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알파고'와 임요환이나 김유진 같은 스타크래프트 인간 챔피언의 맞대결이 성사될까?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 개발자가 지난달 이세돌 9단과 벌인 바둑 대국 직후 다음 도전 과제로 컴퓨터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언급한 가운데, 게임 개발업체인 블리자드도 적극 환영하고 나섰다.
1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세계 대회 개막식 참석차 한국에 온 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 CEO(최고경영자)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마지막 대국을 직접 관전하고 스타크래프트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인공지능과 인간의 스타크래프트 맞대결에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다만 모하임은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구글 개발자가 다음 도전으로 스타크래프트를 언급한 적이 있어 우리 쪽에서 먼저 구글 쪽에 연락한 적은 있지만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는 인간과 알파고의 스타크래프트 맞대결을 기정사실화한 일부 언론 보도를 부인한 것이다. <동아일보>는 이날 모하임 인터뷰 기사에서 양사가 경기 종목과 장소, 선수 등을 정하기 위한 실무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신체적 한계 있는 인간에게 불리, 인공지능 행동 제약해야"설사 알파고와 인간의 맞대결이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컴퓨터 게임으로 공정한 대결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스타크래프트는 바둑이나 체스와 달리 전략 못지않게 키보드와 마우스를 조작하는 속도, 순발력 등 인간의 신체적인 능력도 승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모하임도 "인공지능의 행동을 어느 정도 제한하지 않고 무제한으로 놔두면 인간 대표에겐 불공정한 경기"라고 밝혔다.
모하임은 "스타크래프트는 전략 게임이지만 작은 유닛들을 계속 움직이고 명령도 내리려면 신체적, 물리적으로 민첩하게 움직여야 한다"면서 "인간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데 인공지능은 인간 같은 물리적 제약이 없는 게 이점이어서 어느 정도 제약을 걸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모하임은 "프로게이머들의 전략적 깊이가 깊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인공지능이 그런 전략을 재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시간이 주어지고 컴퓨터 실력이 늘면 언젠가는 인간보다 우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타크래프트 게임 자체도 이미 인간과 컴퓨터가 난이도를 정해 맞대결을 벌일 수 있다. 다만 이세돌 9단 대국처럼 스스로 학습 능력까지 갖춘 알파고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블리자드에서 게임 규칙에 맞춰 완벽하게 만든 인공지능과 알파고가 붙으면 누가 이길까, 라는 질문에 모하임은 "우리가 규칙에 맞춰 프로그램해도 프로그램한 만큼만 하는데 딥마인드 인공지능은 경기를 하면서 계속 학습할 수 있어 시간이 지나면 알파고가 이길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스타크래프트의 인공지능을 더 강화할 계획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블리자드의 인공지능 개발 목적은 이용자가 즐거운 경험을 하도록 하는 것이지 이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인공지능을 만드는 게 아니다"라면서 "기본적으로 블리자드 게임은 사람 대 사람으로 경기할 때가 가장 즐겁다"고 밝혔다.
구글은 가만있는데 블리자드만 설레발?
PC용 온라인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한국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프로게임단까지 등장하며 'e스포츠' 시대를 여는 기폭제가 됐고 블리자드도 '스타크래프트2'를 선보였지만 예전의 인기에는 못 미치고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LOL)'를 비롯한 경쟁 게임이 늘어난 데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게이머들의 관심도 모바일 게임으로 옮겨가고 있어서다.(관련기사:
'스타리그'의 부활... 'PC방 폐인'도 돌아올까)
블리자드가 알파고와의 맞대결에 더 적극적인 것도 자사 게임과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모하임도 이날 "이런 걸 계기로 e스포츠가 가진 순기능이 많이 주목 받았으면 좋겠다"면서 "이번 히어로즈 챔피언십도 전 세계 8개국에서 톱 수준 선수들이 한국에 와 경기를 하고 팬들이 관전하는 것 자체가 멋진 스토리"라고 밝혔다.
만약 대결이 성사되면 스타크래프트 인간 대표를 누구로 정할지, 이세돌 9단에 이어 스타크래프트 종주국이나 다름없는 한국 선수가 선출될지도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다. 모하임도 "구글 쪽에서 먼저 확고하게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면서도 "성사되면 인류를 대표할 선수를 선정하는 과정이 박진감 넘칠 것"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정작 구글 쪽에서 별다른 반응이 없다. 제프 딘 구글 연구원이 지난달 9일 알파고 대국 직후 기자회견에서 "구글 딥마인드에서 컴퓨터 게임으로 인공지능 훈련을 하고 있다"면서 스타크래프트를 잠깐 언급한 게 전부다. 이런 상황에서 블리자드가 먼저 설레발을 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모하임도 "자칫 우리가 너무 앞서가면 구글은 하겠다고 결정하지도 않았는데 부담을 줄 수 있다"면서 "몇 차례 대화가 오고간 정도고 세부적인 사안이 논의된 적은 없다"고 조심스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