활동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 확고한 작가적 위치를 굳히며 대표 작가로 주목 받았다.

이 책에 실린 9개의 대담에서 그의 데뷔작 <나목>은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늦은 나이에 그것도 주부가 소설가가 되었다는 것이 문단에 상당한 충격을 줬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오히려 그것이 좋다고 말한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쪽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그가 사십에 데뷔하기 전까지 주부로서의 삶을 산 것이 다 문학수업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를 사는 보통 사람의 생활을 체험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체험과 상상력이 결합되어 있지 않고 상상력만 과잉 되면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말이다.

박완서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6·25다. 특히 대부분의 6·25 관련 작품들이 남성들의 체험을 남성들의 시각으로 그리곤 했는데, 박완서는 여성들의 체험을 여성의 시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박완서는 남다른 그 경험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겠다. 글로 씀으로써 기억해야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막내가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그는 하고 싶은 일, 글로 기억하는 일을 했고 그게 바로 6·25 이야기를 쓰는 것이었다.

이 밖에도 그는 여성에 천착했다. 6·25와 여성, 일상 등 그가 천착한 키워드들을 들여다보면 별다를 게 없다. 솔직히 재미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그의 글은 참으로 잘 읽히고 재밌다. 생각에 막힘이 없고 시원시원하게 인간을 이야기한다. 그 안을 제대로 집어내기 때문에 공감의 연쇄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수많은 대담 중에서 추리고 추린 이 핵심 대담집을 통해 박완서를 알 수 있고, 박완서의 소설을 알고 싶어졌다.

박완서를 제대로 만나게 해주었다

솔직히 말해 박완서의 소설을 그리 많이 읽어본 편은 아니다. 주요 작품들 몇 편만 접해봤을 뿐인데, 그건 아마도 그를 대표하는 키워드들 때문일 것이다. 그가 너무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다는 것, 대표적인 여류 작가로 여성에 천착한 소설을 썼다는 생각, 별 것 없는 일상을 잘 풀어내기만 했을 거라는 편견, 6·25에 너무 편중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 등이다.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을 테지만, 나로서는 그것들이 크게 작용했다.

이 대담집은 그런 점들을 전부는 아닐지라도 상당 부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세간에서 말하길, 이러 저러 하더라. 이에 그는 변명 같은 건 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고 결코 틀리지 않다 하지만 난 이렇게 생각했고 이렇게 썼다'고 말한다. '이웃들의 삶 속에 존재의 혁명을 일으키고 싶었고, <미망>에서 좋은 의미의 자본주의에 대해 써보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그의 생각은 참으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책은 박완서를 다시 만나는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살아 생전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껏 좋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그를 기리고 헌정하는 그런 책. 하지만 나에겐 다르게 다가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호원숙 엮음, 달 펴냄, 2016년 1월)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 소설가 박완서 대담집

김승희 외 지음, 호원숙 엮음, 달(2016)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박완서#한국전쟁#주부#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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