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생명을 틔워내는 봄이 돌아왔지만 강정마을에는 여전히 한겨울의 매서운 찬바람이 불어 닥치고 있습니다. 해군이 강정마을에 34억여 원에 대한 구상권을 청구했기 때문입니다. 이게 과연 현실인가 싶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사태입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4월 10일부터 강정마을 내 충혼비 앞에 구상권 철회를 촉구하며 천막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들도 평범하게 농사짓고 자식들의 성장에서 행복을 느끼며 부모님과 오순도순 일상을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또 길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강정마을회는 지난 2016년 2월 26일 제주해군기지가 준공됨에 따라 2007년부터 지속해 온 반대 운동을 한 단락 매듭짓고 주민들의 평화롭고 안온한 삶의 영위를 보장하기 위해 생명평화문화마을 선포식을 했습니다. 그러나 해군의 무자비한 구상권 청구는 강정마을회와 주민들에게 평온한 삶을 택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34억 5천만 원이라는 액수34억 5천만 원이라는 액수는 정말이지 어처구니없이 크나큰 액수입니다. 세상이 하도 억억하는 형세라서 34억 5천만 원이 얼마나 되는 돈인지 감이 잘 안 오실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기소된 피소송인이 121명인데 34억 5천만 원을 121로 나누면 1인당 2850만 원가량 되는 돈입니다. 이 자체로도 엄청난 액수입니다.
문제는 이 구상권은 부정지연대채무라는 방식으로 청구되는데, 이 부정지연대채무라는 것은 121명이 위 금액을 나누어 부담하는 방식이 아니라 연대보증처럼 재산의 유무에 따라 차등 청구할 수도 있고, 아예 한 사람에게 집중하여 청구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또한 민사라서 재판이 3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되며 이 재판기간 동안 34억 5천만 원이라는 금액의 연리 15%의 이자가 복리로 증가한다는 점입니다. 재판이 5년을 넘길 경우 이자가 원금보다도 커지게 됩니다. 이 경우 1인당 5억6천만 원이 넘는 액수가 부과될 것이고, 재산이 있는 소수의 개인과 단체에 이 청구액이 집중될 경우 파산을 면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해군기지 반대운동으로 공사가 지연되어 발생된 손해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묻겠다는 해군과 정부의 태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국책사업을 시행함에 있어서 지역 주민의 동의와 협조를 제대로 구하지 않아 발생하는 민원으로 인해 공사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거나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였다고 해도, 그 원인제공은 국가가 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 손해는 고스란히 국가가 져야하는 것이 도의적으로 맞는 것입니다. 이는 국가가 부담해야하는 사회적 비용이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는 국책사업을 시행하며 당연히 그렇게 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정부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의문을 제기했던 강정마을회와 주민들, 그리고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공사 지연에 따른 손해에 책임을 묻겠다고 합니다.
사전에 주민설명회 한 번도 없이, 제대로 된 사전환경성 검토나 입지타당성 검토도 없이 사업을 일방적으로 진행했던 쪽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 해군입니다. 졸속적이며 민주적이지 못한 사업의 부당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합니다. 설령 이로 인하여 사업비가 추가로 들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전적으로 해군과 국가의 책임입니다.
대놓고 '죽으라'... 이게 '나라'인가요
34억 5천만 원이라는 청구금액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 금액 전체가 우리의 공사방해 활동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액이라고 볼 수도 없으며, 대부분은 오탁방지막 훼손이나 미설치, 15만톤 크루즈 입출항 관련 문제제기 및 청문회 등으로 인한 제주도정의 공사 중지 명령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실공사로 인해 지연된 책임은 묻지 않고 구상권을 힘없는 우리에게만 청구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도 않습니다.
또한 공사 지연에 의해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삼성물산이 해군에게 청구한 금액은 360억 원인데 이중에 273억 원이 대한상사중재원에 의해 인정되어 국방부 방위사업청 예산으로 물어준 것입니다.
273억 원 중 34억 5천만 원을 뺀 238억 5천만 원은 볼라벤 태풍에 의한 6기의 케이슨 파손과 1기의 훼손으로 인한 직접적 피해와 케이슨 해체 및 재제작, 2만톤급 플로팅독 추가구매, 케이슨 제작공정 연장에 따른 민원해소 비용들입니다. 이를 두고 천재지변이라 대한상사중재원은 판단했지만, 우리가 볼 때는 전적으로 입지조건을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한 해군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해군과 제주도정 등에게는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으며 가장 힘이 없는 강정마을에게만 책임을 묻겠다고 하는 것은 해도 해도 너무한 처사가 아닙니까?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설촌 45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강정마을의 평화롭던 공동체를 산산이 부수어 놓았습니다. 이로 인해 아픔과 고통을 받고 있는 주민들에게 구상권 청구를 통해 또 다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주는 행위는 잔인하기 그지없는 극악무도한 폭력입니다.
정부와 해군이 청구한 구상권은 사실상 '경제적 살인행위'에 가깝습니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때에는 '가만 있으라'로 국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더니 강정마을에서는 아예 대놓고 '죽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게 과연 '나라'인가요.
벌써 천막 농성을 시작한 지 1주일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해군기지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호소하다가 공권력에 짓밟히고 구속과 벌금폭탄까지 맞아왔습니다. 벌금을 감당하기 힘들어 마을회관을 매각해서라도 해결하려고 하자 주민들께서 적극적으로 말리셨습니다. 일제시대를 지내오면서도 내주지 않은 것이 마을회관이라구요.
아무리 벌금이 무겁고 어려워도, 마을회관을 팔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해도, 마을회관이 사라지면 우리 강정마을의 정신적 지주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려워도 마을회관을 팔지 않고 벌금폭탄을 견디어 왔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지켜온 마을 공동재산들이 구상권 청구가 철회되지 않으면 결국 다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길거리에 천막을 치고 임시 마을회관을 만들었습니다.
언제쯤 우리 강정마을 주민들은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정부와 해군이 답해야 할 때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고권일은 강정마을 부회장이자 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회 위원장입니다. 허핑턴 포스트에 중복게재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