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이의 영어교육퇴근 후 집에 들어서는데 둘째 산들이가 호들갑을 떨며 내 손을 잡더니 이상한 말을 해대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서 배웠다며 무슨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당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여보, 산들이가 뭐라는 거야?""왜 몰라? 잘 들어봐. 오늘 영어 배웠다고 영어 노래하는 거야.""응? 영어?"그랬다. 나는 그제야 아이의 노래를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산들이는 '먼데이, 튜즈데이, 웬즈데이'를 어설픈 발음으로 무한반복하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영어수업을 꼭 들을 수밖에 없다더니 바로 오늘부터인 듯했다. 문득 아이가 월, 화, 수, 목, 금, 토, 일을 알고나 있는지 궁금해졌다.
"산들이는 우리 말로 요일을 어떻게 말하는지 알아?""아니. 그러니까 내가 영어를 안 가르치려 했지.""아직 우리말도 못하는 아이가 꼭 영어를 해야 하나? 그게 효과가 있긴 한가?""효과가 있겠어? 그런데 어쩔 수 없어. 우리 빼고 대부분의 부모들이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아우성이래. 하루에 40분인데, 아니면 다른 아이들 영어 배우는 동안 산들이만 따로 혼자 놀아야 한대. 그럴 수는 없잖아."
선택권은 없어 보였다. 아이에게 영어를 안 가르치려면 녀석을 어린이집에서 일찍 데리고 오거나 아이 혼자 놀게 하는 법밖에 없었는데, 처음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한창 친구들과 노는 것에 재미 붙인 아이에게 그 두 방법은 모두 힘들어 보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영어 교육 비용 3만4000원을 별도로 내는 수밖에.
한 달에 3만4000원. 물론 아이의 교육을 생각하면 결코 큰 비용이 아니었지만, 문제는 이 돈이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느냐는 것이었다. 한글도 제대로 떼지 못한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듯 했다. 결국 이는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욕망이 투영된 것은 아닐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나름 교육에 대한 뚜렷한 소신으로 아이의 선행학습에 반대하고 있지만, 과연 이 생각이 현실과 부딪히면서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혹시 내가 무의식적으로 돈 때문에 아이 교육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지난달 봤던 기사 한 꼭지가 떠올랐다. 꽤 오랫동안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로 올라와 있던 기사였는데, '저소득층 사교육 포기'라는 제목의 기사가 바로 그것이었다. 혹시 '저소득층 사교육 포기'라는 것이 결국 지금 나와 같은 생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저소득층의 사교육비 감소사실 포털에서 처음 '저소득층 사교육 포기'라는 문구를 봤을 때 들었던 감정은 불쾌함이었다. 얼핏 생각해보면 저소득층이 돈이 없어 사교육을 할 수 없다는 당연한 이야기인 듯도 했지만, 왠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
'저소득층 사교육 포기? 교육비<주거비'라는 <연합뉴스>의 기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월 소득 100만원 미만 가구가 교육에 쓰는 돈이 주거비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비 지출이 주거비보다 적어진 것은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처음이다. 24일 통계청의 소득구간별 가구당 가계수지를 보면 지난해 월 소득 100만원 미만인 가구의 실제주거비는 월평균 3만2710원으로 교육비(2만3489원)보다 많았다. 실제주거비가 교육비 지출을 넘어선 것은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중략) 세부적으로 보면 실제주거비는 조사 기간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교육비가 큰 폭으로 줄었다. (중략) 특히 교육비 지출 중에서도 사교육에 해당하는 '학원및보습교육' 분야 지출이 급격히 감소했다. (중략)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사교육은 소득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저소득층이 교육을 덜 받게 되면 교육이 계층 상승 사다리로 작용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요컨대 기자는 월 소득 100만원 미만 가구의 교육비가 주거비보다 작아진 사실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비록 제목에 물음표를 붙이기는 했지만, 이로써 저소득층이 사교육을 포기했다고 규정했으며, <중앙일보> <조선일보> <한겨레> 등의 일간지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꺼림칙했다. 기사에 보도된 바와 같이 저소득층이 다른 계층에 비해 사교육에 많은 비용을 쓰지 못하는 건 객관적인 사실이겠으나, 교육비와 주거비가 역전된 사실이 저소득층의 사교육 포기를 운운할 정도로 큰 의미를 지닌다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주거비가 교육비를 앞선 게 그렇게 중요한 사실인가?
