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라는 단어를 쓰고 보니 무겁고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 같다. 하지만 장애는 일상적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병들어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 중에 누구나 한번 혹은 지속적으로 장애를 겪게 된다. 통계에서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장애 원인중 88.9%가 후천적 질환이나 사고로 인해 발생한다. 장애가 내 자신의 일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하고 이를 위해 사회적 대비가 돼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장애인의 삶이란 '산다'의 의미보다 '살아낸다'는 생존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그리고 공동체 사회 생활을 하는 가장 기본 단계는 바로 초등학교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로 알려져 있고 특히 '교육'을 통해 사회적 지위가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시작인 초등학교는 중요하다.
또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사회적 지위 획득을 위해 더 좋은 교육을 시키려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 이유로 초등학교 편의시설을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살펴봤다. 그런데 최소한의 권리보장이 되지 않고 있어 놀라웠고 실망스러웠다. 교육이란 것이 개개인의 삶과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경제적·사회적·신체적 조건과 관계없이 동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첫 시작은 점자블럭이다. 점자블럭은 시각 장애인을 위한 길이다. 보기 좋으라고 설치한 것이 아닌 그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길'이다. 한 학교 교정의 노란 점자블럭 길은 현무암과 파릇한 잔디가 근사하다. 하지만 눈을 감고 점자블럭을 따라갈 수가 없다. 울퉁불퉁한 돌이며 잔디가 위험해 앞으로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학교는 앙징맞은 예쁜 꽃이 피어있는 작은 교정이다. 하지만 뭔가 이상해 보인다. 장애인 점자 블록이 설치된 출입구는 통행하지 못하도록 막아두었고 출입문 앞 점자블럭은 매트로 덮여 있다. 이 학교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학교에서 점자블럭은 유령취급을 당하며 매트로 덮여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점자블럭이 설치된 학교 진입로는 제대로 정비되어 있기 않았고, 심지어 많은 학교들이 공무용 차량을 주정차하면서 점자블럭은 무용지물이 돼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또는 용인하는 것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누군가가 말한다. 시각장애인이 이곳 학교를 이용하지 않으니 괜찮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학교는 원칙을 교육하는 곳이다. 누구나 편안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 누구나 당연하게 평등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는 곳이 학교다. 지식의 습득을 넘어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또는 공유되는 규범과 가치를 배우고 공동체의 일원인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공간인 것이다. 그러기에 교육공간에서는 누구에게도 차별 없는 사회가 구현돼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교육 공간 자체가 차별로 가득하고 또 우리 사회의 장애인 교육정도도 매우 낮다. 고등학교 이상인 비율이 43.4%에 불과해 전체 국민의 71.1%가 고등학교 이상인 것으로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장애인이 학교를 다니지 않았거나 중도에 그만둔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70.1%), '집에서 다니지 못하게 함'(13.0%), '심한 장애'(6.8%) 등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교육공간의 편의시설의 확충과 관리는 당연하고 장애인 의무교육에 대한 홍보와 적극적인 시행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심한 장애'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않거나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를 장애유형별로 보면 지적장애(49.5%), 안면장애(29.8%), 정신장애(26.3%) 등의 비중이 높아 이들 장애유형 교육에 대한 추가지원이 요구됨을 알 수 있다.
현재 다니고 있는 유치원 월 평균비용은 '무료'가 67.0%를 차지했으며, 뇌병변장애의 경우는 자부담 비율이 '1만~5만 원'(24.8%)과 '11만~15만 원'(14.7%)으로 다른 장애유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다. 또한 언어장애도 '6만~10만원'(100.0%)을 유치원 월 평균 비용으로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나 기본적인 유치원 교육비용 외에 장애특성 때문에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에 대해서는 국가가 어느 정도 지원해 줄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사람은 누구나 장애를 가지고 있다. 장애인 인권에 관심을 갖는 것은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장애인권이란 장애인을 배려하고, 그들에게 양보하고, 그들을 보호하고 예의를 지키자는 것이 아니다. 동등한 한 인간으로 인정을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서로의 출발선을 맞추기 위한 사회적 노력을 기울여야한다는 이야기다. 휠체어 사용자가 갈 수 없는 건물, 시각장애인을 고려하지 않는 안내물 등등 인간 존엄에 대한 침해로 정의될 수 있는 불합리한 사회구조가 개선돼야 한다.
우리 모두가 존엄과 가치를 가진 '사람'으로 사회참여는 물론 모든 것에서 동등하게 살 수 있는 그런 것들이 투쟁으로 쟁취해야 하는 것이 아닌 당연하게 인정이 되는 그런 사회에서 살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새전북 신문에 실립니다. 이 글을 쓴 강미현님은 건축사사무소 예감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