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터넷에서 두 식판이 화제가 됐다. 해당 게시물에는 각각 군대밥·교도소밥이라고 알려진 식판이 나열돼 있었다. 이 사진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큰 반응을 얻자 국방부는 비교 사진 속 식판은 진짜 군대밥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국방부의 해명이 나온 직후 군 복무 경험자들은 반발했다. 국방부는 "장병들의 1인당 1일 급식비는 7334원, 이에 반해 교도소 급식은 4093원으로 장병의 56% 수준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교도소에 있는 범죄자보다 군 복무하는 사람들이 더 비싸게 먹으니 더 좋다는 취지의 해명인 것일까. 하지만, 정말 그럴까.
지난 2015년 7월에 전역한 나도 이러한 국방부의 해명에 분노가 일었다. 스물한두 살 정도의 청년들이 징병돼 군 복무를 하면서 먹는 식단이 (사진의 진위 여부를 떠나) '교도소'에서 나온다는 식단과 비교되는 현실에서 개선책을 찾는 게 아니라 '교도소 식단보다는 좋다'는 식의 해명은 과연 옳은 걸까. 그래서 나는 지난 1년 9개월간 내가 경험한 군 급식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신병 들어올 때마다 밥맛이 왜 이러냐?"
병사들에게 식사 시간은 늘 기대되는 시간이다. 특히 고된 훈련이나 일과를 끝낸 후에는 상당히 배가 고프다. 게다가 병사들의 경우에는 하루 식사의 질이 그날의 컨디션을 결정한다. 오로지 군대에서 주는 밥만 먹고 해결해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식사가 엉망인 날에는 그날의 컨디션, 그야말로 최악이다.
행정병으로 복무했던 나는 사수와 함께 늦은 시간까지 업무를 하기 일쑤였다. 밀려 있는 행정 업무로 인해 밥 먹는 시간을 제때 맞추기란 어려웠다. 그날도 점심 시간이 훨씬 넘어서야 업무가 끝났다. 매우 중요한 업무인지라 사수 역시 평상시와 다르게 자리를 비우지 않아 우리는 함께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아갔다.
다행히도 음식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사수가 숟가락으로 밥을 뜨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자세히 살펴보니 밥에 물이 너무 많아 거의 죽처럼 흐물흐물해졌기 때문이었다. 짜증이 난 사수는 무슨 일인지 취사병에게 물었다. 그러자 취사병은 별 고민 없이 "오늘 취사병으로 신병이 새로 들어왔다"라고만 답했다. 그러자 사수는 "식사가 이런 것과 신병이 취사병으로 온 것이 무슨 상관이냐"라면서 다시 되물었다.
"신병이 밥을 지으니까 그렇지. 새로 들어온 애라서 그래." 밥이 거의 죽처럼 된 것은 이제 전입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취사병 신병이 밥을 지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사실 수백 인분의 밥을 지으려면 상당한 노동력과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그 때문에 처음 밥을 짓는 신병으로서는 밥물 양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군대다. 그 때문에 약 1주일이 넘도록 수백 명의 군인들은 죽 같은 밥을 먹어야 했다. 이로 인해 병사들은 상당한 불만을 가졌고, 밥을 절반도 먹지 않고 버리는 병사들이 속출했다.
식사를 절반도 먹지 않고 버린다면 어떻게 배고픔을 견뎠을까. 답은 간단하다. 충성마트 (부대 내에 만들어진 군인 마트, 속칭 PX)에 가서 라면이나 냉동식품을 자기 돈으로 사 먹어야 했다. 사기 저하는 물론이다. 나라를 지키러 온 젊은이들에게 질 낮은 식사를 제공해서 이런 사태까지 발생한 것이다.
"병사들이 나라에 충성 않고 충성마트에 충성해?"
한번은 식사가 매우 형편 없이 나온 날이 있었다. 대부분의 병사들이 질색하는 '눅눅한' 생선튀김이나 질긴 오징어볶음, 취사병 신병이 들어왔기에 또 '죽 같은' 밥이 나온 것이다. 무더운 여름날이기에 병사들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밥을 도저히 먹을 수 없었던 병사들은 대부분 밥을 잔반통에 버렸다.
