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6 총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
더불어민주당이 그랬던 것처럼, 4월 총선을 앞두고 실시된 새누리당 공천에서도 내홍이 일어났다. '진박'(진실한 친박)이라 불리는 이들이 대거 후보자 자격을 얻었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예컨대 비박계인 안상수, 이재오, 주호영, 진영 의원 등이 공천에서 배제되었고, 그들을 포함해 현역의원 몇 명이 줄지어 탈당계를 제출했다.
그중에는 새누리당 원내대표이던 시절 국회법 개정안의 상정을 거부하고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를 한다고 낙인 찍혀, 사실상 지역구에 유폐를 당하다시피 했던 유승민 의원의 이름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당에서 유승민의 손발을 자르고 있다'고 할 정도로 비박계, 특히 유승민 의원의 라인으로 칭해지는 이들에 대한 사실상의 공천 숙청이 벌어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유승민 의원의 공천은 계속 보류되기만 했다. 마치 기업에서 미운털이 박힌 직원을 해고하지 않고 알아서 퇴사하도록, 아무것도 없는 부서로 보내버리는 권고사직처럼 유승민은 사실상 당에서 버려진 것이다.
'무소속'이 된 '언더독'
24일부터 일어난 김무성 대표의 이른바 '옥새 투쟁' 이후로 결국 6개 지역구 중 3개 지역구만 무공천이 선언됐다. 그리고 귀추가 주목되었던 유승민의 행보는 결국 '무소속'이었다. 흰옷을 입고 지지자들과 함께하는 유승민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은 놀란 기색을 금치 못했는데, '원내대표 유승민' 일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 당선 후 복당 예정이라고 했지만, 그가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처럼 환대를 받을 것이라 기대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게다가 새누리당을 탈당한 이들 사이에서도 '비박계 신당'에 대한 말들이 나오고, 여기서도 유승민 의원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쉽게 판단하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유승민은 박근혜 대통령에 의한 일종의 정치적 희생양처럼 보인다. 물론 박근혜와 유승민 사이에 각자 나름의 정치적 계산이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 절대 부정할 수 없지만, 박 대통령의 유승민 찍어내기는 결과적으로 유승민으로 하여금 언더독, 혹은 순교자 같은 이미지를 갖게 만들었다.
이는 어떻게 보면 박근혜라는 일종의 실권자 중심으로 돌아가던 '암묵적 룰'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 자신의 파벌을 끔찍하게 챙기는 대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심각할 정도로 배타적인 박 대통령의 성격이 도리어 악재로 작용한 것이다. 그 결과가 유승민의 부상이고 김무성 대표의 '옥새 투쟁'으로 나타났다.
새누리당의 성격이 이 사태의 원인이다이런 충격적인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게 된 데에는 새누리당이 일종의 이념 정당이라기 보다는 유력자 중심으로 지지자들이 모인 형태의 정당이기 때문이라는 결정적 이유가 존재한다. '진박'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배경 또한 박근혜라는 유력자가 있고 그를 중심으로 지지자들이 모여 '파벌'을 형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어느 정당이나 정치조직 모두 유력자와 그 지지자라는 파벌이 형성되게 마련이지만 새누리당은 그러한 현상이 심한 편이다. 당 내의 스펙트럼이 자유(지상)주의자부터 권위주의자(Authoritarian), 심지어는 네오-파시스트(Neo-Fascist)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다양한 이념을 가진 이들이 모여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당 내 유력자들이 그들을 자신의 세력으로 만들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회창이 그랬고, 이명박이 그랬고, 박근혜 또한 그랬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파벌인 '친박'을 '진실한 사람들'이라고 칭하기도 했을 정도로, 파벌정치를 매우 잘 실천하고 있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지지와 향수가 당 내에 꽤 강한 것도 이러한 파벌을 만드는데 데 큰 도움을 줬다.
