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뒷산에 국립 수목장을 만들기로 결정했다는 걸 두 달 전에서야 알았다."
"국가사업을 주민 모르게 한다는 게 말이 되나."3일 충남 서천군 판교면 심동리 마을 주민대표단이 대전정부청사에 있는 산림청 직원들과 마주 앉았다. 주민 50여 명이 전세버스를 타고 한바탕 시위를 벌인 뒤 마련된 자리였다. 이들이 몇 달 동안 쌓아 놓았던 사연을 쏟아냈다. 감정은 격앙돼 있었지만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산림청이 지난해 11월 '충남 서천에 제2의 국립 수목장림을 조성한다'고 보도 자료를 낸 게 신문에 실렸다. 우리 동네에 수목장이 들어선다는 걸 신문을 보고 알았다.""수목장 예정지와 마을 가정집과 길게는 수백 m, 짧게는 20m 밖에 안된다, 수목장 예정지로 가는 길도 동네를 거치는 길 하나밖에 없다." "주민 설명회 한 번 없이 주민 100% 찬성?"
질문도 쏟아졌다.
"지난해 7월, 마을 이장이 '수목장 대상 후보지 참여 동의' 신청서에 서명해 달라고 해 일부 주민이 서명했다. 이게 주민 설명회 한 번 없이 주민 100% 찬성으로 둔갑했다. 어찌 된 일인가?""부여 국유림 사무소장은 국가사업이라 주민 동의는 없이 사업추진이 가능하다고 큰소리쳤다. 정말 주민 동의 과정 없이 사업을 추진할 작정인가?""수목장림 대상지는 차령산맥 줄기인 장태산으로 서천에서 가장 높은 주산이고 판교천 발원지며 식수와 농수의 발원지다. 정말 수목장림 대상지가 전국에 이 곳밖에 없나?"지난해 11월 보도 자료를 통해 수목장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제1 수목장림(48ha)에 이어 충남 서천에 36ha 규모의 제2의 국립 수목장림(하늘숲 추모원)을 조성한다고 발표가 나왔다. "설계를 완료했고 2016년부터 조성사업에 들어가 2019년 완공한다"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주민들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라며 반발했다.
대상지 결정 보도 후에 처음 열린 주민설명회
산림청이 제 2수목장림(추모공원)으로 결정됐다고 발표한 서천군 판교면 심동리에는 약 45가구 7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추모공원과는 불과 20∼200여m 정도 거리이고, 마을을 지나야만 갈 수 있다.
하지만 이때까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마을 회의나 주민설명회 한 번 없었다고 했다. 산림청 직원들이 현장을 방문했다는 얘기도 들어보지 못했다. 이장의 독촉으로 뜻 모를 '후보지 참여 동의서'에 서명한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주민들은 "마을 이장과 서천산림 조합장, 부여국유림 사업소장 세 사람이 주민 의사를 묻지 않고 몰래 일 처리를 해 이 지경이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은 이를 이유로 마을 이장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기한 상태다.
주민설명회는 대상지가 결정됐다는 보도 이후인 지난해 12월 초 처음 열렸다. 대다수 주민이 반대 의사를 통보했다. 하지만 부여국유림 사업소장이 항의하는 주민대표단에 "주민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는 주장도 나왔다. 참다 못한 주민들이 이날 산림청이 있는 대전정부청사로 몰려 왔다.
"백지화하고 절차 다시 밟아 달라"
주민들의 요구는 간결하다. 주민 대표단은 "결정부터 하고 주민설명회를 할 게 아니라 사업을 백지화하고 주민설명회 등 절차를 처음부터 제대로 다시 밟은 후 사업추진 여부를 결정해 달라"는 거다. 또 하나의 요구는 "주민들과 소통 없이 일을 추진한 부여 국유림사무소장을 징계해 달라"는 것이다.
1시간여 동안 주민대표단의 얘기를 듣던 임영석 산림휴양치유과장도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임 과장은 "주민대표단의 얘기를 잘 들었다"며 "조만간 내부 방향을 정리해 답변을 드리겠다"고 짧게 답했다. 이어 "여러 안을 고민해 보겠다"고 덧붙였다.
주민들은 이날 3시간 가까이 시위를 벌이다 임 과장의 답변을 듣고 마을로 돌아갔다. 이에 따라 산림청이 내놓을 답변 내용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