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했다. 동물원에 있는 토끼와 기니피그 열댓 마리가 나무 울타리 안에 함께 살고 있었다. 마트 애완동물 코너에서 각자의 우리 안에 갇혀있는 모습만 보다가 한 데 모여있는 걸 보니 낯설었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풀 먹는 식성끼리 서로 물어뜯지는 않을 테니 괜찮은 조합이었다. 사육방식을 흥미롭게 여기며 다른 체험장으로 이동하려는 찰나였다.
퍽! 갈색 토끼가 기니피그 머리를 짓밟으며 지나갔다. 퍼벅! 곧이어 흰검 줄무늬 토끼가 다른 기니피그 등을 뒷발로 뭉개며 뛰어다녔다. 어쩌면 괜찮은 조합이 아닐 수 있었다. 가던 발길을 돌려 유심히 관찰했다.
토끼에게 밀려 도태되는 기니피그들
토끼는 왜 자기 뒷다리만 한 귀염둥이들을 밟고 다녔을까? 먹이 때문이었다. 이 사육장에서는 먹이주기가 허용되었다. 관리자에게 오백 원을 주면 종이컵에 당근을 담아준다. 당근은 길쭉하고 얇아 나무젓가락처럼 생겼다. 사람들은 아크릴판에 뚫려있는 먹이 구멍으로 당근을 밀어 넣는다. 먼저 발견한 놈이 임자였다. 주홍색의 맛있는 채소가 눈에 띄기만 하면 동물들은 흥분하여 쫓아갔다.
기니피그는 토끼의 상대가 안 되었다. 순발력, 속도, 힘, 신장 모든 면에서 토끼가 월등했다. 심지어 먹이 구멍의 위치는 기니피그 키로 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토끼는 앞발로 당당히 난간에 서서 먹이를 갈구했고 기니피그는 귀 큰 녀석들이 놓친 떨이들을 줍느라 바빴다. 기니피그용 계단이 설치된 구역이 한 군데 있었으나 토끼들 엉덩이 받침대로 쓰이기 일쑤였다. 이 작은 생태계에서 갑은 토끼였다. 와그작 와그작. 토끼는 거대한 앞니로 당근을 뭉텅뭉텅 토막 냈다.
토끼가 무표정으로 먹잇감을 씹어대는 장면은 공포스러웠다. 기니피그들은 토끼 다리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바닥을 훑었다. 혹시나 떨어져 있을지 모르는 당근을 찾아 코를 벌름거렸다. 같은 종족 내부에서도 다툼이 치열했다. 간발의 차이로 승패가 결정되니 기니피그의 다리는 쉴 틈이 없다. 겸손한 길이의 희고 고운 발이 부지런히 왔다갔다거렸다. 갈색, 캐러멜색, 흰색 털들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만약 여기가 동물원이 아니라면 기니피그는 어떻게 될까? '
죽음. 슬프게도 사망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미래를 가정해보았다. 충분히 영양을 섭취한 토끼들은 점점 더 강해지고 새끼들도 어미 젖을 양껏 빨며 튼튼하게 자란다. 토끼는 다산왕이다.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반면 기니피그는 부족한 먹거리로 신체 기능이 저하되고 새끼들의 생존율도 낮아진다. 시간이 갈수록 토끼와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기니피그는 자연스레 생존게임에서 아웃된다.
잠깐, 생각해보자. 기니피그가 피골이 상접하여 비극적으로 멸종했다. 토끼에게는 잘못이 있을까? 없을까? 토끼는 신체적 이점을 살려 정당하게 먹이 쟁탈 싸움에서 승리했다. 타고난 능력에다가 노력이 더해진 결과였다. 태어나 보니 이미 남들보다 유리한 자질과 배경을 가지고 있었던 토끼에게 죄를 묻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기니피그는 어떨까?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경쟁자를 이길 수 없는 존재에게 도태와 절망은 당연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학교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이 있다.
몇몇 아이들을 편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교사 임용이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발령은 받았는데 3월에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어리바리하게 있는데 옆 반 선생님이 가정환경조사서를 보내주셨다. 학기 초에 받아서 갖고 있으면 학급 운영하는데 편하다는 조언을 보태셨다. 양식을 확인했는데 좀 놀랐다. 부모님 직업과 나이, 자가 월세 전세를 구분하여 거주형태를 묻는 항목이 있었다. 선배가 주면 주는 대로 쓰는 게 맞는지 알고 그대로 복사해서 가정통신문으로 내보냈다.
