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체계를 바꾸는데 국가의 지도자가 그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고 1년 동안 전국을 돌며 국민들을 직접 만나 설득한다? 국민들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으로 행복할 수 있는지 국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다? 게다가 그 나라에선 지하자원의 개발도, 외국 원조를 받아들이는 것도, 세율을 조정하는 것도, '국민의 행복에 반(反)한다'는 결론이 나면 무조건, 어떤 일이 있어도 시행하지 않는다는데….
선거철이라 한 권의 책에서 인상 깊게 읽은, 그래서 소개하고 싶은 많고 많은 글 중 지도자의 자질이나 국가의 정책에 관한 글, 국민들이 행복할 권리, 투표에 관한 글들이 더욱 솔깃하게 읽힌다. 사람인지라 나도 모르게 우리나라 실정과 비교도 하게 되고 부러워하면서. "이처럼 좋은 것들은 왜 배우거나, 따라하지 못하나?" 투덜거리기도 하면서 말이다.
아마도 우리로서는 상상하기가 그리 쉽지 않을 이런 일은 그런데 실제로 존재한다. 그것도 십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단다. 대부분의 국토가 험준한 나라. 대부분의 국민들이 농사를 짓는 나라. 게다가 물자가 많이 부족한 나라. 그럼에도 행복지수가 높기로 유명한 나라. 2011년에 영국의 신경제재단(NEF)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선정한 나라, 부탄의 이야기다.
부탄은 2년에 한 번씩 국민총행복(GNH:Gross Nationai Happiness)을 측정한다고 한다. 전체 국민의 5퍼센트 가량의 사람들을 1인당 평균 6시간의 인터뷰 등을 기초로 측정하는데, 이렇게 조사된 여러 다양한 지표에서 국민의 97퍼센트가 '행복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대략 전 세계 60위 정도의 행복지수인 나라의 국민 한사람으로서 여간 부러운 것이 아니다.
가난한 나라로만 알고 있던 히말라야 기슭의 부탄. 그런데 몇 달 전 이처럼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라는 것을 누군가의 여행기로 읽으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런 부탄을 <우리의 여행이 세상을 바꿀까>(선율 펴냄)로 매우 자세하게 만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아니 예전보다 '꼭 가보고 싶은 나라'로 더욱 끌린다.
'(부탄의) 여행관세는 총 여행비용의 30퍼센트 이상 부과된다. 즉 100만 원을 지불하면 30만 원 이상이 세금이다. 우리나라 부가세가 10퍼센트임을 생각했을 때, 높은 세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여행관세는 부탄 행복정책의 근간인 무상교육과 무상의료의 재원으로 쓰인다. 부탄 내에 합법적으로 머무는 사람 누구나, 즉 내외국인 모두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혜택을 받는다. 영국식 교육제도를 따르는 부탄은 상급학교 진학 시기가 되었을 때, (성적이 되는 학생 중) 원하는 이들의 경우 해외로 유학을 보내주는 제도도 있다. 그 수가 매년 500명이다. 인구 70만 명의 나라에서 매년 500여명이 국비로 유학을 가는 셈이다. 이 학생들 중 부탄으로 돌아와 조국을 위해 일하는 비율은 90퍼센트에 이른다.' - <우리의 여행이 세상을 바꿀까>에서. 부탄을 이 책으로 만나는 것이 왜 좋을까? 게다가 더욱 강한 끌림까지? 이 책은 여행책이다. 그런데 단순한 여행책이 아닌 공정여행책이다. 공정여행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냥 여행책과 공정여행책의 차이가 크게 구분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미 공정여행을 경험해본 사람으로, 여건만 된다면 죽는 날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공정여행에 참여하고 싶은 필자에게 그 차이는 엄청나다.
공정여행이란 이름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을 정도로 우리에게는 아직 익숙한 여행이 아니다. 대강 설명을 하면, 공정여행은 여행하는 그 지역이나 그 지역 사람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좀 더 많은 것들을 주고 받는다. 그리하여 그들과 한솥밥 먹는 사람들처럼 밀착된다. 그러니 숟가락 젓가락이 몇 개인지는 기본, 대개의 여행자들이 보고 느낄 수 없는 것들까지 알게 될 수밖에 없다.
