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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3일 선거를 앞두고 4월 8일에 미리 선거를 할 수 있어서, 유채길을 걸어서 면소재지로 갔습니다.
 4월 13일 선거를 앞두고 4월 8일에 미리 선거를 할 수 있어서, 유채길을 걸어서 면소재지로 갔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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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은 투표를 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올해에는 4월 8일하고 9일 이틀에 걸쳐서 미리 투표를 할 수 있어요. 저희 식구가 지내는 전남 고흥에서는 4월 8일을 앞두고 마을방송이 아침 낮 저녁으로 나왔는데, 4월 8일하고 9일에 '미리 투표'를 하라는 이야기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마을방송을 고흥군 선관위에서 하루에 너덧 차례 즈음 하니 살짝 귀가 따가웠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들일을 하느라 방송을 놓칠 수도 있다지만 쩌렁쩌렁 울리는 방송을 날마다 몇 차례씩 여러 날에 걸쳐서 수없이 해야 했을까 싶었어요.

바야흐로 봄날을 맞이해서 마을논에 유채꽃이 노랗게 물결을 이룹니다. 4월 한복판으로 접어들어야 아주 빛나는 노란물결이 되겠구나 싶지만, 4월 8일 즈음만 하더라도 노란물결이 몹시 고와요. 그래서 우리는 면소재지까지 씩씩하게 걸어가기로 합니다. 유채놀이도 하고, 투표도 하고, 아이들은 꽃삽을 쥐고 흙을 파면서 놀기로 합니다.

 비 오는 선거날을 맞이하고 보니, 해맑은 4월 8일에 유채길 걸으며 미리 선거하기를 잘 했구나 싶습니다.
 비 오는 선거날을 맞이하고 보니, 해맑은 4월 8일에 유채길 걸으며 미리 선거하기를 잘 했구나 싶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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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오십 분 즈음 걸어가는 들길을 꽃삽을 쥐고 씩씩하게 다녔습니다.
 아이들은 오십 분 즈음 걸어가는 들길을 꽃삽을 쥐고 씩씩하게 다녔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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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바람이 싱그럽습니다. 꽃바람을 가르는 군내버스를 바라봅니다. 새봄에 시골사람은 군내버스를 타도 신나는 '꽃길마실', 영어로 하자면 '드라이브'가 될 만합니다. 마을에서 읍내로 다녀오는 버스길도 싱그러운 꽃놀이가 될 만하달까요.

우리는 큰길이 아닌 논둑길을 걷습니다. 큰길에도 자동차는 거의 안 다니는 깊은 시골이지만, 꽃물결 한복판을 걸을 적에 한결 즐겁습니다. 두 아이는 어머니 겉옷을 받아서 해가리기를 하는지 그냥 덮어쓰는 놀이가 되는지 깔깔거립니다.

 아이들하고 유채길을 걸어갑니다. 가는 길에 군내버스도 만나지요.
 아이들하고 유채길을 걸어갑니다. 가는 길에 군내버스도 만나지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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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십 분 즈음 걷는 동안 군내버스를 두 번 만납니다. 면소재지 어귀에 닿을 무렵입니다.
 오십 분 즈음 걷는 동안 군내버스를 두 번 만납니다. 면소재지 어귀에 닿을 무렵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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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분 즈음 걸어서 면소재지 어귀에 닿을 무렵 군내버스를 또 한 번 만납니다. 자작나무가 한 그루 있고, 나즈막한 멧자락에 봄꽃이 알록달록한 모습이 해사합니다. 아, 이렇게 맑고 좋은 날 들마실을 하니 무척 즐겁네요. 투표도 투표이지만, 선거날에 앞서 미리 투표하는 곳에 가면서 한결 느긋하면서 가벼운 마음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새봄을 맞아서 밭을 일구면서 씨앗을 심느라 날마다 바쁘지만, 하루쯤 일손을 쉬면서 느긋하게 들숨을 마시면서 시골빛을 누리도록 해 주는 '미리하는 선거'라고 할까요.

면소재지 중학교에 닿습니다. 체육관으로 들어갈 즈음 '글씨를 읽을 줄 아는' 큰아이가 묻습니다.

"아버지, '사전선거'가 뭐야?"
"응, 먼저 선거를 하거나 미리 선거를 한다는 뜻이야."
"'선거'는 뭐야?"
"뽑는다는 말인데, 우리 고장을 돌보는 일을 맡을 사람을 뽑는 일을 가리켜."
"아, 그렇구나."

 시골에서는 한 표를 찍으러 가는 길도 향긋한 꽃길입니다.
 시골에서는 한 표를 찍으러 가는 길도 향긋한 꽃길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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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둑길을 걸어가면서 끝없이 놀고 웃고 노래합니다.
 논둑길을 걸어가면서 끝없이 놀고 웃고 노래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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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4월 8일하고 9일을 놓고 '사전선거일'이라고만 합니다. 사회에서 어른들은 이런 말을 그럭저럭 쓸 테지만, 아무래도 아이들한테는 안 쉬운 말이 되겠구나 싶고, 조금 더 헤아린다면 '미리'나 '먼저'라는 낱말을 쓰면 한결 나을 수 있지 싶습니다. "차 없는 날"이라는 이름을 쓰듯이 "미리 선거하는 날"이라든지 "먼저 선거하는 날" 같은 이름도 얼마든지 쓸 수 있겠지요.

 자작나무 둘레로 싱그러운 나무빛
 자작나무 둘레로 싱그러운 나무빛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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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그러운 봄날에, 싱그러운 마음을 품은 이들이 일꾼으로 뽑히기를 빕니다.
 싱그러운 봄날에, 싱그러운 마음을 품은 이들이 일꾼으로 뽑히기를 빕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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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선거#사전선거#시골노래#삶노래#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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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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