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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형색색의 줄리안, 은은한 향기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형형색색의 줄리안, 은은한 향기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 정현순

'킁킁~~~'

어디선가 은은하고 기분 좋은 향기가 난다. 향기를 쫓다가 거실 TV 앞에 있는 작은 줄리안이란 꽃 앞에 멈추었다. '요렇게 작은 꽃에서 이렇게 좋은 향기가 나다니.' 장미향 못지 않았다.

며칠 전 단골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다. 머리 손질을 하다 원장이 하는 말이, "세상에 이 뒤쪽도 전에는 웨이브가 두껍게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었는데 이젠 아니네요. 숨이 푹 죽었어요. 흰머리 나는 것은 문제도 안 돼요." 한다. 난 머리를 자르다 말고 뒤쪽을 만져 보았다. 내가 만져도 한주먹도 되지 않았다. 

앞서 운동을 끝내고 샤워를 한 뒤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내 뒷머리를 만지면서 "여기를 이렇게 살려줘요, 이렇게~~"하면서 그의 손으로 내 머리를 위쪽으로 올려준 적도 있었다. 나한테는 더 이상 손을 대지 말고 그대로 놔두란 부탁까지 하면서. 그때까지도 왜 그러는지 몰랐다. 헌데 미용실 원장이 그런 말을 하고 나니 그가 내 머리를 올려준 이유를 알게 됐다. 뒤에서 보기에도 심했던 모양이다.

젊은 시절에는 머리숱이 너무 많아 파마를 몇 번 하지 못했다. 파마를 하고 나면 머리가 말할 수 없이 부해 있어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여 파마를 하고 싶어도 못했다. 머릿결도 좋을 뿐더러 굵어서 파마도 잘 나오고 말도 잘 들었던 내 머리가 어느새 머릿결도 나빠지고 가늘어지고 점점 빠져 숱도 없어지고 있으니...

이러다 정말 가발 신세를 지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이제 겨우 흰머리가 만발한 것을 받아들였는데 말이다. "가발을 안 쓰면 그것도 다행이지요~~"하며 원장이 혼잣말처럼 하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검고 머리숱도 많다는 것에 적잖은 위로를 삼았는데, 이젠 그것도 먼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오래 전 어르신들의 흰머리를 보거나 머리숱이 없는 것을 봐도 그저 남의 이야기려니 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피해갈 수 없는 나의 현실로 하나하나 다가오고 있다. 그렇게 약간은 우울한 마음을 하고 미용실을 나섰다. 걸으면서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지' 세뇌를 시키듯 중얼거리면서.

시장에서 산 작은 꽃이 큰 위로가 되다

집으로 바로 가려다 특별히 살 것도 없는데 시장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봤다. 봄이라 그런지 꽃집 앞이었다. 사람들이 꽃 화분을 들고 고르고 있었다. 나도 그곳으로 들어가 꽃을 고르기 시작했다.

해마다 봄이면 한두 개씩 꽃을 샀다. 그런데 그날은 무려 여덟 개를 색색으로 사들고 왔다. 빨강, 노랑, 꽃분홍, 흰색, 보라 등을 들여다보니 어느새 기분이 좋아졌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에는 초록의 이파리만 있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이젠 활짝 꽃이 핀 게 더 좋은 걸 보면 나이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래. 쿨하게 받아들이자. 이렇게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거야. 늙어가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니깐.'

집에 와서 꽃을 진열해 놓으니 시장에서 본 것보다 더 예쁘고 기분이 더 좋아졌다. 그러다 문득 나만 좋아할 것이 아니라 딸아이 집에도 몇 개 갖다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기분 조금씩 나누어도 좋을 듯해서.

외출했다 돌아오거나, 아침에 일어나 그 꽃을 보니 기분이 꽤 괜찮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늙음의 변화도 받아들여지는 데 큰 도움이 되는 듯했다.


#작은 꽃의 큰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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