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아는 리씨네가 유럽 캠핑을 시작하기 전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만난 이탈리아 여행자였다. 그녀는 몇 달 후 이탈리아에 갈 우리에게 자신의 고향 볼차노를 추천했다. 원래 계획이 없었으나 이탈리아에 들어오고 나서 우린 대단히 더운 이탈리아 날씨에 놀라 시에나에서 로마로 내려가지 않고 북쪽으로 핸들을 틀었다. 안토니아는 여행 중간 중간 메일을 통해 우리의 여행 동선을 파악하고 있었고 계속해서 볼차노로 오라고 권했었다. 그래서 볼차노에 왔다.
오늘은 안토니아를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다. 한국에서 사간 국제유심카드가 말썽을 부려 핸드폰은 한참 전에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Suise란 이정표만 의지하고 20분을 달리며 공중전화를 찾는데 그것마저도 어렵다. 무턱대고 고갯마루의 식당 가까이에서 차를 세웠다. 식당 주인의 도움으로 전화를 했더니 그녀가 받는다. 쇼핑 중이라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다며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내 위치를 물었으나 나도 내가 어디 있는지 몰라 머뭇하는 사이 그녀는 그녀가 있다는 호텔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다행히 내비게이션에는 유로파 호텔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그 호텔은 안토니아 말한 동네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린 내비게이션의 안내에서 탈선하여 무턱대고 마을 중심으로 차를 몰았다. 약속시간은 4시였고 지금은 5시다. 점점 어두워지고 있기에 어쩌면 그녀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이미 마음을 비웠던 거 같다. 순환로에서 직진하려는 순간 난 유로파호텔의 간판을 보았고 "어~ 어~ 우회전 유로파 유로파" 소리쳤다. 찾았다며 좋아할 찰나 호텔 건너편에 앉았다가 일어서는 누군가의 움직임, 우릴 부르는 반가운 목소리, 안토니아였다.
그녀는 3시~4시에 온다는 남편의 메일을 받은 후 그것이 오늘인지, 내일인지 헷갈렸단다. 그래서 아까 4시부터 벤치에 앉아 우릴 기다리고 있었고 간혹 유로파 호텔 리셉션에 들어가 동양인이 사람 찾으러 오지 않았냐고 물었단다. 거의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했지만 우린 재회했다. 그녀나 우리나 재회의 과정이, 재회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계속 놀라워하긴 마찬가지였다. 알고 보니 그녀는 유로파 호텔 뒤쪽 아파트에 머물며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단다.
돌로미테 산맥이 보이는 멋진 곳으로 가자는 말에 우린 그녀의 귀여운 은색 도요타 차를 따라 다시 좌우로 굽이치며 하늘을 향해 드라이빙을 했다. 한순간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곤 파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일 때가 있었다. "여보, 이건 그냥 길이 아니야. 천국에 오르는 계단이라구" 말하는 나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세상은... 인간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하다. 사람이 이런 곳에 살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아닌 먼 나라의 누군가는 이런 곳에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이런 곳에 살 수 있다니... 억울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전나무가 시원하게 우거진 숲을 지나 전망이 끝내주는 곳에 위치한 별 네 개짜리 호텔의 레스토랑이었다. 우리 가족 모두를 배려하여 선택한 곳이란 느낌이 들 정도로 한 쪽엔 '놀기만 해도 창의력이 생기는 이탈리아 놀이터'가 있었고 또 전나무 숲의 한 귀퉁이를 이용해 사슴과 토끼 목장을 만들어 놓았다. 사슴은 목을 곧추세우고 우리를 쳐다볼 뿐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호텔 뒤쪽에 목초지가 시작되는 곳에 염소농장이 있는데 엄마와 새끼 3마리가 있었다. 염소 턱 밑에 내 검지 크기의 혹 같은 것이 달려 있는 걸 처음 봤다. 염소에 대해 실제적으로 아는 바가 거의 없던 터라 아래 달린 것을 만져 보고는 싶은데 염소가 이에 대해 어찌 생각할지 몰라 머뭇하다 풀을 하나 뜯어 입에 물려주었다. 조심스레 그것을 살짝 살짝 만져보니 보드랍고 따뜻한 감촉이다. 정말 재미있어 풀을 열심히 뜯어 주었다.