'2009년, 세상을 가볍게 쉽게, 그리고 시끌벅적하게 바꾸고 싶은 청년들이 모여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만든 조직이 지금의 공정여행 사회적 기업 (주)공감만세다. 처음에는 단순히 우리가 돕고 협력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곳에 가보면 어느새 우리가 도움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돕고 협력한다는 건 일방적이거나 수직적인 게 아니라, 관계에 기반한 상호 소통에 있음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공감만세는 줄임말이다. '공정함에 감동한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이라는…. 아직도 우리는 가야 할 길이 멀다. 공정여행이 학교 현장에 조금이나마 빠르게 자리 잡았다면 세월호 참사는 막았을지도 모른다. 공정여행이 정치인 연수 현장에 조금이나마 빠르게 자리 잡았다면 지금보다는 더 살 만한 세상이 됐을지도 모른다. 공정여행이 패키지여행 현장에 조금이나마 빠르게 자리 잡았다면 여행가이드들이 제값도 못 받고 서로 속고 속이는 여행을 하며 가이드와 여행자 모두 힘들어하는 상황을 반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 <우리의 여행이 세상을 바꾸다> 프롤로그에서.이 책은 공정여행 사회적 기업인 공감만세 대표자로, 그간 수많은 공정여행들을 이끌어 온 고두환씨가 썼다. 사회적기업 공감만세가 몇 년 전부터 계속 진행하고 있는 공정여행지들과 공정여행 그 내용이 바탕이다. 일반적인 여행책들에서 결코 만날 수 없는, 여러 나라들의 훨씬 깊이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과 좀 더 자세한 부탄을 만날 수 있음은 당연하다.
작은 나라라 이동거리도 짧고 우리나라와 그리 멀지 않다. 그런데 부탄을 여행하는 경비는 우리나라 기준, 남미나 유럽을 여행하는 경비가 들 정도로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싸다고 한다. 그럼에도 연간 10만을 훌쩍 넘는 사람들이 부탄을 찾는다고 한다.
여행관세를 이용해 배출한 인재들이 부탄으로 돌아와 세계의 여행자들이 질 높은 여행을 할 수 있도록 기여하는지라 여행자들의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다. 행복에 대한 부탄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보고 느끼며 행복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 않을까.
1:1 밀착서비스를 하지만 여행자가 결코 불편하지 않는 그런 질 높은 여행서비스를 기본으로 하는 부탄의 여행정책, 시설이 있다는 전제하에 아이 출산부터 산모회복은 물론 아이 보육과 각종 예방의학까지 무상지원은 기본, 국민이 원하면 헬기를 동원해서라도 외국의 의료서비스를 받게 한다는 무상의료정책 등,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최대한의 지원을 하는 교육정책, 전 국민이 땅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제도 등, 책을 통해 만나는 부탄의 정책들은 그저 부럽다.
외에도 책은 ▲골목상권의 중요함을 생각해볼 수 있는 '몽마르트 언덕의 이유 있는 작은 빵집' 파스칼 아저씨를 시작으로 ▲공공시설물의 다양한 소통과 바람직한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미테랑 국립도서관▲태국 한 산골마을 퍼능의 이유 있는 도전 ▲가난하지만 잘사는 바세코 사람들의 어깨동무 연대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필리핀 바타드의 계단식 논의 위기 ▲일본 규슈 사람들의 대전 공정여행 ▲제주도를 공정하게 여행하는 이야기 등 국내와 세계 곳곳의 다양한 공정여행을 들려줌으로써 공정여행의 가치와 필요성, 공정여행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들려준다.
사람에 따라 여행의 이유 또는 목적은 다를 수밖에 없겠다. 분명한 것은 내가 쓰는 여행경비가 내가 여행하는 지역과 그곳 사람들을 살리는 돈이 될 것인가. 나날이 위협받는 지구환경을 위협하거나 대기업이나 일부 사람들의 배를 불리는 돈이 될 것인가는 여행자가 어떤 여행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내가 지불하는 여행경비가 가장 가치 있게 쓰이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우리의 여행이 세상을 바꿀까>(고두환) | 선율 | 2015-11-10 | 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