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지진참사 1주기가 한 달 남짓 남았다. 우리 부부는 그동안 고정적으로 배달하는 곳을 늘려왔다. 이제 한 달에 다섯 곳에 고정적으로 빵을 배달하고 있다.
그 외에도 사정에 따라 배달하는 곳이 있고 아내는 지금 인도에 가서 가정사에 중요한 일을 해결하느라 바쁘다. 그래서 혼자 일을 해내기가 쉽지 않다. 자전거를 잃어버렸다가 싼 가격에 중고를 샀다. 자전거를 타고 지진 피해 지역에 복구사항들을 살펴보고 있다.
아내의 스쿠터를 타고 빵을 배달해왔으나 아내가 친정어머니 집에 간 상태에서 혼자 배달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서둘다 보니 한 달 일이 더 빨라지고 있다. 이달에 배달할 고정적인 배달지에 어제까지 일을 마쳤다.
보육원 두 곳, 고아이면서 에이즈에 걸려 자체 수용시설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 학교 두 곳이다. 그동안 두 명에 학생을 새로운 네팔 한국 문화 센터 구성원으로 받아들였다. 공식적으로 등록은 하지 않았지만, 미래에 꿈나무를 키운다는 의미다.
네팔의 한 예술대학 학생들인데 지난달부터 두 학생에게 소액에 장학금을 전하고 있다. 두 학생은 시타 루발리(Sita Ruwali)와 서르밀라 타망(Sarmila Tamang)이다.
어제는 수업이 끝나고 함께 빵을 배달하러 갔다. 지난번 도서관을 지어주었던 누와 곳 절레소르 초등학교에 함께 배달을 간 후 두 번째다. 어제 배달을 간 곳은 네팔의 여성시인 빠리잣(Parijat)의 동상이 바라보는 곳에 있다.
가난한 사람과 여성의 권익을 위한 시(詩)를 많이 남긴 시인으로 해당 지역은 매우 오염이 심한 하천이 흐르고 있다. 아이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지난해 4월 25일 돌마 타망은 영국 유학 중 할아버지 장례를 치르기 위해 네팔로 돌아왔다가 랑탕에서 49제를 맞아 타망족의 전통에 따라 축제를 벌이던 때 지진이 발생해 아버지, 어머니, 어린 여동생을 잃었다. 낮에 그녀의 동생 치링 타망을 제과점에 불러 아래와 같은 인터뷰했다. 본지에도 몇 차례 기사를 게시했던 돌마 타망네 가족의 지진 이후 근황이다.
"이웃 중에는 쓸려간 마을 탓에 시신 수습 못 하기도"
오후에는 끼리띠푸르에 빵 배달을 하였다.
돌마 타망은 지금 스위스에서 공부하고 있고 수엠부에 황금사원에서 머물 당시 함께 만난 치링 타망과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이후 돌마 타망과도 페이스북을 통해 대화를 나누었다.
-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1남 4녀 중 돌마 타망은 둘째(22세)다."
- 돌마 타망씨는 현재 어디서 누구와 지내고 있나요? "스위스에 과거 같은 학교에서 공부했던 언니의 도움을 받아 머물며 일하고 공부하고 있음. 독일 어학 공부 중이다."
- 지진 전에 하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영국에서 공부 중이었다."
- 살았던 마을은 어디인가요? "랑탕 마을, 고다따벨라였다."
- 지진 당시 돌마 타망씨의 고향 마을 상황은 어땠나요? "일상적인 생활이었다."
- 부모님과 여동생은 집 안에서 사망했나요? "그렇다.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 다와(달이라는 뜻, 당시 14세)가 사망했다."
- 사망한 여동생은 당시 몇 살이었나요? "14세였다."
-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셨나요? "게스트 하우스를 하였고 어머니는 농사일을 주로 했다."
- 시신 수습은 되었나요? "우리 가족은 모두 수습했으나 이웃 중에는 쓰나미처럼 쓸려간 마을 탓에 수습을 못 한 경우도 있다."
- 고향 집은 수리가 된 상태인가요? "아직 전혀 복구되지 못하고 있다."
- 혹시 고향 집에 머무는 가족이 있나요? "없다."
- 돌마 타망씨는 카트만두에서 노숙 생활을 오래 했나요? "카트만두 수엠부 인근에 황금 사원에서 부지를 제공해주고 외국인 가이드연합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텐트를 지어주어 4~5개월 머물렀다."
- 살아남은 가족들은 어디서 생활하고 있나요? "1남 2녀는 수엠부 인근에 셋방에서 머물고 있고 돌마는 스위스에서 머물며 일과 학업을 계속 중이다."
- 생계는 어떻게 이어가고 있나요? "정부에서 준 사망위로금과 과거 부모님들이 남긴 일부 적립금, 현재 돌마 타망이 스위스에서 고학하며 보내주는 생활비로 지낸다."
- 가족이 가장 생각날 때는 언제라고 말하나요? "항상 생각이 난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 동생들은 고향에 가기도 싫다고 한다.
- <오마이뉴스> 인터뷰에 나온 피해 상황 외에 다른 추가적인 내용이 있나요? "마을 전체가 쓰나미처럼 쓸려 가버렸다. 지금은 랑탕 빌리지(Langtang Village, 3200m)를 떠나 강진곰파(Kangjin GambaGomba, 3800m)에 머물며 가끔 마을을 살피는 정도이며 복구는 전무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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