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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빈 들 우리는 농부, 빈 들에 씨를 뿌려 생명을 일구는 농부. 척박한 세상에 미래의 희망을 키우는 우리 모두는 농부
저 빈 들우리는 농부, 빈 들에 씨를 뿌려 생명을 일구는 농부. 척박한 세상에 미래의 희망을 키우는 우리 모두는 농부 ⓒ 권말선

도보순례단은 23일 오후 드디어 경기도에 들어섰다. 보성을 출발한 지 13일 만이었다. 평택에 도착하니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바람이 여간 차가운 게 아니었다. 수확을 끝낸 빈 들이 펼쳐진 모습을 보니, 지금 우리 서민들 마음이 이렇게 바람 부는 빈 들에 선 것 같은 심정이 아닐까 싶었다.

이제 곧 농사를 준비해야 할 텐데 빈 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저 너른 들에 씨를 뿌리고, 땀을 뿌리고, 쉼 없이 발품을 뿌려 알곡을 수확하면 자식들 입히고 학교 보내고 또 무사히 1년을 살 수 있으려나. 쌀 한 톨에 우주가 담겨 있다는데 그 쌀 한 톨 길러내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는 인사까지는 아니라도 농민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는 아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이기는 세상 올 것"

 평택을 지나는 도보순례단
평택을 지나는 도보순례단 ⓒ 권말선

마침 하루 전 날인 22일(월)은 대보름날이어서 달집을 태우고 오셨다는 분들이 꽤 되었다.

"우리 도보순례단은 들불을 놓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들불이 먼 곳에서 보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면 어느새 들녘을 싹 태우고 있습니다. 우리 순례단 발걸음이 멀리서 보면 아주 미약해 보이나 지금 지역 곳곳에 이대로 살 수 없다는 저항의 불길을 확 일으키고 있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들판에 병균들 싹 없애고 우리가 이기는 세상 곧 옵니다."

김영호 전농 의장의 이야기를 들으니 한 발 한 발 더 열심히 걸어야겠다 싶다.

생각해보면 도보순례단의 행렬이 길었던 적도, 또 짧았던 적도 있었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민중세상 만들어야 살 수 있다는 비장함이 있었다. 동학농민의 격전지 우금티고개를 넘으며 122년 전 이 고개를 농민들이 넘어섰더라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농자천하지대본의 세상을 이루고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외세의 총알에 스러져 누운 사람들의 외침이 오늘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제는 뚫고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비교적 짧게 걸은 적도 있었고 먼 거리를 걸은 적도 있었다. 보성에서 서울까지 비통함이 서린 길이 아닌 한라에서 백두까지 벅찬 감동으로 걸어 볼 날을 그려보기도 했다. 백남기 농민의 염원처럼 '민주화'가 아름답게 꽃 핀 세상, '도라지' 한 바구니에도 함박웃음 지을 수 있는 날이면 '백두산'까지 걸어서 갈 계획에 마음 편히 들떠 볼 수 있을까?

이웃집 아이의 이름을 '신고구려'라고 지어 주셨다 한다. 백남기 농민의 염원은 단순히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 이렇게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의 염원은 그들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참된 평화와 행복을 누구나 골고루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우리 후대는 사회적, 인간적 모순 속에 살지 않도록 하자는 것 아니겠는가.

우금티고개에서 "이 고개를 넘었으면 역사가 바꼈을거야, 그 때 못 이룬 꿈을 우리 대에서는 기어이 이뤄야해, 우리가 이 고개를 대신 넘자고!"
우금티고개에서"이 고개를 넘었으면 역사가 바꼈을거야, 그 때 못 이룬 꿈을 우리 대에서는 기어이 이뤄야해, 우리가 이 고개를 대신 넘자고!" ⓒ 권말선

장구야, 북아, 꽹과리야 긴 길 힘들어도 함께 걷는 걸음은 서로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도보순례단에 함께 하는 풍물가족
장구야, 북아, 꽹과리야긴 길 힘들어도 함께 걷는 걸음은 서로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도보순례단에 함께 하는 풍물가족 ⓒ 권말선

함께 걸어주신 분들은 물론이거니와 식사로, 잠자리로, 의료봉사로, 간식으로 함께 해 주신 분들도 많았다. 언제 이렇게 많은 것을 준비해 주셨을까 싶게, 언제부터 도보순례단을 기다리며 서 계셨을까 싶게, 우리사회 곳곳에는 따뜻한 마음씨로 자신의 것을 나누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싶게 모두 놀라운 정성들이었다. 권력과 자본의 1%의 바깥에서는 99%의 아름다운 사람들이 함께 오순도순 정을 나누려 애쓰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 순례단의 걸음은 수원, 안산을 지나 2월 27일 중앙대에서 호흡을 가다듬은 뒤 서울광장에서 활활 타는 들불로 모일 것이다. 바로 4차 민중총궐기인 것이다. 이 날은 작년 11월 14일 13만의 민중이 모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시 '기억'하고 민중을 정조준한 국가폭력에 '분노'하고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이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다.

백남기 농민 함께 걷는 우리 모두는 백남기 농민!
백남기 농민함께 걷는 우리 모두는 백남기 농민! ⓒ 권말선

도보순례단을 맨 앞에서 인도하는 방송차량 뒷 유리에 백남기 농민의 사진이 걸려 있다. 참 인자한 이웃집 어르신 모습이다.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손주의 손을 잡고 생일케익의 촛불을 바라보는 얼굴이 겹쳐 떠오른다. 소박한 민중의 모습이다.

그렇게 온화하고 평온한 일상을 짓밟은 것은 국가폭력이었다. 누가 그랬던가, 노동개악도, 위안부 굴욕합의도, 한미일군사협정도, 사드배치도, 개성공단폐쇄도, 모두 물대포와 같은 국가의 폭력이라고. 국가의 폭력에 주눅 들지 않고 거부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은 모두 모일 것이다. 그것이 4차 민중총궐기가 될 것이고 국가폭력이 지속되는 한 민중총궐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며 거대한 민중의 들불은 기어이 국가폭력을 굴복시키고 민중세상을 이루어 낼 것이다.

그런 염원과 각오를 우리는 광주에서도 우금티고개에서도 바람 부는 빈 들에서도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 얼굴에서도 확인하고 있었다.

저 부드러운 미소의 백남기 농민이 순례단을 이끌며 외치고 있다.

그대, 산 자여 따르라!  


#민중총궐기#도보순례단#국가폭력규탄#백남기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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