'저소득층의 사교육 포기' 문구의 함정물론 기사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저소득층의 사교육비 감소 추세는 분명 눈여겨 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양극화돼 있고, 저소득층의 살림살이가 매우 열악하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사교육을 해야 하고, 먹고 입는 건 줄여도 자식 교육만은 줄이지 않는다는 게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견지해 왔던 신화이지 않은가.
다만 여기에 덧붙여 저소득층이 사교육을 포기한다는 말은, 특히 교육비보다 높아진 주거비를 근거로 사교육 포기를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다. '포기'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 어느 부모가 자식의 교육을 포기한단 말인가. 비록 주거비보다 적은 돈이라 하더라도 부모는 그만큼 최선을 다해 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는 것이고, 그 교육을 통해 자녀들이 좀 더 잘 살기를 바란다.
게다가 더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위 기사가 인용한 통계가 정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기사는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소득구간별 가구당 가계수지'를 인용했는데, 같은 날 통계청이 발표한 '2015 한국의 사회지표'에는 월 소득 100만 원 미만인 가구의 초중고 사교육비만 해도 6만6000원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에 문의한 결과, 이는 조사대상의 차이로서 전자가 월 소득 100만원 미만인 가구 전체를 대상으로 했던 반면 후자는 교육비가 들어가는 가구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즉, 전자의 교육비는 자녀가 없는 가구까지 포함한 값으로서, 이를 근거로 주거비가 교육비보다 높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주거비가 교육비보다 높기 때문에 저소득층의 사교육 포기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오류일 수밖에.(통계청은 월소득 100만 원 미만 가구주 평균연령이 68.8세로 대부분 노인 연령층이고 18세 미만 자녀수가 평균 0.2명에 불과하다고 밝혔음...편집자 주)
또한 위 기사의 다른 문제점은 교육비를 이야기하며 마치 사교육이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현실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사교육비의 감소를 무조건 교육의 포기라는 듯이 몰고가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공교육의 정상화일 수도 있고, 사교육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는 탓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 부부도 산들이의 영어 학습을 반대하지 않았던가. 우리에게 산들이의 영어학습비용은 교육비가 아닌 보육비에 가깝다.
늘어나는 교육비, 줄어드는 지갑
아이들이 커갈수록 나의 지갑이 줄어드는 건 결국 교육비 때문이다. 아이들이 그만큼 많이 먹기도 하지만, 식비와 교육비 증감의 차이는 천지차이다. 당장 우리 집만 봐도 초등학생 까꿍이의 방과 후 학습 비용과 현장학습비용, 어린이집 산들이의 영어학습비용과 현장학습비용으로 돈이 예전보다 몇 배로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모든 이들이 지적하듯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우리 부부는 더 많은 교육비를 지불해야 할 것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사교육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사교육 시장을 늘리기보다는 공교육의 정상화가 더 시급하다는 기본 전제에는 동의하지만, 당장 나의 아이가 남들보다 뒤처지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가장 쉬운 방법으로 사교육을 떠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모든 것에 호기심을 보이는 아이들의 욕구에, 친구 따라 학원가겠다는 아이들의 요청에 초연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현재 우리 사회의 사교육은 단순히 사적인 교육이 아니라 기형적인 입시제도, 학벌주의 등과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사회 시스템 중 주요 부분인데 내가 그것을 모두 부정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것도 아니다.
그래서 어찌 할 거냐고? 물론 정답은 없다. 우리는 아이들의 교육을 두고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며 최선의 방법을 찾고자 노력할 것이다. 품앗이를 통해 교육비를 절감할 것이고, 독서를 통해 간접 체험을 늘릴 것이며, 여행을 통해 창의성을 키울 것이다. 가끔 우리가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답답해하기도 하고 한숨도 내쉬겠지.
그래도 한 가지만은 결심해본다.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하는 사교육은 절대 지양하겠노라고. 물론 그 경계를 판단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겠지만 아이들의 잠재력을 믿고, 조금 더 기다리는 자세를 갖기로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