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은 한 몸뚱이로 붙어 있다. 사람들이 별것인양 기념하는 12월 31일과 1월 1일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졸업과 입학, 기쁨과 슬픔도 온전히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아들의 삶도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우리들의 세월 안에서 맞물려 있다. 정(正)이 있으면 그와 견주는 반(反)이 있고 그와 동시에 그것들은 합(合)을 향해서 나아간다. 정이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니고 반 또한 반드시 틀린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상대가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 이번 가족여행에서 그것을 보다 확실히 알게 됐다.
큰 아이가 결혼을 한다고 날짜를 잡았다. 결혼이란 어쩌면 끝이면서 시작이기도 하다. 아들은 새로운 인연을 맺었지만 우리는 '우리'라는 울타리를 허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느낌들이 우리 안에 잠긴 서정을 자극해 잠깐 과거 가족 모두가 함께 했던 여행을 떠올리며 설렜고, 그러다가 큰아들이 우리 안에 있을 때를 기념하기 위해 2박 3일 제주도 여행 계획을 잡았다.
우리 사이에 두터운 후의가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가족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끈끈한 정으로 묶여 있는 것은 결코 아니어서 인생에 있어 큰 사건이라 할 수 있는 관계의 해체와 새로운 형성을 맞아 다소 두려움도 있었다.
큰아들의 결혼을 계기로 떠난 여행
그래서 생각한 것이 오랜 만의 이번 가족여행이었다. 돌이켜보건대 나는 아비로서 무얼 했던가. 아이들이 중·고교를 졸업하기까지 어머니가 우리 곁에 계시며 아이들의 건사를 전부 도맡아 하셨고 일부나마 아내가 나머지를 거들었으니 내가 했던 일은 없었다.
그동안 내가 보여준 것은 '부재'이거나 '술 귀신'이었다. 모범이라고는 없었다. 다른 아버지들처럼 책을 읽거나 뭔가를 열정적으로 성취해 동기를 부여했던 일은 결코 없었다. 그랬음에도 내 아이가 큰 실수 없이 평범하게 성장해 이제 한 가정을 꾸린다고 나선 것이다. 진심으로 감사할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 계획에는 그동안의 잘못을 뉘우치고 앞으로 "나도 잘할 테니 너희도 내게 관심을 가져주라"는 내 비루한 희망도 포함됐을 것이다.
우리는 늘 하던 대로 아들 둘이 내려온 날 저녁에 인터넷을 통해 저마다 자기의 정서에 맞는 여행지를 하나씩 추천해 동그라미를 쳤다. 우리에게 여행이라는 것은 한자 뜻 그대로 '旅行'이었다. 나그네가 돼 잘 모르는 그 어딘가로 가는 것. 나그네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센티멘털과 고독, 사색 및 일탈, 그런 정도를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여행의 주인공이라고 할 음악을 하는 큰아이도 그런 편이었다.
1월 어느 날, 우리는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렌터카를 빌렸고 여행을 시작했다. 바람이 펄럭이는 올레 길을 천천히 걸어 올라가 추위에 몸을 웅크리면서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바다를 바라봤다. 그리고 우도에 들어가서 두 아이들이 해안도로를 달리는 동안 스쿠터를 망가뜨리고 망연자실, 대여점 안에서 바람 속을 뚫고 달리는 청춘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흑돼지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고, 제주도 바다를 내려다보는 높은 곳에서 하늘과 맞닿아 반짝거리는 해안선을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목각사진이 남긴 것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섰다. 일 그리고 술과 담배에 대한 아이들의 방식도 한층 가까이에서 보니 걱정만큼 어리석어 보이지도 않았다. 아이들도 나름대로 살아가는 지혜를 분명히 갖고 있었다. 여행은 우리의 비어 있던 공간을 추억으로 채웠고, 30년의 오랜 간격을 녹여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했다.
특히 '쇠소깍'이라는 생경한 이름의, 내륙 깊숙이 자리한 호소(湖沼)같은 바닷가에서 사진을 찍으며 나는 '대물림'과 '아름다운 분파'를 생각하기도 했다. 결혼을 앞둔 큰 아이가 디지털 사진을 목판에 담아주는 가게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제 여자친구와 찍은 사진을 맡겼다.
그 사진이 목각이 돼 나오는 동안 우리는 어묵과 따뜻한 국물을 마셨다. 이윽고 원목에 찍힌 사진이 나왔을 때 그 사진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던 작은 아이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더니 내게 잠시만 기다려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자기도 여자친구와 찍은 사진을 기념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작은아이가 주인에게 사진을 맡기는 것을 보고 문득, 나도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그러자고 해 아이들에게 우리도 커플이니 사진을 찍겠노라고 해 함께 웃었다.
맑은 물이 내려다보이는 숲가에서 어깨동무를 하며 사진을 찍었고 우리는 잠시 후 세 개의 목각사진을 돌려가면서 쳐다보고 또 웃었다. 재미있었다. 말은 없었지만 우리 모두 기쁨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가를 한번쯤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여세를 몰아 네 사람이 나오는 셀카를 찍었다. 그러면서 또 머리가 작게 나오도록 등을 떠미는 것이 즐거움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아들이 '고 서방' 소리를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여행 중 가장 좋았던 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이구동성으로 그 목각사진이라고 했다. 금시초면이었던 디지털 목각사진과 셀카. 그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값진 보람이 있었다. 그 사진을 통해 보다 깊은 가족으로서의 울림을 공감했다. 또 나와 아내로부터 뻗어가는 '대물림'과 그것의 결실로서 '새로운 가족의 탄생'의 의미를 가슴깊이 새겼다.
그때를 증명하듯 지금 책상 위에는 사진이 놓여 있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쳐다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마주치면 늘 아이들의 이름을 부른다. '야, 늘 건강해라, 하고 싶은 일 하며 행복해라'라고.
어제는 큰 아들이 전화를 했다. "아버지, 여자 친구 어머님과 함께 셋이서 웨딩드레스를 보러 갔는데요, 어머님이 제게 '고 서방!' 하시는 거예요, 어찌나 어색하던지 혼났네요" 하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뭐? 고 서방? 임마, 나도 네 외가에서는 고 서방이여. 네가 새 고 서방이 되는 바람에 나는 헌 고 서방이 되고 말았다."끊이지 않는 대대의 물림이야말로 어쩌면 진정한 역사의 순환인지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끝이라고 되뇌면 그곳이 또 시작점이었습니다.
요즘 인생도 이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