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를 떠올리면 검은 연기가 가득 찬 작은 유리병 하나가 떠오른다. 유리병 안에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는 앞도 제대로 못 보고, 숨도 못 쉴 것이다. 아니, 몇 번 숨을 토해내다 시간이 지나면 유리병 너머의 세상은 보지 못하고 그렇게 세상을 떠날 것이다. 지옥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둠 정중앙이 지옥이다. 그 어둠 속에 작은 빛을 투과시키려 하는 청년이 있다. 최게바라 기획사 대표 최윤현씨를 만나보자.
- 최게바라 기획사에 대해서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크게 3가지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첫 번째, 청년들과 함께 하는 '또라이 포럼'. 너의 색깔과 끼를 눈치 보지 말고 맘껏 풀도록 자리를 만들어주는 거죠. 두 번째는 사회의 아픔, 이슈를 문화적으로 풀어내는 행사. 3.1절에는 '독립군과 친일파의 딱지치기 프로젝트'를 해요. 4·16, 5·18 때는 또 다른 이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요. 세 번째는 통일. 현재 2만8000명의 새터민이 있는데 북한에서 온 친구들과 남한의 친구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남북청년한잔'이 있어요. 계속 분단돼 있는 상황에서 통일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되게 특이한 분 같은데, 주변에선 뭐라고 하시나요?"제가 대학 졸업 때 선배한테 남미 여행 간다고 얘기했거든요. 남미여행을 간다는 건 제 꿈이었는데 선배가 그 얘기를 듣더니 처음 한 말이 '미친놈'이었어요. 처음엔 기분 나빴어요. 하지만 갔다 오니 제 삶이 많이 바뀌었어요. 사회가 너무 획일화돼 있어서 특이하게 비칠 수 있겠다. 그래서 이상한 사람들을 모아서 같이 놀아야겠다 해서 만든 게 '또라이 포럼'이고, 또라이 10만명이 있으면 사회가 건강해지지 않을까 해서 '또라이 10만 양병설'을 주장하고 있어요."
- 획일화된 한국교육제도가 몸에 맞지 않았을 것 같아요. "대학에 가서 공부 하나도 안 했어요. 그때는 사회에 더 재밌는 게 많았던 거죠. 서강대 영문과 들어갔는데 제일 후회하는 게 학교 그만두지 못한 거…. 그냥 별로 다닐 이유를 못 느끼며 살다가 4학년 때 '이건 진짜 아니다' 했는데 용기를 못 낸 거죠. 졸업장이 저한테는 종이 한 장밖에 안 됐어요. 제가 배우고 싶었던 건 사회나 사람에 대한 이해력, 공감능력, 통찰력이었는데 대학에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굉장히 크게 실망했어요."
- 또라이로 살면서도 신분상승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저도 기자님께 질문해도 돼요? 신분상승 해야 되는 이유가 뭔지…. 우리는 당연히 신분상승을 해야 돼서 좋은 대학에 가고, 사시·행시를 보잖아요. 저는 사실 그런 패러다임과는 완전히 다르죠. 신분상승이 아니라 나답게 행복한 게 최고라고 생각해요. 그냥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시대에 대항하기 위한 칼이 '똘기'인 거죠."
- 남북청년들이 모이는 자리도 있던데, 거기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최근에 '남북청년한잔' 했었거든요. 그중 엄청 얌전해 보이는 북에서 온 여자애였는데, 이런 모임 자체가 작은 통일이라고 생각한다며 고향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또 노래도 한 곡 부르더라고요. 노래 내용이 인생 힘들어도 잘 견디라는 내용이었어요. 그 노래 듣는데 다들 눈물이 흐르는 거예요. 전혀 연출하지 않은 감동적인 순간이었죠. 우리도 답가로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를 불러줬어요. 이 한순간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힘든 순간도 버틸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 앞으로 최게바라 기획사가 벌일 가장 큰 사건은 뭐가 있을까요?"쿠바에서 거리페스티벌을 열고 싶어요. 늘 외국에서 아티스트가 오잖아요. 우리가 직접, 그것도 체게바라가 활동했던 남미 쿠바로 최게바라 기획사 직원들이 가는 거죠. 엄청난 도전이겠다…. 또 서울 신촌에 다양한 색깔의 문화공간 10개를 만들고 싶어요. 과거 대한민국 청년문화의 핵심이었던 신촌을 재건하고 싶은 거예요. 이제 통일이 되면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렸으니 개성이나 평양에서도 또 열리겠죠? 올림픽이 열렸을 때 개막식의 총연출을 맡고 싶어요."
- 최윤현의 자기다움이란 무엇일까요?"좋아하는 것은 심장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걸로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어떤 숫자를 규격화시키는 데 설레지 않아요. 오히려 기존의 것을 뒤틀거나 파괴해서 새로운 형식을 만드는 데 설렘을 느껴요. 조금 정리를 해보면,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보면서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는 게 저인 것 같아요.
제가 군대에서 놓지 않았던 두 가지 말이 있어요. 하나는 '비관론자는 기회 속에 숨겨진 수많은 문제들을 발견하고, 낙관론자는 문제 속에 숨겨진 수많은 기회들을 발견한다'라는 말이었고요. 또 하나는 '실패하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이유를 생각하고, 성공하는 사람들은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다'였어요. 이 두 가지만 놓치지 않고 저답게 살고 싶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4월호에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