그때 한 간부가 식사를 버리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누군가 했더니 내가 속한 대대와 붙어있는 모 여단의 A주임원사였다. 평소에도 대대에 온갖 사역을 떠넘기는 A주임원사는 대대의 병사들에게 별로 평이 좋지 못한 간부였다.
그런 A주임원사가 병사들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식사를 포기하고 잔반 처리를 하자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한소리했다.
"병사들이 나라에 충성하지 않고, 충성마트에 충성을 해?!" 그러면서 그는 "충성마트에 월급을 갖다 바치는데, 이게 충성마트에 충성하는 거지!"라고 일갈한 후 여단본부로 올라갔다. 그 간부의 말을 들은 대부분의 병사는 무시하거나 혹은 분노했다.
병사 중 가장 높은 계급인 병장이 받았던 월급은 2014년도 기준으로 14만9000원. 즉, 15만 원도 되지 않은 매우 적은 월급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사실상 강제적으로 들게 만든 군인적금 때문에 실수령액은 훨씬 적어진다. 이렇게 적은 월급을 가진 병사들이 월급을 털어가면서 PX에 가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막말'이었다.
이후에 훈련이 있었다. 야외에서 행하는 고된 훈련이었기에 병사들은 상당히 배가 고팠다. 또다시 형편없는 식사가 나왔지만, PX도 없고, 너무 배가 고팠기에 병사들은 억지로라도 먹어댔다. 먹지 않으면 몸이 버티질 못하기에 그랬다. 그러자 그 광경을 지켜보던 A원사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주옥같은 어록을 남겼다.
"거봐라! PX가 없으니까 병사들이 밥을 잘 먹네! 충성마트 같은 건 없애 버려야 해!" 이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어이를 상실했다. 병사들이 죽 같은 밥을 먹는 이유는 그 식사가 맛있어서가 아니다. 정말로 먹을 것은 없고 배는 너무도 고파서 할 수 없이 억지로 먹는 것이었다. 그런 모습을 고위간부인 A원사는 흐뭇하게 보는 것이다.
형편없는 군대 식사의 질을 개선하는 건 생각하지 않고, PX가 문제라는 군 간부의 인식. 대한민국 군대가 왜 많은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지 군대에서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취사병만으로 식당을 운영한다?
형편없는 식사 문제를 두고 단순히 취사병만 탓할 수는 없다. 부대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내가 있던 부대의 경우, 고작 8명 정도의 취사병이 700~800명의 식사를 담당했다. 오히려 취사병들은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면서 욕은 욕대로 먹는' 불쌍한 이들이다. 실제로 취사병들 상당수가 식사 준비 도중 칼에 베이거나 기름에 화상을 입어 외진을 가는 경우도 많이 봤다.
우리 부대는 민간 조리원이 있다지만 1명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취사병들이 만들기 버거운 반찬을 만들기에도 바쁘다. 조리 부사관도 있다지만 그 역시 별도의 업무가 있어 취사병들이 만드는 식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리하기 힘들다.
문제는 구조다. 취사병이 입대 전 숙련된 경험이 있다 해도 700명이 넘는 이의 식사를 실수 없이 준비하기 위해서는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그러다가 축적된 경험으로 제 역할을 할 때가 되면 그들은 전역한다. 그리고 다시 그 뒤에 또다시 경험이 미숙한 신병이 들어온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형편없는 식사의 반복이 부대 내 취사장에서 일어나는 게다.
처음부터 숙련된 취사병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군대 내의 형편없는 식사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그러면 어떤 구조 개선이 필요할까? 우선은 병(兵)들로 이뤄진 취사병 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 숙련되면 전역하는 병사들로만 취사병을 구성하지 말고 민간 조리원을 대폭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리부사관도 있는데 어째서 민간조리원일까? 조리부사관들은 군인 신분이기 때문에 상급자에게 압력을 받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항의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민간조리원은 민간인이기에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상대적으로 항의하기 수월하다. 게다가 민간조리원들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요리 경력이 상당한 이들로 구성돼 있다. 그 때문에 기존의 취사병들에 비해서 질이 좋은 식사를 기대할 수 있다.
