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세 연예기획사 대표가 15세 여중생과 성관계를 맺었습니다. 여중생은 임신에까지 이르렀고 출산 후 성폭행을 당했다며 남성을 신고했습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 사건은 '의제강간 연령 상향'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불을 지핍니다. 13세 미만 청소년과의 성관계를 강간으로 간주해 처벌하도록 돼있는 규정의 연령을 16세 미만으로 올리자는 것입니다. 작년 12월 해당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 찬반 입장이 팽팽합니다.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와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논리가 맞섭니다. 찬·반 입장을 각각 전합니다. [편집자말] |
"여성 운동 진영에서는 여성들이 성적 자기결정권이 박탈당한 채 살아왔다며 여성이 자신의 성을 찾아가는 운동을 벌여왔어요. 그런데 왜 청소년의 경우 (보호한다는 이유로) 성적 자기결정권 박탈을 당연하게 여기죠? 의제강간 연령 상향은 청소년을 행위 무능력자로 만드는 겁니다. 장기적으로 청소년의 위치를 더 약화시키는 거예요."의제강간 연령 상향에 대한 반박이다. 왜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강화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보호'하겠다는 거냐고 따져 묻는다. 청소년의 인권과 성적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 활동하는 청소년인권단체,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 쥬리씨의 말이다.
의제강간 연령이 상향되면 16세 미만 청소년과 성관계를 맺은 상대가 19세 이상일 경우 그는 범법자가 된다. 여기에서 16세 미만 청소년의 동의 여부는 고려되지 않는다.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쥬리씨는 "법안 자체가 청소년의 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청소년의 성적 결정권을 침해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이런 감성이 확대되는 게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성폭력 사건에는 복잡한 권력관계가 작동하는데 나이라는 투박한 기준으로만 해결하려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적(性的) 고민에 대한 정보 차단, 알아야 대처 가능하지 않나"그는 또 물었다.
"의제 강간 연령 상향 당사자가 청소년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쉽게 나이를 올리자고 판단할 수 있었을까요? 의제강간 연령 상향 논의 과정에서 청소년은 아예 배제됐어요."그렇다면, 청소년이 성적 착취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교사, 부모 등 가까운 지인에 의한 성폭력이 사라지려면 교사-학생, 부모-자녀 간의 위계를 없애는 것이 하나의 방책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된다면 성폭력 사건이 지금처럼 묻히진 않을 것이고, 부모로부터 학대당했을 때 쉽게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대안은 '성교육'이다.
"성교육이나 잘했으면 좋겠어요. 정부에서 성교육 표준안을 발표하는데 결론은 늘 '섹스하지 말라'였는데요.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 능력을 키운다던지, 섹슈얼리티를 탐구한다던지 이런 방향으로 성교육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고 봐요. 포털 사이트에 콘돔을 치면 19세 이상임을 인증해야 합니다. 성적 고민에 대해서는 정보가 다 차단돼있고요. 이런 정보가 차단돼서 더 위험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뭘 알아야 대처도 가능하지 않나요."다음은 쥬리 활동가와 나눈 일문일답 전문이다.
"애정관계에 빠진 십대 소년소녀를 성범죄자로 낙인찍는 결과 낳을 수 있어"
- 성폭력으로 가해자가 처벌받는 거 자체가 우리나라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의제강간 연령 상향은 법을 더 촘촘히 해서 '나쁜 놈' 한 명이라도 더 잡자는 취지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성폭력 사건에 대해 명시적인 폭행, 협박이 없으면 유죄 판결을 받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의제강간 연령을 16세로 올려서라도 가해자를 기소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렇지만 이게 법망을 촘촘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절대적인 '나이'라는 지나치게 투박한 기준을 내세운 것 뿐이다.
구조는 선명하고 개인은 복잡하다. 성폭력 사건에도 복잡한 권력 관계가 작동하는데 나이만을 기준으로 강간 판결을 내릴 수 있는 법을 강화하는 건 복잡한 사건을 투박한 기준으로 해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효율적일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지 등을 면밀하게 봐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의제강간 연령 상향 당사자가 청소년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쉽게 13세에서 16세로 올리자고 판단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 의제강간 연령 상향으로 가장 크게 침해되는 권리가 무엇이라고 보나. "이미 가정이나 학교에서 청소년의 연애는 처벌 및 징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나이 많은 남성과 여성 청소년의 연애는 비행처럼 여겨지고 있다. 지금도 이러한데, 이제는 공권력으로 '불법'임을 협박할 수 있는 빌미가 생긴다. 비청소년(성인) 남성으로부터 여성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취지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학교나 가정, 다른 어른에 종속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청소년이 성을 접하는 건 나쁜 거라는 인식이 확산될 가능성도 크다. 법안 자체가 청소년의 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청소년의 성적 결정권을 다소 침해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이러한 감성이 확대되는 게 우려된다.
