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만지게 하고 자연과 가까이 있으면 생태 교육이 잘 이루어질까. 내가 시골에 산다고 하니 도시에 사는 지인들은 연신 '부럽다'고 야단이다.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도 있겠지만 아이를 자연 속에서 친환경적으로 키우는 것이야말로 도시맘들의 로망일테니 말이다.
그런데 어쩐다, 정작 내 고민은 다른 데 있다. 농촌 시골이라는 공간이 아무래도 도시보다는 생태교육을 잘 할수 있는 환경은 되겠지만, 여건이 된다하여 생태적 사고가 저절로 움트는 것은 아닐 게다.
시골 살이는 무척 불편하다. 자연과 공생하고 삶에 '생태'이라는 단어를 붙이려면 그동안 누려왔던 문명의 편리함에서 벗어나 자발적인 불편함을 무릅쓰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노력은 머리로만은 되지 않는다.
시골에 살면서 '아, 내가 이 정도로 자연과 생명에 무딘 사람이었구나'라는 걸 느낄 때가 많다. 생태적 감수성이 메말라 있다면 일상 생활을 생태적인 방향으로 바꾸려는 노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익숙한 편리함에 쉽게 타협하거나 가치와 생활이 괴리되는 모순도 적당히 합리화 하게 된다.
내 경험으로는 교육 이전에 삶이 먼저다. 소유와 편리함에 대한 집착이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간소한 삶을 추구하는 것,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며 생태적 감수성을 잃지 않는 것, 손바닥 만한 텃밭이라도 직접 먹거리를 길러보면서 농업과 노동의 소중함을 체득하는 것 등 생태적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생태 교육도 있다.
나는 특별히 목적의식적으로 생태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강박이 없다. 그냥 내가 풀을 맬때 아들 녀석도 함께 풀을 뽑고, 마늘이나 파를 심을 때 아들 녀석 손에도 호미를 들려주는게 전부다.
생태 교육, 단계와 내용을 똑바로 알자
물론 아이와 대화를 하고 아이의 생태적 감수성을 북돋우기 위해서는 엄마인 나도 공부가 필요하다. 우석훈의 생태경제학 시리즈 2탄인 <생태 페다고지>는 탈토건 시대를 여는 생태교육에 관한 이야기다.
전작인 <생태요괴전>이 10대를 대상으로 한다면, <생태페다고지>는 10대를 가르쳐야 할 부모와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다. 드라큘라와 좀비, 프랑켄슈타인과 각종 귀신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생태요괴전>에 비해 다소 딱딱할지 모르겠지만, <생태 페다고지>는 생태와 교육의 연결이라는 막연한 문제의식을 구체화시키는데 영감을 제공한다.
그럼 생태 육아, 생태 교육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생태 육아로부터 초등-중등-고등학생 과정에 이르기까지의 단계를 구분하고, 각 단계별 생태 교육의 목표와 내용을 제시한다.
초등학생 때 중요한 것은 '생태적 감수성'이다. 자연 생태계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감탄하는 능력, 즉 '리액션'이다. 이를 통해 지구 생태계와 나와의 연결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굳이 생태 교육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감수성이 풍부하지 않으면 상상력은 빈곤해지고 삶이 재미없어진다. 이게 나이들면 들수록 더해질테니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감수성을 키우는 노력을 하는 것은 다른 어떤 이성적인 훈련보다 중요할 것이다.
중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생태적 지혜'다. 인간의 행위가 자연에 개입되면 필연적으로 오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자연의 수용 능력을 벗어나지 않고 인간의 오염 행위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생태적 지혜의 범주에 속한다. 중학생 정도 되면 의문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자동차 홍수와 초고층빌딩을 보면서 에너지 문제, 대기 오염 문제를 떠올리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고등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생태적 용기'다. 생태경제학적 측면에서 고등학생 나이면 이미 '정상적인 소비자'에 해당한다. 교육의 장치로서 생태에는 고등학생들의 실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현대 사회에서 다른 대부분의 권리는 투표권과 함께 생기지만 소비자로서의 권리, 시민으로서의 권리 그리고 때로는 직접행동권을 포함한 생태적 권리는 지금 십대들에게 특히 유의미하다.
개발과 경쟁이 판치는 세상에서 교육은 '최소한'이다. 저자는 "최소한, 교육이 경제적 욕망의 재생산 장치가 되어서는 우리의 미래가 곤란해진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생태교육은 출발한다"(217쪽)고 강조한다. '네가 아프니 내가 아픈 것'처럼 자연과 친숙해지면서 배워야 할 것은 '공존'의 정신이다. 생태계와의 공존이 요구하는 여러가지 속성들을 체득하면서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의 가치관을 세워가는 것이 생태 교육의 본질이다.
생태 육아의 대안은 마을의 복원 이제 초등학교 전 단계인 '유아기'로 가보자. 사회적 육아시스템과 돌봄 네트워크가 낙후한 조건에서 '생태 육아'는 특히 저소득층에게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기농 식단에 생태적 환경을 갖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필시 더 많은 보육비를 요구한다. 생태 육아라는 '고급스러운' 육아방식이 보편화되기 위해서는 육아의 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어린이집 교사들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개별육아 시스템에서는 아이들에게 생태적으로 안전한 환경, 생태적 복지를 제공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저자는 사회적 육아의 대안으로 '마을의 복원'을 역설한다.
'인간에게 생태적으로 가장 최적화된 삶은 마을의 삶, 즉 크기와 규모가 줄어든 삶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경제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공생 관계로 바뀌어야 하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의 물질적 기반으로서 마을이 필요하다. 마을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자기 미래의 삶의 공간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 이런 마을의 감수성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공생의 최종적 단계가 아닐까 한다.' (95쪽)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배울 수 있는 '생태적 자산'은 마을에 있다. 마을의 문화속에서 공생적 삶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며 자라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생태 육아의 핵심이다. 생태 육아는 그저 막연하게 아이를 흙 만지게 하면서 키우는 게 아니다. 사회적 육아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고 마을의 복원이다. 아이를 생태적으로 키우기 위해 엄마로서 참 할 일이 많다.
덧붙이는 글 | <생태 페다고지>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펴냄 / 2009. 9 / 11,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