다른 애들은 다 제출했는데 H양 종이만 없었다. 따로 불러 물어보니 엄마는 없고 같이 사는 아빠가 계속 안 써줘서 혼자 작성하고 있었다고 했다. 웬만한 질문에는 답이 달려있었는데 거주형태에서 끙끙대고 있었다. 한편 'e편ㅇ세상(아파트 이름)'에 사는 J군이 어디서 들었는지 자기 집은 완전한 자가이며 교동의 다른 집은 전세를 주고 있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J군 말을 듣고 L양도 아빠가 건물이 있다고 호응했다. 금메달, 은메달 잔치 속에 민망했는지 H양이 슬며시 와서 귓속말을 했다.
"선생님, 저는 원룸인데 뭐라고 써야 돼요?"
같은 8평짜리 원룸에 사는 동지를 만나 반가웠다. 나는 보증금 500에 30만원 내는 월세방이었지만 H양에게는 자가에 동그라미 치라고 했다. 아니라도 어쩌겠는가? 월세 체크하면서 어린애를 기죽이고 싶지 않았다. 처음부터 되지도 않은 가정통신문을 보낸 선생의 잘못이었다. 이듬해부터 가정환경조사서를 상담조사지로 바꿨다. 부모 경제력과 관련된 내용을 싹 뺐다.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취한 조치였는데 반 학기만 지내다 보면 저절로 살림살이가 가늠되었다.
가난은 생활의 불편함으로 끝나지 않았다. 정서와 사고방식도 어둡게 만들었다. 낮은 자존감, 멍함, 부정적인 세계관, 불확실한 미래예측, 타인에 대한 불신감... 집안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과 함께 있다 보면 슬퍼졌다.
'왜 궁핍함이 마음까지 쪼그라들게 만드는 걸까?'
나는 편애를 했다. 훌륭한 교사의 자질인 공정성을 지키지 못하고 특정 아이들을 더 챙겼다. 인원이 한정된 무료 캠프에 꽂아주고, 서점에서 홍보용으로 문제집이 나오면 가방에 넣어줬다. 일기검사를 더 꼼꼼하게 하고 코멘트도 한 줄 더 달았다. 반장 엄마가 어린이날 기념으로 보낸 피자빵이 남으면 수업 마치고 검은 봉지에 싸서 들려 보냈다.
일년이 지나 반이 바뀔 때 편애했던 꼬마들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편애를 후회하지 않았다.
속단하기 이르지만 넉넉하고 부유하게 자란 학생들이 높은 학벌을 취득하고 사회에서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들다는 게 상식으로 통하는 시대다. 부모의 사회적, 경제적 수준은 다음 세대에게 대물림된다.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주어진대로 살아가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와 제35조에 명시되어 있는 기본 권리이다. 누군가가 이 기본권을 누릴 수 없다면 추가적인 혜택을 주어서라도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각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사회가 건강하고 옳은 사회라고 믿는다. 약육강식의 논리는 원시적이고 폭력적이다.
기니피그에게 먹이를 주다
다시 토끼와 기니피그 이야기로 돌아가서 마무리지어 보자. 토끼 등쌀에 밀려 굶주린 기니피그들을 돕기로 했다. 종이컵에 당근을 잔뜩 담아 벽돌 계단이 설치된 먹이 구멍으로 갔다. 여기에서만 기니피그가 제 발로 서서 먹이를 받아먹을 수 있다.
당근을 쭉 밀어 넣으니 눈치 빠른 털복숭이들이 쪼르르 달려왔다. 그들은 계단을 타고 올라 등을 쭉 폈다. '나도 할 수 있다'라고 외치는 듯했다. 그리고는 새끼손톱보다 작은 입으로 당근을 잘근잘근 씹었다. 토끼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육중한 덩치로 몸통 박치기를 하며 기니피그들을 몰아냈다.
말귀도 못 알아듣는 토끼에게 꾸중하고 외벽을 퉁퉁 쳤다. 수시로 토끼를 내쫓으며 기니피그에게 당근을 먹였다. 토끼가 집요하게 방해공작을 일삼았다. 갖고 있는 당근을 비우는데 10분이 걸렸다. 기니피그를 지원하는 일은 귀찮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많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토끼의 입장에서는 불공평하고 사리에 어긋난다. 그럼에도 기니피그를 보호하는 행동은 가치가 있다.
강자를 내버려두는 것은 편리한 선택이지만 약자를 보호하는 것은 정의로운 선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