직업 군인인 간부들과 다르게, 의무복무 중인 병사들에게 한 끼 식사는 매우 중요하다. 밖에 나가서 매식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부대서 나오는 밥이 그들 식사의 전부다. 그러다 보니 그날 나오는 밥이 어떠냐에 따라 군 복무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하고, 반대로 더욱 가중되기도 한다. 통제와 억압된 환경에서 병사들에게 식사는 단순한 한 끼, 그 이상의 존재인 것이다.
러시아 '포템킨 전함 반란사건'을 잊지 말아야
군 복무 중 받았던 정훈교육이 생각난다. 당시 정훈장교는 식사 보급 문제와 관련해 늘 중공군의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중공군은 보급 체계가 엉망이기에 늘 생쌀과 감자만을 먹었다"라면서 비웃곤 했다. 하지만 중공군의 열악한 식사만 비웃을 뿐, 대한민국 병사들이 오늘날 먹고 있는 식사의 형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충성심은 세뇌와 같은 정신 개조와 전체주의적인 억압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맛없는 식사를 강제로 병사들에게 먹인다고 충성심은 우러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반발심만 생길 뿐이다. 군대에서 준 급식으로 인해 발생한 역사적 사건도 많았다. 대표적 사건 중 하나가 1905년 러시아 해군에서 발생한 '포템킨 전함 반란사건'이다.
1905년, 가혹한 환경에서 복무하던 러시아 해군들에게 어느 날 썩은 고기가 식사로 제공됐다. 이에 병사들은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역겨운 고기를 내던지며 항의했다. 그러자 장교들은 '식초에 절여서 먹으면 된다'며 식사를 명령했다. 격분한 병사들이 들고 일어나 반발했다. 그러자 당황한 장교들은 반발하는 병사 중 일부를 총살시켜서 무마하려고 했다.
그러자 침묵하던 700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반란을 일으켰다.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 '러시아 포템킨 전함 반란사건'의 정황이다. 물론 이후 병사들은 모두 진압당했지만, 이 사건은 이후 러시아에 뼈아픈 교훈으로 남았다. 왜 그랬을까. 러시아 제국이 붕괴할 당시, 지킬 가치가 없는 나라를 군인들조차 외면해 버린 이유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군에 있는 청년들은 조국에 충성하기 위해 누구처럼 회피하지 않고 입대한 사람들이다. 그런 애국자들에게 국가는 어떤 예우를 해야 할까. 병사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로 싸우고, 국가는 그러한 병사를 위해 더 좋은 식사와 생활 수준 보장을 위해 노력하는 게 마땅한 일 아닐까.
왜 병사들이 유일하게 먹을 밥을 거부하는지,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무조건 비난만 하던 A주임원사의 태도는 지금 생각해봐도 섭섭하기 짝이 없다. 나는 국방부가 '식사가 교도소보다 좋다'는 식의 해명보다, 정말 문제가 뭔가를 생각하고 근본 원인을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여주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부대 간부 식당과 달리 사병 식당에서는 죽 같은 밥과 비린내 나는 생선 음식이 나온다면, 그런 군대에서 어느 병사가 목숨을 걸고 싸울 의지를 갖겠는가. 그러니 군대 전역한 이들이 이번에 내놓은 국방부 급식 관련 해명에 더 분개하는 것 아닐까.
"청년들은 조국에 청춘을 바치러 왔다. 그에 걸맞게 예우해 달라."이것이 선배 전역자로서 지금 고생하는 후배 병사들을 위해 하고 싶었던 말이다. 병사도 사람으로 예우해 달라. 그들은 모두 대우받아야 할 '사람'임을 잊지 말아 달라.
덧붙이는 글 | 기사 사진 속 부대와 기사 속에 언급된 부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