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오늘이 다소 혼란스럽고 불편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가치에 매달리고 지켜내야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지난해 7월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가 사임하면서 토해낸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줄다리기 끝에 원내대표직을 사임하면서 던진 그의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동조하는 이들은 박근혜 정권이 민주공화국이 아니라는 것이고, 반대하는 이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시큰둥해 한다.
유 의원의 '민주공화국의 가치'는 후에도 많은 이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헌법의 1조1항의 가치란 모든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통령은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아 국민을 위해 일하는 한에서만 그 당위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과 유 의원의 싸움(?)처럼 어떤 가치에 대한 부딪힘은 심심찮게 이 사회에서 벌어진다. 실은 그들은 모두 새누리당이라는 한 울타리에 있으면서 이런 싸움을 했다. 그 싸움의 후유증은 커 유승민은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20대 국회의원에 도전하고 있다.
가치 충돌은 정말 가치의 충돌일까
이런 비유는 어떨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고 후회한 후 다시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일은 안 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여전히 같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다. 우리의 정치사를 보면 이런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 걸까. 속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변신을 한다. 아니 변신한 것처럼 속인다.
2012년 12월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라는 프레임을 내걸고 대선에 도전했다. 이 프레임은 김종인이 만들었다. 국민은 그가 경제민주화를 꽃피울 거라 생각하고 지지했으리라. 51.6%의 국민 지지를 얻어 1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때 박근혜 후보의 공약과 문재인 후보의 공약은 거의 구별이 안 갈 정도로 국민(서민) 친화적이었다.
정권을 잡은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애초부터 그에게 어울리는 옷이 아니었다. 그의 브레인이었던 박의 사람 김종인은 지금 반대당인 더불어민주당(아래 더민주)에서 표를 달라며 열심히 뛰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밟아 경제를 망친 박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 대통령의 가치는 '경제민주화'가 아니다. 규제개혁과 친 대기업 정서가 그의 진정한 경제정책의 가치다. 그러니까 18대 대선 때 이러한 가치는 숨어 있었다. 박 후보와 문 호보가 자신들의 프레임인 친 대기업 대 친 서민으로 맞섰다면 결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난 대선 때 박 후보와 문 후보의 충돌은 진정한 가치 충돌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20대 총선을 며칠 앞두고 있다. 이번 총선은 어떨까. 역시 똑같다. 공약을 보면 모두 친 서민적이다. 여당과 야당의 옷 색깔이 빨강과 파랑 그리고 녹색, 노랑으로 차이가 있을 뿐 그들의 프레임은 같다. 분명히 속이는 쪽이 있다는 뜻이다.
새누리당은 '가치의 프레임' 속이는 고양이최택용의 <도둑맞은 '자유민주주의' 프레임>을 내 식으로 말하면, '가치의 프레임을 속이는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다. 진짜 가치는 뒤로 숨기고 국민이 좋아하는 프레임을 반복함으로써 국민이 다시 그 고양이를 찾게 만든다. 저자는 새누리당이 그렇다고 말한다.
"만약 자유민주주의 정당이 자유민주주의 정당이라는 것을 밝히기를 삼가고, 비자유민주주의 정당이 자유민주주의 정당이라고 외치고 있다면 어찌 될까? 그리고 그것이 정치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는 이런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본다." (본문 15쪽)자유민주주의는 '만인평등에 입각하여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고 국민주권주의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참정권에 의한 입헌민주주의 틀 내에서 의사 결정을 하는 이념 체제'를 말한다. 그러나 유승민 사태 등 무수한 비민주적 행태를 보면서 새누리당이 그런 자유민주주의 정당이라고 볼 수 있을까. 저자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새누리당 정권 하에서 국민의 자유와 인권이 탄압받는 비민주적 사례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빈번하다. 국가 정보기관이 국민의 참정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행위를 하고,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집회 결사의 자유가 침해받고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당당하게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고 있다."(본문 31쪽)새누리당이 자유민주주의를 자기 프레임으로 만들기 위해 "북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혹은 "한미동맹을 강화하고"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러니까 새누리당이 자유민주주의 정당이라고 속일 수 있는 것은 북한과 미국의 도움(?) 때문이다.
반대로 자유민주주의 정당이 맞는 더민주는 '새누리당에 반대하는 정당'일 뿐이다. 그러다가 심지어는 운동권이 되기도 하고 종북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더민주를 '바보 자유민주주의자의 병원'이라며, 정강정책에도 자유민주주의를 말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전체주의와 반공주의를 무기로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여당과 자유민주주의를 무기로 가지고 있으면서 운동권과 종북이 되는 야당의 아이러니를 이처럼 적나라하게 파헤친 책이 있을까 싶다. 이 프레임이라면 더민주는 백전백패 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나도 동감한다.
유승민이 안 그것, 우리도 알아야 한다. 이미 도그마(맹목적 신앙신조)가 되어버린 새누리당의 자유민주주의 프레임이 가짜라는 걸 국민은 모른다. 이제 야당(더민주)이 나설 차례다. 자신의 정체성이 자유민주주의에 있다는 걸 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권은 영원히 속이는 고양이의 것이 될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도둑맞은 ‘자유민주주의’ 프레임> (최택용 지음 / 행복한책읽기 펴냄 / 2016. 3 / 207쪽 / 1만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