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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지금껏 여러 선거에 참여했지만, 선거철만 되면 기묘함을 느낀다. 평소엔 문자 한 통 없었던 사람이 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문자를 보내오고, 텔레비전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사람이 눈앞에서 명함을 돌리고 있으니 말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흙수저라 불리는 비루한 인생이 권력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맛볼 수 있다니! 아이러니하다.

나와 같은 유권자들이 선거철에만 도래하는 기묘한 아이러니의 충격을 맛보고 있을 때, 선거에 출마하는 각 후보자들은 어떻게 하면 유권자들의 표를 얻을 수 있을까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것이다. 매일 출퇴근 시간에 명함을 돌리며 인사를 하면 될까, 전통시장에 찾아가서 '먹방'을 찍으면 될까, 문자를 수천수백 통 보내면 될까 하고 말이다.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유권자의 한 표는 매우 큰 힘을 행사할 수 있지만, 한 표만으로 선거에서 이길 수는 없다. 때문에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읽으려 애쓴다. 이를 읽지 못하면 선거운동기간 내내 헛발질만 하다 낙선하고 만다. 표심을 알기 위해 안달하고 있을 후보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 출간됐다. 바로 <표심의 역습>(책담, 2016)이다.

<표심의 역습>은 '새로 그리는 대한민국 유권자 지도'라는 주제로 내일신문사와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팀이 기획하고 한국리서치가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쓰였다. 한국 정치 지형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네 가지 키워드인 세대, 지역, 계층, 이념을 매개로 전체적인 한국 유권자 지도를 그려내고 있다. 세간에 통용되는 기존의 통념과 다른 점이 많아 흥미롭다.

정치꾼이 문제다

 <표심의 역습>, 책표지
<표심의 역습>, 책표지 ⓒ 책담
기존의 통념과 다른 부분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역주의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한국의 정치지형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지역주의다.

예컨대 영남은 새누리당의 텃밭이며, 호남은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이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혹자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은 영호남의 지역주의 때문이라고 힐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표심의 역습>은 이를 부정한다.

<표심의 역습>은 '지역주의의 원인에 대한 지역 유권자들의 인식'에 관한 여론조사(본문 125쪽)를 실시했다. 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역 유권자들은 지역주의의 원인을 '정치지도자들의 지역감정 조장'으로 꼽았다.

다른 항목인 지역 간의 경제적 격차, 특정 지역민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 공직 인사에서 특정 지역에 대한 차별 혹은 특혜 등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가장 쉬운 공식이 바로 '네트워크'에 기대는 것이다. 예컨대 해당 지역에 살지도 않으면서 선거철만 되면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OO의 아들'이라 칭하는 것을 보라. 혈연, 학연, 지연 등 온갖 네트워크를 통해 선거 운동을 하는 것은 이제 기본 중의 기본이다. 각 지역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면면만 봐도 그 지역 출신이 아닌 경우는 드물다. 요컨대 지역주의는 유권자의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치인의 필요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의 일을 생각한다"고 영국의 경제학자 콜린 클라크는 말했다. 이 말에 비추어볼 때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내가 보기에 한국 정치인 다수는 정치꾼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정책으로 유권자를 설득하는 것이 아무리 지난한 일이라 하지만, 선거의 당선을 위해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것이 과연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라 할 수 있는가. 지역주의에 호응하는 유권자의 문제도 분명 존재하지만, 지역주의를 정치공학적으로 이용하는 정치꾼이 더 문제다.

정당정치의 부재

또 놀라웠던 것은 한국 유권자들의 70% 정도가 지지정당이 없다는 것이었다. 여타의 여론조사를 보면 어떤 법칙이 있는 것 마냥 유권자들의 지지정당 비율이 정해져 있어 보였는데 말이다. <표심의 역습>에 따르면 이는 여론조사 방법의 문제에서 발생한다. 응답자는 "주어진 응답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지지정당이 없다'는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면 응답자들은 제시된 정당 중 하나를 택하려 한다(본문 292쪽)"는 것이다.

한국 유권자의 다수가 지지정당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당정치의 부재에 원인이 있다. 한국 정치에 정당정치가 부재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선거제도의 문제 때문이다. 소수 정당이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하나도 없는 '소선거구제+다수대표제'에서 정당에게 선명함을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 죽으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때문에 정당은 확장성을 위해 모호함을 추구할 수밖에 없고, 여러 이념이 섞인 이상한 연합체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다수대표제 하에서 정치인은 위대한 신념만으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 당선을 위해 표를 하나라도 더 긁어모으려 앞서 언급한 '네트워크'를 동원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 정치 지형에서 정치가를 꿈꾸며 국회에 입성했던 정치인이 정치꾼으로 바뀌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이로 인해 유권자들은 정당을 신뢰하지 못하며, 자신을 제대로 대변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악순환이다.

다음 세대의 일을 생각하는 선거

정치인이 정치꾼으로서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 속에서 정치인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렇다면 한국 정치 지형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유권자들만이 가지고 있다. 조금이라도 다음 세대의 일을 생각하는 정치인에게 투표하는 것, 다시 말해 유권자 자신들의 '표심'이 다음 세대의 일을 생각하는 정치인에게 있다 주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2016년 4월 13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다. 혈연, 학연, 지연 등 '네트워크'에 호응하는 선거가 아니라, 다음 세대의 일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고민하는 선거가 되길 바란다. 2016년 4월 13일 이후가 좀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될지, 좀 더 나쁜 대한민국이 될지 알 수 없지만 '표심'의 방향이 정치꾼의 호응이 아니라 유권자의 주체적인 의견 표명으로 조금이나마 바뀐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닐까. 그 조금의 변화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표심의 역습>(이현우 외 4명 씀/ 책담 펴냄/ 2016. 2/ 정가 15,000원)

이 기사는 본 기자의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표심의 역습 - 빈부, 세대, 지역, 이념을 통해 새로 그리는 유권자 지도, 개정증보판

이현우 외 지음, 책담(2016)


#총선#투표#선거#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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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읽고 짬짬이 쓰는 김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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