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보강: 24일 오후 8시 35분]여기, 질문이 하나 있다. "전국에 'H대학교 ㅊ학과'는 총 몇 개일까?"
그리고 여기, 또 다른 질문이 있다. "우리는 왜 저 질문을 마주하게 되었을까?"
지난 18일, 이재명 성남시장의 페이스북에 '한심한 대학생에 한심한 지도교수, 그리고 한심한 대학'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재명 시장이 "들은바"에 따르면, '상당수 대학생들이 이번 4.13 총선 당일에 MT에 간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이재명 시장은 본인이 "들은바"를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청년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오늘날 청년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라며 '황당한 반시민적 행태'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게시물은 3월 24일 기준, 약 8000개에 가까운 '좋아요'를 받고 1200여 회의 공유가 이루어졌다.
투표날 MT 가는 'H대 ㅊ과'? 제가 조사해봤습니다
이 글이 게시된 뒤, 몇몇 '한심한 대학생'들이 이재명 시장에게 반론을 제기했다.
이들은 이재명 시장이 말한 날짜가 통상적인 MT 일정과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4월 13일(수요일)은 평일 사이에 낀 날일 뿐만 아니라 4월 중하순에 치러지는 중간고사 기간 직전으로, 보통 주말을 끼고 시험 기간을 피해 MT 일정을 잡는 관행과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설령 이날 MT를 떠나는 대학이 있다고 한들, 이재명 시장이 함부로 '한심하다'고 비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관련기사 :
'한심한 대학생'이 이재명 시장님께 쓰는 편지)
이러한 비판에 침묵을 지키던 이재명 시장은 21일, 트위터를 통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재명 시장의 반박은 꽤나 단순했다. 실제로 투표일에 MT를 가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으며, 그중 하나가 바로 "H대학 ㅊ학과"라는 것이다. 심지어 "비판을 하려면 기본적 사실은 왜곡하지 말아야 합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정말 4월 13일에 MT를 가는 H대학의 ㅊ학과가 있을까? 대학정보공시 사이트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16년 현재, 우리나라에는 총 379개의 대학(전체 424개 대학 중 학부 과정 없이 대학원 과정만 있는 45개 대학원 대학 제외)이 존재한다.
그중 'H대학'이라고 호명될 수 있는 대학, 즉 ㅎ을 첫 글자의 초성으로 가지는 대학은 총 59개이다. 59개 H대학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ㅊ학과라고 호명될 수 있는 과의 유무를 조사한 결과는 아래와 같다.
우리나라에는 총 20개 대학 31개 학과의 "H대학 ㅊ학과"가 존재한다(한국폴리텍대학에 출판편집디자인전공이 있으나 직업훈련 과정이므로 제외했다. 혹시나 해서 한국폴리텍대학 행정부서 관계자에 문의해 보니, "4월 13일 학교 차원의 공식적인 MT 일정은 없다"고 답했다).
3월 22~24일, 총 3일에 걸쳐 해당 학과 재학생에게 직접 사실 확인을 요청하거나(한양대 체육학과), 학교 행정실 또는 학생지원팀에 문의(한영대학 치위생과, 한림성심대학교 치위생과)했다. 단과대학 사무실(한국교통대학의 철도대학에 속한 5개 학과)이나 해당 학과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그 외 20개 학과)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도 했으며, 해당 학과의 조교(한국외대의 2개 학과)나 교수(한서대학교 치위생학과)에게 직접 문의한 경우도 있다.
결과는 어땠을까? 모든 곳(20개 대학 31개 학과)으로부터 '우리 학과는 4월 13일에 MT를 떠나지 않는다' 혹은 '현재 MT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답변을 받았다.
4월 13일에 MT 가는 H대 ㅊ학과, 어디인가요
그렇다면 이재명 성남시장은 대체 무엇을 근거로 "H대학 ㅊ학과"가 4월 13일에 MT를 간다고 말한 것일까?
필자는 SNS를 통해 한 가지 흥미로운 가설을 제보받았다. 인터넷 검색창에 '4월 13일 MT'를 검색할 경우 한신대학교 특수'체육'학과가 지난 '2013년 4월 13일에 MT를 다녀왔다'는 내용의 블로그 글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이다.