안토니아는 이곳에서 태어났고 현재 여동생을 비롯한 친정 식구들이 여럿 살고 있단다. 볼차노엔 대학이 없어 로마에 있는 교육대학에 다니다가 로마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고 지금까지 살고 있단다. 대부분 6월 3주에 이곳에 올라와 운동을 주된 활동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데 8월이 되면 로마에 있는 아들, 딸 내외와 손주가 와서 함께 휴가를 즐긴단다. 평생 교사 생활을 하다 5년 전에 퇴직을 했는데 굳이 교사여서가 아니라 그녀는 참 자애롭고 지혜로운 엄마 같았다. 남편은 맥주, 난 카푸치노, 아이들은 코코아, 안토니아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1500m 되는 높이에 있었기에 바람은 서늘했지만 그래도 워낙 더위 속에서 20일 가량을 보낸 터라 차 트렁크 어딘가에 있을 겉옷을 꺼내 입지 않아도 괜찮았다. 쭈가 코코아를 흰 치마에 흘린 후 더러워졌다고 징징댔다. 엄마, 아빠는 일관되게 "괜찮다, 더러워도 괜찮다, 그러니 징징대지 말라"고 말하는 사이 안토니아는 "정말 더러워졌구나, 어떻게 하지? 엄마가 깨끗이 빨아주셔야겠네, 그래도 멋진데"라고 말해주었다. 더러워서 속상해하는 쭈의 마음에 먼저 공감하는 말을 해주는 안토니아의 말이 퍽 아름다워 쭈에게 한국말로 해석해주었다.
우리 셋은 돌로미테 산맥이 보이는 곳에 나란히 앉아 아주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보며 대화를 했다. 돌로미테 쪽에서 뿌연 것이 일자 비가 오는 것이라며 알려주고 먹구름이 걷히고 일몰을 준비하는 햇빛이 각도를 달리할 때마다 "저것 좀 봐, 정말 아름답지?"라며 말했다. 푸른 목초지 속에 간간이 박힌 흰 점의 집, 초록빛의 침엽수림으로 목가적 풍경의 절정을 보여주는 저 아랫마을의 아름다운 풍경, 돌로미테 산맥의 장엄하고 담백한 돌산의 모습까지 도저히 한눈에 닮을 수 없어 고개를 끄덕이며 눈알을 바삐 굴려야 했다.
이곳은 이전에 오스트리아에 속했던 지역이란다. 그랬기에 독일어가 이탈리어와 함께 쓰이고 있고 독일 사람들이 휴가지로 선호하는 곳이며 아예 이주한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이곳의 풍경은 오스트리아나 스위스와 비슷할 것이라 한다. 그렇구나. 관광업과 목축업에 종사하는 이곳 사람들의 삶은 풍요로워 보였고 그랬기에 더욱 편안해보였다. 민족, 언어, 역사, 문화를 명확히 구분지어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국가 간 경계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어 보고 느끼며 사는 모습이 부러웠다.
안토니아는 우리에게 메일을 먼저 보내고 주고 받으면서도 정말 우리와 만날 줄 몰랐단다. 많은 국가를 여행 다니며 만나는 여행자에게 "로마에 오세요"라고 말했고 그들은 한결같이 "오겠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40년 동안 기다리는 역할만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농담삼아 말하는 그녀도, 우리도 이렇게 만나는 것이 확률로 거의 일어나기 힘든 일임을 알기에, 99.9% 확률보다 0.1%의 기이한 재회를, 더욱이 기이하고 장엄한 돌로미테 산맥을 앞에 놓고 감격하기엔 터무니없이 바특한 시간이었기에 우린 작정하고 마음을 활짝 열었고 그래서 더 많이 웃었다.
"나의 고향에도 놀러오세요" 그녀의 말에 응답하다남편에게 맥주를 더 권하는 그녀에게 스페인 피게레스에서 술 먹고 필름이 끊긴 이야길 해주었더니 정말 놀라워하며 순간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위험한 행동은 멈춰야 한단다. 그래도 남 실수한 이야긴 재미있다. 그것이 이 지구상 한국에서만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에피소드라 더욱 기이하고 즐겁다. 아~ 우리나라 남자들도 이성의 제어 아래 적당히, 술맛을 논하며 유쾌하게 귀가하는 술 문화가 되길 바래본다.