현재 논의 되는 게 16세가 기준인데, 그럼 16세 이상의 청소년이 성적 대상화 되는 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또 단서규정을 둬서 청소년 간의 연애는 간섭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개정안이 통과되면 16세 미만과 연애 관계를 맺고 있는 19세 남성은 법에 저촉된다. 이미 그런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졸지에 범법자가 되는 거다. 현실적으로 의제강간・강제추행죄의 최저연령기준이 상향되어 그 적용범위가 확대될 경우 조숙한 애정관계에 빠진 십대 소년소녀를 성범죄자로 낙인찍는 결과를 낳기 쉽다. 증거의 확보가 더 용이하고, 상대방 부모가 관계단절을 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성폭력이라는 것이 비대칭적 권력관계 때문에 생기니, 비청소년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지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하나. "여성운동 진영 등에서 이 안을 찬성하는 것에 대해 진정성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다만 제대로 된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청소년 인권 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청소년과 비청소년 사이의 위계를 없애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는데, 의제강간 연령 상향은 그저 청소년을 행위 무능력자로 만드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청소년의 위치를 더 약화시키는 방향이다.
학교 내 성폭력의 경우, 체벌만 없어져도 위계를 없앨 수 있다. 노조가 사업자와 협상하듯 학생회가 힘을 갖고 학교 안에서 교사 등과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된다면 교사들의 성폭력 문제가 지금처럼 묻히진 않을 것이다. 또한 부모 등 친족에 의한 성폭력도 비일비재하다. 우리나라 청소년은 친권 안에 종속돼있는데 미국은 일정 이상 나이가 되고 독립 능력을 증명하면 성인으로서 권리를 주는 제도가 있다. 이런 제도가 도입되면 부모로부터 학대당했을 때 쉽게 빠져나올 수 있다. 지금 상태에서는 가출해서 찜질방도 못 간다."
"청소년은 성인을 성적으로 욕망할 수 없나요?"
- 물론 학교 선생님이나 가정 내에서 성폭력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채팅 앱을 통해 만남을 갖고 여기서 성폭력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의제강간 연령 상향은 피의자를 처벌하기 위한 하나의 방책이 될 수 있지 않나. "아까도 말했듯, 법안 발의의 진정성을 의심하진 않는다. 그런 사례들을 보고 오죽 답답했으면 개정안을 냈을까 싶다. 나이를 기준으로 무조건 강간이다 간주하는 게 아니라, 성폭력 사건에 대해 특별히 '이런 이런 요소들을 고려해서 판결을 내리자' 등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면 찬성했을 거다.
채팅 앱을 통해 만남을 갖는 것에 대해서도, 여성 청소년이 채팅 앱으로 남자를 만나서 섹스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는 건 아예 불가능한 건가. 청소년은 비청소년을 성적으로 욕망할 수 없는 건가. 나도 16세 이전에 성적관계를 맺은 경험이 있는데 그 모든 경험이 내 의사에 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청소년이 제대로 된 성적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아서 착취당하기 쉽다는 건 맞다.
그러나 모든 사례들이 '당사자의 주체성은 조금도 없이 당하기만 한 것' 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한편으로는 모욕적이다. 여성 운동 진영에서는 여성들이 성적 자기 결정권이 박탈당한 채 살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때문에 여성이 자신의 성을 찾아가는 운동을 벌여왔다. 그런데 왜 여성 청소년의 경우에는 권리 박탈을 당연하게 여기는가. 의제강간 연령 상향을 논의 과정에서 청소년은 아예 배제됐다. 청소년 당사자의 입장을 한 번이라도 들은 적이 없다."
-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성교육이나 잘했으면 좋겠다. 정부에서 성교육 표준안을 발표하는데 결론은 늘 '섹스하지 말라'였다. 피임 도구 같은 걸 보여주며 임신을 예방하는 교육에 치중돼있다.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 능력을 키운다던지, 섹슈얼리티를 탐구한다던지 이런 방향으로 성교육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포털 사이트에 '콘돔'을 치면 19세 이상임을 인증해야 한다. 그 외에도 연애를 하다가 고민이 생길 경우 다른 사람의 경험을 참고하고 싶어도 성적 고민에 대해서는 정보가 다 차단돼있다. 이런 정보가 차단돼서 더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뭘 알아야 대처도 가능하지 않겠나."
- 실질적인 성교육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콘돔을 들고 가서 직접 보여주는 것만 해도 보통의 학생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일 것이다. 여성 청소년에게는 위계, 위력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지, 자신이 성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랄지 이런 걸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정부의 성교육 표준안에는 청소년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성관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있다. 남성이 성적으로 유혹할 때 여성은 '우리는 학생이니까 성관계를 해서는 안 돼'라고 말하는 게 모범답안이다. 말이 되나."
- 일반적인 14~16세의 성 관념은 어떻다고 보나."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성적인 존재다. 성교, 삽입 그걸 떠나서라도 정신적으로 원하는 건 다 존재한다. 유치원생 아이들도 자위를 하지 않나. 우리나라에서는 남성 청소년의 성욕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여성 청소년의 성은 아예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정말 그럴까?"
- 현재 의제강간 기준은 만 13세다.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나이를 기준으로 하는 법들은 기본적으로 다 반대한다. 공권력이 투입되는 문제다. 나이처럼 일괄적 기준을 중심으로 개인의 결정에 공권력이 개입하고 처벌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한다."
- 의제강간 연령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필요하다고 보나. "의제강간 연령 설정 자체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없었으니, 논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기준을 몇 살로 할 것이냐의 방향이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냐를 두고 얘기했으면 한다. 일단 청소년 당사자에게도 손을 내밀어 함께 논의하자고 했으면 좋겠다.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건 때로 너무나 모호해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확실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해결책이라고 채택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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