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영광 한빛 원전에서 약 30km 떨어진 곳이다. '방사선비상계획구역' 안에 포함되는 위치다. '방사선 비상'이란 원자력 시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사고와 고장 중 방사능 물질이 외부로 누출되거나 누출될 우려가 있는 사고 상황을 말한다.
IAEA(국제원자력기구)에서 설정한 '비상계획구역'이란 긴급보호조치를 위한 대책 마련을 위해 설정하는 구역이다. 원전에서 반지름 3〜5km를 '예방적 보호조치구역', 원전에서 반지름 5〜30km를 '긴급보호조치 계획구역'으로 정하고 있다. 쉽게 말해 우리 집은 한빛 원전에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즉각적인 대피와 소개가 필요한 지점에 있는 것이다.
한빛 원전은 품질이 위조된 부실 부품 사용과 잦은 고장 때문에 '누더기 원전'으로 불린다. 한빛 원전에서 무슨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정말 문제가 없는 것일까. 원전 근방에 주민으로서 나는 두렵다. 예측할 수 없는 핵 재난 때문에 내 아이들의 생명이 위태롭고 삶이 망가지면 어떡하나. 괜한 걱정이 아니다. 오히려 핵 사고의 위험에 대해 너무 무지하거나 무감각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를 경험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의 목소리는 과거로부터 왔지만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에도 여전히 이 지구상에는 443기의 핵 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그 중 20퍼센트는 지진 위험 지역에 있다. 지진해일로부터 안전하다던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면서 이 세계에 안전한 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443기는 지구를 날려버리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개수다.
1986년 4월 26일, 1시 23분 58초. 벨라루스 국경에 인접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전쟁 위의 전쟁'이었다. 210개부대 34만명의 군인이 안전보호 장비도 갖추지 못한 채 사고 수습에 동원됐다. 삽을 들고 원자로 지붕에 올라간 이들의 귀와 코에서는 피가 흘렀다.
러시아 환경 단체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고로 인해 무려 150만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사고 후 벨라루스는 485개 마을을 잃었다. 그 중 70개 마을은 땅 속으로 영원히 매장됐다. 벨라루스 국민의 5분의 1이 현재 오염된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오염지역 거주민 210만명 중 어린이가 70만명이다. 벨라루스 국민의 주요 사망원인은 방사선 피폭이다.
'갓 태어난 딸은 아기가 아니라 살아있는 자루였다. 온몸이 구멍 하나 없이 다 막힌 상태였고 열린 것이라곤 눈 뿐이었다.' (135쪽)'체르노빌은 이제 우리는 내버려두지 앟아요. 어느날 젊은 임산부가 갑자기 죽었어요. 아무런 병도 없었고, 검시관도 아무런 진단을 내리지 않았어요. 어린 소녀가 자살했어요. 5학년짜리 여자 아이가...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어요. 아이 부모는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어요.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은 단 하나에요. 체르노빌. 무슨 일이 생기든 모두 말해요. 체르노빌, 우리가 아픈 이유가 무서워해서 그런 거라고, 두려움 때문이라고, 우리가 방사선 공포증을 앓고 있다고 윽박질러요. 그런데 왜 어린아이들이 아프고 죽죠? 아이들은 두려움을 몰라요. 아직 어려서 몰라요.' (180쪽)'고방사능 입자란 뜨거운 원자로에 납과 모래를 뿌릴 때 생성되는 미립자다. 납, 모래, 흑연의 원자가 합쳐져, 충격으로 공기 중에 높이 떠 위로 올라갔다, 멀리 떨어진 곳까지 날아갔다. 수백 킬로미터를... 기관지를 통해 인체 내로 흡입된다. 특히 트랙터나 트럭 운전 기사, 즉 밭을 갈거나 시골 길을 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 이 입자가 침투하는 기관은 사진을 찍으면 '빛'이 안다. 가루체처럼 구멍이 수백개 뚫려 있다. 사람이 죽어간다. 타간다. 사람은 영원하지 않지만 고방사능 입자는 죽지 않는다. 사람은 사망 후 1천 년이 지나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불타는 입자'는 계속 살 것이다. 그리고 이 먼지는 또 다시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 (211쪽) 저자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사고에 대해 "이 비극은 일본만의 것인가, 아니면 인류 전체의 것인가? 문명의 힘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우리 가치관이 참이라는 확신을 재난이 흔들고 있지 않은가?"라며 "이제 우리에게 질문이 주어졌다. 두려움만이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5쪽)고 했다.
핵 발전소 폭발 사고가 가져온 어마어마한 재앙의 실체를 확인하고 되새기는 작업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준다. 그것은 종말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손이 떨리고 눈물이 나고 밀려드는 공포감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런 측면에서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두려움'이라는 방법으로 우리의 안전불감증에 경종을 울리는 가장 훌륭한 탈핵 교과서다.
저자는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고 했다. 첫 번째는 체르노빌, 두 번째는 후쿠시마였다. 세 번째는 어디가 될까? 후쿠시마 사고 5년, 많은 전문가들이 핵 밀집지역인 한반도가 '제 2의 후쿠시마'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대형 참사 앞에서 '어디'를 묻는 것은 부질 없다. '나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은 더더욱 의미가 없다. 저자의 말처럼 핵 사고에 대한 진정한 두려움만이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체르노빌의 목소리>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 새잎 펴냄 / 2011.6. / 16,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