이런 저런 로마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안토니아가 별안간 제2외국어로는 무엇을 배우냐는 말에 우리의 학창 시절엔 독어, 불어를 배웠으나 인사말밖엔 할 수 없다고 했다. "왜 그 언어를 너희가 배워야 하지?"라고 묻는다. 그렇게 묻는 이유는 이탈리아의 경우 교류가 빈번한 곳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접경지이면서 많은 독일인이 사는 이곳은 독일어를 비롯해 영어를 배우고 있고 아래쪽엔 아랍어를 배운다고 한다. 왜 아랍어를 배우냐고 묻자 지중해를 건너면 바로 북아프리카라 교류가 잦다고 했다. 이베리아 반도 끝만 북아프리카와 가깝다 생각했지 이탈리아에서 배를 타면 아프리카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단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곳에 와야 그곳의 지리적 위치와 관점에서 세상을 또한 내다볼 수 있구나'란 생각을 해 본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인해 아이들은 '융프라우'를 겨냥해 지금까지 잘 간직하고 있는 잠바를 꺼내 입었다. 비는 오지 않지만 저 아래 계곡을 타고 찬바람이 불어왔다. 작은 오두막집 안에 구비된 소꿉놀이 세트로 살림을 하며 즐겁게 노는 아이들을 연신 감탄하며 바라본다. 쭈의 평면적인 생김새에 대해 농담으로 나중에 시집 잘 가려면 눈, 코 성형을 해야겠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쭈 얼굴에 대해 이야길 하기 시작했다.
쭈의 생김새는 몽골인의 생김새와 비슷한 것 같다고 하며 사실 몽골 사람의 조상은 북극 원주민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쭈를 바라보는 눈빛엔, 무라카미 류가 소두증 여인에게서 발견했다던, 시원의 얼굴을 발견한 듯 감탄이 있었다. 눈빛은 쭈의 작고 오동통한 입술과 껌뻑거리는 작은 눈에 고정시키고는 나에게 경고성의 말을 했다. 절대 쭈의 얼굴에 손댈 생각하지 말라고.
굽이치는 길을 되돌아가려면 어느 정도의 밝음이 유지되고 있을 때 헤어져야함을 우리 서로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계산을 하고 나왔을 때 우린 작은 선물을 주었다. "당신은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와 준 천사입니다"라고 멘트를 써 주었는데 생각해보니 문법이 틀렸다. 그러나 그녀는 내 마음을 옳게 알고 있을 것이다.
무엇을 주고 싶다며 지갑을 뒤지던 그녀는 늘 그녀가 지니고 다니는 카드를 하나 주었다. 젊고 예쁜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그림이었다. 뒤에 짧은 멘트와 그녀의 이름을 써 주었다. 이 카드를 늘 지니고 다니며 좋은 엄마, 교사가 되겠다고 했더니 좋은 아내도 되란다. 그녀는 우리 부부가 죽는 날까지 서로의 노력으로 온전한 가정을 유지하길 부탁하며 남자가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여전히 결혼반지를 끼고 있었으나 혼자 휴가를 보내는 게 좀 이상해서 남편에 대해 물어볼까 했지만 이미 사별했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물어보진 못했다.
서로의 살결을 느낄 정도로 여섯 번이나 볼을 부비며 작별 인사를 했다. 그녀를 먼저 배웅한 후 우린 동물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또 다른 길로 돌아왔다. 중앙선이 표시되지 않은 2차선 도로는 정말 가혹할 정도로 굽이쳤으나 내려오는 경치는 끝내줬다. "저런 곳에 사람이 산다는 것이 말이 되니? 저기가 사람이 사는 곳이 맞니?"라는 내 물음에 현은 시큰둥하게 말이 된단다. 아직 인간 세상을 6년 밖에 살아보지 못해 뭘 제대로 몰라 하는 소리다. 이건 불공평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마도 안토니아가 집으로 돌아갔을 시간 즈음에 비가 후둑후둑 떨어진다. 빨래줄 한 가득 널어놓은 우리 빨래, 그중에서도 하필 부피가 큰 이불이 걱정된다.
'에휴~. 다 젖었다.'숙소로 돌아오니 빨래 줄이 비었다. 알고 보니 옆집 풍차의 나라에선 빨래를 다 걷어 탁자 밑에 넣어주었고, 뒷집 낙농업의 나라에선 의자를 다 걷어 자기네 집 처마 밑에 잘 포개어 놓았다. 볼차노가 기분 좋아진다. 우리가 계획을 수정해 2일을 더 묵기로 한 건 아마도 안토니아와의 만남과 인심 좋은 이웃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맞벌이 엄마, 아빠, 5살, 7살 두 딸은 직장과 유치원을 쉬고 쉼(태국), 사랑(터키), 도전(유럽캠핑)을 주제로 5개월간 여행하였습니다. 본 여행 에세이는 그중 도전을 주제로 한 유럽캠핑에 관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