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ㄱ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 ㄴ씨는 지난해 3월 아이의 이름과 '녹색어머니회' 교통봉사 날짜가 적힌 소위 당번표를 받았다. 녹색어머니회 가입 신청은 물론 교통봉사를 자원한 적도 없었다. ㄴ씨가 항의하자 학교는 얼마 뒤 ㄴ씨 아이의 이름만 빠져있는 교통봉사 당번표를 다시 보냈다.
올해 3월 학교는 다시 아이 이름이 적힌 '녹색어머니회' 교통봉사 일정표를 보냈다. 다시 항의하려는 그를 말린 것은 "그냥 하면 안 되느냐"는 아이의 한 마디였다.
경기 지역은 물론 전국의 일부 학교에서 신청자가 없다는 이유로 전교생 학부모에게 의무적으로 녹색어머니회 교통봉사를 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학부모 동원'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학부모들이 회원의 주를 이루는 누리집의 육아 카페 게시판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하소연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갓난쟁이 동생 업고, '녹색 알바'도'여섯 살 동생 만화 틀어주고 밥 차려놓고 집에 두고 나가서 했어요. 빠지고 싶었는데 날짜 확인 전화에 문자도 오고 안 할 수가 없었어요. 하루는 아이 혼자 두고 하루는 남편이 반차 쓰고 했어요. 둘째 때문에 아침에 곤란하다고 하니 누군 둘째 없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ID나*나)' '저희 아이 학교는 알바를 사든, 아이 아빠나 조부모님이 하시든, 아이 유모차에 태우거나 갓난쟁이는 업고 그렇게 하시더라구요(ID발*****6)' 전교생 학부모가 의무적으로 녹색어머니회 교통 봉사에 참여하다보니 개인 사정 등의 예외는 인정되지 않는다. 부모와 조부모가 할 수 없다면 '녹색 알바'를 써야한다는 이야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봉사를 빌미로 사실상 강제 할당식으로 운영되는 것.
각 학교들이 전교생 학부모에게 녹색어머니회 교통 봉사를 강제하는 것은 신청자를 찾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가 어려 녹색어머니회를 못한다고 하니 교실에 데려다 놓고 교통봉사를 하면 봐주겠다고 하는 교사(ID햇**맘)', '며칠동안 녹색어머니회 신청 부탁 알림장을 적어 보내다가 일일이 학부모에게 전화를 건다는 담임교사(ID k*******7)'의 이야기까지.
봉사를 자처하고 나선 학부모는 많지 않은데 학교가 꾸려야 할 학부모회 성원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는 '학부모회 활동을 하는 사람만 고생이니 강제로라도 전부 하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녹색어머니회 학부모 강제 '법적근거 없다'경기도수원교육지원청은 심각성을 인식하고 지난 3월 '학교 학부모회 녹색어머니회 운영 관련 주의사항 알림'이라는 공문을 보내 "녹색어머니회 관련 학부모의 교통봉사 및 녹색어머니 운영과 관련한 법률이 규정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이를 학부모에게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는 만큼 학부모의 자의적 가입을 유도하고 다양한 조직을 활용해 통학로 안전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덧붙여 학부모의 동의 없이 녹색어머니회에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제출하는 개인정보보호법 17조 위반 사항 발생으로 민원이 발생하는 만큼 반드시 학부모 동의를 받아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교육청 마을교육공동체기획단 담당자는 "전체 학부모가 녹색어머니회에 의무적으로 참여해 활동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면서 "강제로 운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통학로 교통 안전 위해 유관기관 협력 필요통학로 교통안전을 위해 녹색어머니회의 교통봉사는 꼭 필요하지만 신청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학교들의 고민은 크다. 경기의 한 초등학교는 올해 학교 옆 중학교에 협조를 요청해 희망자를 중심으로 교통봉사 신청을 받고 이들에게 봉사시간을 인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물론 봉사활동을 하는 중학생들의 안전문제 등에 대해 대비책도 마련하고 있다.
경기지방경찰청은 3월부터 등하굣길 안전 활동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를 시행 중이다. 오전 시간 관내 경찰들을 초등학교에 배치해 어린이 교통사고 예방활동 등을 진행한다.
경기지방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청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으로 신청프로그램을 통해 근무를 자원한 경찰이 초등학교 등굣길 안전지도를 한 뒤 오전 10시까지 출근하고 있다"면서 "도교육청 등에 협조공문은 이미 보냈다. 학교 앞에서 근무를 서고 있는 경찰들에게 등하굣길 교통지도를 요구하면 협조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윤수 전교조 경기지부 사무처장은 "교사와 학부모가 만나 1년 학급 운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학부모총회가 교사는 학부모회 회원 가입 영업을 하고 학부모는 서로 눈치만 보는 비교육적인 날이 되어버렸다"면서 "학부모들을 어머니폴리스, 녹색어머니회 등을 위한 도구화 할 것이 아니라 도교육청과 학교 관리자들이 지역 유관기관 등과 협력을 통한 해법을 모색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교육희망> http://news.eduhop.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