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개봉한 한국 영화 중 <뷰티 인사이드>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여자 주인공 홍이수 역으로 배우 한효주가 나오고, 남자 주인공 우진 역으로는 박서준·유연석·이동욱·서강준 등 남자 배우는 물론 박신혜·천우희·고아성 등 여자 배우도 나온다. 우진은 자고 일어나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매일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사랑하게 된 이 둘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영화는 '인사이드(Inside)'의 '뷰티(Beauty)'를 말하고자 했다.
이 영화는 소재의 신선함 만큼이나 촬영지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다. 두 주인공이 가구를 만들고 판매하는 일에 연결됐고 촬영 현장은 빈티지 가구들이 즐비한 곳이었기에 관객들은 주인공을 보는 것만큼이나 다양한 가구를 보는 호사를 누렸다.
<뷰티 인사이드> 촬영지가 부평구 십정동이라는 것을 알고 난 뒤 바로 그곳을 방문했다. 지난 2월 29일 그곳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카페 '발로'에서 김지수(30) 실장을 만나 '발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에는 여자 주인공이 자주 다녔던 곳이 '이수 거리'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낡은 철강 공장이었던 곳, 전국의 관광객 몰리다
월요일 오전인데도 발로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분주하게 돌아다녔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실내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욱하게 인공 스모그가 뿜어져 나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평일에는 150여명, 주말에는 500여명 정도 찾아와요. 부산에서도 오로지 우리 발로만을 방문하려고 일부러 인천에 오는 관광객들도 있어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지난해 8월 <뷰티 인사이드>가 상영된 후 10월께부터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해, 카페 매출액이 세 배 이상 뛰었단다.
"그 전에는 빈티지 가구를 구경하거나 사러온 손님, 쇼핑몰 등을 촬영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았어요. 재작년에 그룹 '부활'에서 노래 <사랑하고 있다>의 뮤직비디오를 찍고 나서 조금 유명해졌고, 촬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죠."그 후 아이돌 그룹인 나인뮤지스와 지코, 키썸, 틴탑, 서인국 등이 이곳에서 연거푸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이곳이 어떤 곳이었고 어떤 용도로 사용됐는지 물으니, 2014년 4월에 발로가 문을 열기 전에는 기름때가 두껍게 낀 철강공장이었단다.
"이곳을 소개해준 부동산 중개인이 미안해할 정도로 낡은 곳이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1970년대에 만들어진 공장이고 화장실도 지붕모양도 옛날 구조인데 있는 그대로 살리려고 했습니다."건물 바닥과 벽을 시공하거나 건설자재를 판매하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한 김연표 대표는 시공하러 다니거나 공사가 끝난 후 그곳을 방문해 전시돼있는 것들을 보면서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빈티지 가구에 꽂혔다.
사업을 확장하면서 이곳에 둥지를 틀고 다양한 가구와 소품을 수집했고 그것을 이용해 쇼룸을 만들었다. 이를 본 사람들이 촬영 요청을 했고, 영화 촬영 후에는 전국적으로 이목을 끌게 됐다.
영국 와핑 프로젝트에서 얻은 영감"대표님은 원래 건물 방수처리 시공을 하셨어요. 카페나 레스토랑에 빈티지 콘셉트로 시공을 하고 공사 후 확인하러 가 빈티지 인테리어를 접하면서 관심을 가진 거죠. 대표님은 해외에도 나가 견문을 넓히기도 했고, 직원들도 대표님 취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어요."발로는 '와핑 프로젝트(wapping project)'에서 영감을 얻었다. 와핑 프로젝트는 1890년에 지어진 이후 이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수력발전소를 개조해 레스토랑·갤러리·서점·영화 상영관 등으로 활용하고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실내 인테리어는 옛 공장의 흔적을 그대로 볼 수 있게 꾸며져 있으며 내·외부 전시실에서는 현대 미술가들의 전시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와핑 프로젝트는 런던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이 영향으로 최대한 낡은 곳을 찾다가 이곳을 발견한 것이다.
복합문화공간 발로는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빈티지 가구를 전시하고 판매하는 곳, 촬영 장소인 스튜디오, 카페 발로가 그것이다. 발로의 문을 열면 처음 만나는 곳이 카페이고, 이곳에서 입장료를 대신해 차를 주문해야 복합문화공간에 들어갈 수 있다.
차를 마시고 실내를 구경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카페를 이용하는 사람은 찻값만 지불하면 된다. 차를 마시는 사람은 휴대전화로 내부를 촬영할 수 있다. 그러나 DSLR 카메라로 촬영 하려면 1만 원짜리 패스카드를 구입해야 한다. 구입 후에는 하루 동안 진열된 가구나 소품을 찍을 수 있다. 1시간당 5만 원인 프리미엄카드를 구입하면 다양한 분위기로 조성된 섹션 일곱 곳의 스튜디오 촬영이 가능하다.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려면 발로 전체를 대여해야하는데 대여료가 상당하다.
이곳 발로에 전국의 사진동호회가 일주일에 10여 팀이 온단다. 뮤직비디오나 영화 촬영 일정이 잡히면 이곳을 출입할 수 없으니, 홈페이지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지 내용을 보고 방문해야 헛걸음을 피할 수 있단다. 슈퍼주니어 등 벌써 10팀 이상의 촬영 스케줄이 잡혔단다.
"청년들과 협업, 인디밴드 공연 등 다양한 시도 하고파"
"원래는 가구 판매를 주로 했는데 주객이 바뀌어 현재는 카페와 스튜디오 역할이 더 크죠. 영역별로 구분을 지어서 많은 사람이 좀 더 편하게 장소를 이용할 수 있게 고민하고 있어요. 특히 가구는 유럽이나 미국, 동남아시아 등에서 수입하는데 가격대가 천차만별이에요. 작은 소품은 10만 원대도 있고, 비싼 건 1000만 원대도 있습니다. 가끔 빈티지를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구입하는 사람도 있지만 주로 카페나 레스토랑 등 상업공간에 인테리어용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요."두 달 전, 발로에서는 새로운 시도가 벌어졌다. 토요일 오후 인디밴드의 공연을 연 것이다.
"발로에서 가수들이 공연 동영상을 클립영상(clip video)으로 찍었어요. 우리 공간에서 이런 촬영이 가능하다면 우리도 문화공연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유명한 팀들보다 버스킹하는 팀들의 공연을 매주 또는 격주 토요일 오후에 한 시간씩 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로 공지하니까, 보러 오세요. 음료 한 잔 주문하면 공연도 볼 수 있어요."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려는 시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미 발로 안에는 디자인 업체나 자작나무로 만든 소품을 파는 가게가 입주해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에게 공간을 마련해주고, 이곳 복합문화공간을 풍성하게도 하자는 취지다.
"특히 청년에 관심이 많아요. 청년들과 협업해 일자리 창출도 하고 지역 경제를 살리는 데 작은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마지막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당부의 말이 있는지 물으니, 가구들을 아껴달라고 했다.
"가끔 가구를 험하게 다루거나 망가뜨리고 가는 사람이 있어요. 워낙 비싼 물건이다 보니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면 통제할 수밖에 없거든요. 많은 연예인이 방문한 스튜디오가 흔치 않은데 우리 지역에 이런 곳이 있으니까 좋잖아요.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 사진을 찍고 추억을 남기며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양보해 즐거운 곳으로 이용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