취재한 결과를 바탕으로, 성남시청 시장비서실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필자가 "4월 13일 MT를 간다는 H대학 ㅊ학과가 없다"고 설명하자, 비서실 관계자는 "실제로 4월 13일에 MT를 가더라도, (대학 측에서) 이를 사실대로 답변할 경우 사회적 물의가 될 수 있으니 답변을 피하는 것이 아니겠나"는 의견을 제시했다. "H대학 ㅊ학과'의 실제 사례를 알고 있냐"는 질문에는 "트위터는 시장님 본인이 직접 관리하시기 때문에 시장님께 직접 여쭈어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분명, 비서실 관계자의 말처럼 대학 측이 '사회적인 물의'를 우려해 사실과 다른 답변을 내놓았을 수도 있다. 물론, 대부분은 기자가 '4월 13일 MT 일정이 잡혀 있느냐'고 묻는 것 자체를 굉장히 생소해 했다. 이 시장의 발언을 의식했다면 나올 수 없는 반응이다. 20개 대학 31개 학과가 모두 연기를 펼쳤다고 생각한다면 유감이다.
비서실 관계자의 말은 이재명 시장 측의 입장에서, 그의 발언에 동조하는 내용이었다. 필자의 취재 내용에 의심하는 뜻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그 비서실 관계자의 발언이 불쾌하다기보다 반가웠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필자가 59개의 H대학을 추리고, 그 안에서 31개의 ㅊ학과를 찾았던 것처럼, 비서실 관계자의 말에도 '합리적인 의심'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재명 시장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들은바'에 따라 '상당수 대학생들'을 투표일 당일에 MT에 가는 '한심한 대학생들'로 묘사한 이재명 시장은 '합리적인 의심'의 과정을 거쳤는가.
'한심한 대학생' 말고 '동등한 정치적 주체'로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20대/대학생 개새끼론'이 횡행하고 있다. '야당세가 강한 20대의 투표율이 저조하기 때문에, 여당이 계속해서 정권을 잡고 있다'는 주장이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SNS를 강타했던 '프랑스 대학생 투표율은 약 83%인데 우리나라 대학생 투표율은 36%이며 이 때문에 반값등록금이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사실과 다를 뿐만 아니라 많은 논리적 허점을 가진 주장이다.(관련 기사 :
"투표 좀 해" '꼰대질'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이재명 성남시장은 약 11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영향력 있는 페이스북 유저이자, 성남시의 행정수장이다. 그는 그의 페이스북에 '들은바'에 근거한 글을 남기기 전에 그 이야기가 '20대/대학생 개새끼론'에 오염된, 왜곡된 사실이 아닌지에 대한 합리적 의심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 트위터에 'H대학 ㅊ학과가 그렇다'는 글을 남기기 전에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매력적인 정치가이자 뛰어난 행정가라는 평을 받아왔다. 특히 대학생의 입장에서 중앙정부 및 보수 언론과 꾸준히 싸워가며 청년배당을 실시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왜곡된 사실관계에 근거하여 대학생을 '한심하다'고 매도하는 수준에 머물러있다면, 그는 결코 청년층의 지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대학생이 원하는, 나아가 청년이 원하는 정치인은 '자신을 동등한 정치적 주체로 바라보는' 정치인이지 '청년배당을 실시하지만 자신을 무시하는' 정치인은 아닐 테니까.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부탁한다. 정확하지 않은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대학생을 성급하게 한심하다고 매도했다면, 이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앞으로 청년/대학생의 삶에 더욱 관심을 가지며 더 좋은 정책으로 보답해달라. 이 시장이 잘못이 있다면 이를 시인하는, 멋진 정치인이자 행정가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해당 기사에 대한 이재명 성남시장의 반박 글 |
이재명 성남시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해당 기사를 링크한 후 이와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귀사가 조사했다는 그중에 선거일MT기획했던 학과 분명 있습니다. 선거는 이제 의무고(벌칙부여도 함), 참여가 의무인 행사 만들어 투표에 장애주는거 학생 직장 가릴거없이 다 문제입니다. 투표해야 정치에서 존중되는것도 사실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무엇을 원하십니까? 지금은 바뀌었는지 몰라도 이중에 MT기획한 곳 분명히 있습니다. 본인들이 물어봐서 아니라고 들으면 그게 유일한 진실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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