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쓰는 맛'을 안 덕이는 좀처럼 쉽게 본인의 씀씀이를 줄이려 하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일단은 덕이가 마음 편하게, 그리고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한 뒤 그 다음에 함께 이야기 하는 방향을 택했다.
내가 "덕아~"라고 부르자 덕이는 그렇지 않아도 본인의 씀씀이가 조금은 마음에 걸리는지 내 눈치를 보면서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고모 : "덕아~ 앞으로 6개월간 너가 하고 싶은데로 마음껏 해보렴."
덕 : "응? 왜?"
덕이는 순간 '이건 뭐지'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되묻는다.
고모 : "사실 너도 지금 돈 써보는 재미가 좋긴 하지만, 내가 언제 너의 씀씀이에 대해 불러서 이야기할지 몰라 약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지?"
덕 : "맞어."
고모 : "지금까지 2년동안 너가 마음대로 해보았듯이 앞으로 6개월간 네가 하고 싶은대로 써보렴. 대신에 한 가지 약속을 할 수 있을까?"
덕 : "(조금은 안도한 표정으로) 뭔데?"
고모 : "앞으로 6개월간은 가능하면 천 원 단위라도 현금을 사용하지 말고 카드로만 사용해보고, 매달 나오는 카드사용 내역서를 보고….(사전에 준비한 내 카드내역서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이어간다) 사용된 품목별로 너가 구분해 보는거야."
덕 : "어떻게?"
고모 : "품목별로 너가 갖고 있는 노트에 매달 어느 곳에 얼마를 사용했는지 합계를 내보는 거지."
나는 한 가지씩 품목별로 구분하는 방법을 설명해줬다. 덕이는 "알겠다"고 말하며 씨익 웃었다. 다행이라는 듯 홀가분해 보인다.
6개월 후, '약속의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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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이가 폰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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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5개월이 흘렀다. 일과를 마친 덕이는 TV 앞에서 즐거워하며 휴대전화로 게임을 열심히 하고 있다. 나는 그런 덕이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덕이가 자신을 보고 있는 나를 의식했는지 약간은 짖궃은 투로 말한다.
덕 : "뭘보셩?"
고모 : "핸드폰 하고 있는 너"
덕 : "왜?"
고모 : "너가 집중하는 모습에 힘이 느껴져서"
덕 : "왜 할 말 있어?"
고모 : "핸드폰 요금…."
덕 : "요금제 만큼만 쓰니까 걱정마."
고모 : "그렇구나. 역시 맘에 들어."
사실은 신경이 무척 쓰였다. 다행히 근래에는 휴대전화 요금이 과하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고 있는 덕이를 종종 보면서 처음 몇 번처럼 덕이가 유료인지 모르고 게임을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때 함께 봉사하는 형제들이 덕이를 친동생처럼 덕이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어떤 게 유료고 어떤 게 무료인지 설명해줬다. 다행히 그것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덕이가 휴대전화를 사용할 때 약간 마음이 쓰였다. 6개월간 덕이 마음대로 해보라고 할 때 휴대전화 사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었다. 일단은 믿고 기다려보기 위해서.
이제 약속한 6개월이 다 지나고 카드명세서를 받은 날. 그날 나는 오후 11시쯤 귀가했다. 덕이는 이미 일과 마무리를 끝낸 상태였다.
고모 : "덕아~. 이제 우리 정리해보자."
덕이는 당당하게 노트를 들고 내 앞으로 온다. 그런 모습을 보니까 아마도 자신이 있나 보다. 덕이가 "자~" 하면서 내 앞에 노트를 내려놓는 모습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고모 : "자신 있나 본데?"
덕 : "한번 봐."
덕이 나름대로 분류해서 합계를 기록한 노트를 보니까 내가 흐뭇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원하는 요구사항을 그대로 이행하려고 했던 흔적이 보인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2년 전부터 설명할 때는 듣는 것 같지 않더니, 그렇게 할 때 스스로도 생활의 틀을 조화롭게 잡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겼나 보다. 약간 품목의 분류가 정확하지 않은 곳이 발견됐지만, 전체적으로 이 정도면 괜찮다 싶었다. "잘했다, 역시 믿을만 한데"라고 해주니 덕이는 무척이나 좋아한다.
진정한 발전을 원한다면... 기다리세요 이런 생각을 한다. 상대가 진정으로 건강하게 발전하기를 원한다면 '기다림' '믿음' '존중', 여기에 더해 그런 점들을 상대가 알 수 있도록 말이나 태도로 보여주는 게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그래서였을까. 나는 덕에게 나에 관해서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할머니께서 좋아하시는 과일, 음식을 이야기 해줬는데도 어느날 할머니께서 좋아하시는 노란 참외를 사왔다.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포도도 한 팩 사와 내 앞에 놓는다. 물론, 아무런 말 없이.
그런 덕이 모습이 고맙고 든든하기까지 하다. 이제 이 정도면 덕이가 신체적 자립과 경제적 자립을 모두 할 수 있을 것 같다. 수입에 맞춰 매일, 매주, 매달, 분기별로 지출해야 하는 항목을 기록한 뒤 수입과 지출 사이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도 덕이가 건강한 성인으로 생활할 수 있게 돕기 위해선, 우선 덕이의 마음에서 온전히 평화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게 꼭 필요했다.
또한 본인이 하고 싶은대로 해볼 수 있는 시간, 어느 정도 비교 분석해볼 수 있을 정도의 긴 시간 역시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난 뒤에 추가로 필요해보이는 점을 지도하면 덕이는 보편적으로 잘 받아들이는 편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말없이 나 자신과의 싸움이 벌어진다. 마음과 머리 사이의 싸움 말이다. '기다려줘야 하나?' '이쯤에서 말해야 할까' '아니야, 덕이가 충분히 해봤다고 생각할 때까지 기다려봐야 해' 등…. 나는 나 안의 갈등 때문에 두통이 생길 때도 있었다.
그러나 덕에게 필요한 시간 만큼 기다린 뒤 따라오는 효과는 그동안 머리가 아팠던 이상의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종종 덕이의 일에 있어선 덕이가 필요한 시간 만큼 기다려준다. 그 일에 주체는 덕이이기 때문에.
이런 지도를 받고 자란 사람은 섣불리 남에게 불평을 하거나, 본인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을 대 초조해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자! 다음으로는 덕이의 '정서적인 독립'을 실행해 볼 차례다. 실행 결과, 본인이 원하는 결과든 아니든 거기에 따르는 감정요인까지 받아들이는 훈련(다른 표현으로 학습이라고 한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