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 만에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버렸던 곳에 꽃을 바쳤다.
11일 오후 1시경. 김덕모(76, 마산)씨가 창원 '김주열열사 시신인양지점-4월혁명이 시작된 곳'이라 새겨진 동판 위에 국화꽃 한 송이를 놓았다.
김주열열사시신인양지 문화재구역에서 열린 '제56주년 4·11 민주항쟁 기념 및 김주열 열사 추모식'에 참석한 김덕모씨는 행사를 마친 뒤, 몸이 불편해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헌화했고, 꽃을 바친 뒤 일어서서 손을 가슴에 얹었다.
김주열열사시신인양지는 지난 2011년 9월 22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77호'로 지정된 곳이고, (사)3·15의거열사김주열기념사업회는 2013년 4월 이곳에 '기념 동판'을 설치했다.
김덕모씨는 1960년 '3․15의거'에 참여했다가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죽은 김주열 열사(당시 17살)의 시신을 경찰이 마산 앞바다에 버릴 때 차량을 몰았던 운전사였다.
당시 20살이던 김씨는 경찰이 시키자 차량을 운전하게 되었다. 김씨는 지난해 말, 김영만 전 3․15의거열사김주열기념사업회 회장에게 이같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올해 3․15의거 기념일을 앞둔 지난 3월 13일에는 창원 구암동 소재 국립3․15묘지를 찾아 김주열 열사 묘소(가묘)에 무릎을 꿇고 헌화하기도 했다.
1960년 4월 11일은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 앞 바다에서 떠오른 날이다. 마산사람들은 이날을 '4·11 민주항쟁'이라 부르며, 이는 4·19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김덕모씨는 "당시 김주열 열사의 끔찍했던 모습이 56년이나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며 "그동안 이곳에 와 보고 싶었지만 오지 않았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국화꽃 한 송이라도 바칠 수 있어 다행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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