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SBS에서 방영됐던 <시크릿 가든>의 한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여자 주인공 길라임에게 한눈에 반한 남자 주인공 김주원이 상상으로 불러 낸 길라임과 함께 나란히 걷는 장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누구나 김주원처럼 길라임을 떠올리게 되겠지? 매 순간?이라고 생각하며 난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꼭 사랑뿐일까. 이름을 어떻게 붙이든 우리와 내밀하게 연결된 그 누군가를 우리도 일상 속에서 문득 문득 떠올리곤 하지 않나. 영화를 보면서는 영화를 유달리 좋아하는 그 사람을, 오렌지를 먹으면서는 과일을 죽도록 안 먹는 그 사람을, 책을 읽으면서는 책벌레 그 친구를, 드라마를 보면서는 드라마 중독자인 이모를.
세계적인 작가 폴 오스터도 역시나 세계적인 작가 존 쿳시를 일상 틈틈이 떠올리게 됐다고 고백한다. <디어 존, 디어 폴>에서 폴 오스터는 이렇게 말한다.
'이틀 전인가, 우리의 편지 교환이 저에게 미친 효과에 대해 놀랄 만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지난 3년 가까이 편지를 주고받아 왔는데, 그동안 당신은 <부재하는 타인>, 즉 어린아이들이 스스로 고안한 상상의 친구와 같은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리저리 거닐며 종종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말을 걸 때가 있습니다.' - <본문> 중에서 폴 오스터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이 책은 두 작가가 3년 간 주고 받았던 편지를 엮은 책이다. 두 사람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주제는 정말 다양하다. 우정, 사랑, 금융자본주의, 정치, 우연한 만남, 상실감, 경쟁, 스포츠, 언어, 식탁 예법, 예술, 민주주의, 이스라엘, 자유 등등.
상대의 의견을 너그럽게 받아주고, 상대를 깊이 존중하며, 따뜻한 손길처럼 편지를 주고받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이 책에서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두 작가가 본인들의 책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투덜대는 부분이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존 쿳시는 그의 책 <슬로우 맨>을 읽은 한 독자가 그의 책이 실망스럽고 수치스러웠다고 보내온 편지를 읽고는 기분이 축 가라앉아 폴 오스터에게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할까요?' -<본문> 중에서 존에게 보내온 독자의 편지에 존보다 더 흥분한 폴은 본인에게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며 이렇게 답을 한다.
'보통 저는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는 식으로 대응합니다.' - <본문> 중에서 이후 둘은 몇 차례에 걸친 편지에서 평론가와 서평가들에 대해서도 연신 투덜거리며 열심히 상대를 다독인다. <디어 존, 디어 폴>에는 두 작가의 이렇듯 재미있으면서도 솔직하고 진솔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그중 가장 가득했던 건 둘의 우정이었다.
덧붙이는 글 | <디어 존, 디어 폴> (폴 오스터, J.M.쿳시 저/송은주/열린책들2016년 03월 10일/1만3천8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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