새누리당의 파벌정치를 설명하는 후원주의 개념
정치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파벌정치를 설명하는 '후원주의(Clientelism)' 라는 개념이 있다. 이 개념은 보호자(Patron)과 피보호자(Client) 간의 관계를 상정하는데, 보호자는 피보호자에게 보호를, 피보호자는 보호자에게 충성을 제공하는 일종의 묵시적 신뢰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아마 정치적 관계에서 보호자의 보호는 자신의 그룹 안에 있는 피보호자에게 공천을 주거나 권력 일부를 나누어 주는 것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더 강해져서 보호자와 피보호자가 서로 전적으로 의존하는 '정서적 유대관계'로 발전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이는 상호 간 신뢰를 넘어 공동체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면서 나타나는데, 흔히 이야기하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여기에 잘 부합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후원주의적 정치 문화는 권력자, 즉 보호자가 자신의 정치적 능력이 아닌 후원자, 즉 피보호자의 후원과 충성을 기반으로 권력을 획득한다는 특징 때문에, 필연적으로 '시민 문화의 미성숙'과 관련된다.
당사자가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카리스마나 정통성을 가진 사람의 파벌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표를 준다는 것은, 결국 그 사회 내 유권자들의 시민 의식이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개념은 새누리당에 정말 잘 들어 맞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진박' 들에게 권력을 나누어줬고, 그들 중 많은 수가 공천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경쟁적으로 자신이 박 대통령이 말하는 '진실한 사람'임을 끊임없이 어필할 것이고(사실 지금도 어필하고 있고), 이번에도 박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그들에게 표를 줄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이 가진 카리스마와 (박 대통령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의 아버지인 박정희를 계승한다는 일종의 정치적 정통성이 '박근혜의 사람'이라는 매력적인 이미지를 먼저 보여주기 때문이다. 당이나 파벌이 무슨 정책을 내세우든 그건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정치학에서는 '복고적 정통성(Backward Legitimacy)'라고 하는데, 이는 정치인이 과거의 계승을 주장하며 유권자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그것을 통해 일종의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한다고 보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것은 선진적이고 민주적인 정치적 상황은 아니다. 애초에 후원주의와 복고적 정통성 모두 유권자가 정치인의 정책을 보고 투표하기보다는 유력자나 과거의 향수 등 직접적이지 않은 요인에 의해 투표하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다. 즉 시민의식이 부재하다는 것과 정치권은 그것을 조장하고 이용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파벌정치의 한계, 새누리당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그런데 파벌정치는 이번 새누리당 공천 파동 같은, 내홍에 필연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당장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를 사퇴하게 되는 맥락에서, 유승민의 지지자들이 오히려 결집하게 되었고 '진박' 이 아닌, 즉 '진실한 사람'으로 분류되지 않는 이들 또한 진박과 더욱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리고 작금의 사태가 일어나며, 파장이 상상 이상으로 커지게 된 것이다.
즉 며칠 동안 새누리당 안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그를 중심으로 한 '진박'이라는 파벌, 그리고 파벌정치의 배타성이 만들어 낸, '자충수'라고 밖에 볼 수밖에 없다.
경우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84년 한국시리즈에서 어깨의 인대가 두 개 끊어질 정도의 투혼을 보여준 최동원 선수를, 선수협 창설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트레이드를 통해 내친 롯데 자이언츠가 엄청난 비판을 받게 된 것도 이와 비슷하다. 롯데가 수많은 팬들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하는 계기를 만든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 '진박'은 유승민과 친박이 아닌 이들의 등을 돌리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텃밭에서 '옥새 파동' 이라는 역풍을 맞았고 지지자들은 서서히 떠나고 있다. 이제 새누리당에게 "마, 한 번 해 보입시더!"(최동원 선수가 84년 7차전에서 다섯 차례 등판했을 때 감독에게 했던 말) 라는 말이 통할지 모르겠다. 설사 이번에 통한다 해도 그것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