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치러진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가히 '선거혁명'으로 규정할만한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새누리당 참패, 야권 승리'로 귀결된 선거 결과에 따른 수많은 이야기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의 지면에서도 통쾌한 내용의 언설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다.
'선거혁명'에 동참하지 못한 우리 고장에 대한 연민 나도 통쾌함을 발산하는 언설 하나를 즉각 보태고 싶었지만, 억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지역(충남 서산/태안)에서는 '선거혁명'에 동승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슬픔과 면구스러움을 갖게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서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월등하게 앞섰지만, 내가 사는 고장인 태안에서 표차가 많이 나서 새누리당 후보에게로 승리가 돌아갔다는 사실은 내 마음을 온통 포박할 정도였다.
태안 출신인 여권 계열의 무소속 후보(전 국세청장 한상율)가 생각만큼 여권표를 분산시키지 못해서 야당 후보는 어부지리 효과도 얻지 못한 셈이다. 제19대 총선 때 당선되어 의원 활동을 하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고, 그 후 검찰 조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까지 끊은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친제인 성일종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다. 기호 1번의 효력과 고 성완종 회장에 대한 동정심이 복합된 결과로 이해된다.
서산은 산업 발전에 따른 유입 인구도 많고 젊은 층도 많은 편이다. 당연히 박근혜 정권에 대한 심판 의지가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태안은 노년층이 압도적으로 많다. '민생고를 해결한 박정희'와 '불쌍한 박근혜'를 말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불쌍한 박 대통령에 대한 동정심과 고 성완종 회장에 대한 동정심은 일맥상통하는 것일 수도 있다.
태안에서 야당 후보의 열세를 극복지 못하여 결국 선거혁명에 동참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내게 묘한 열패감과 고장에 대한 연민을 갖게 한다. 선거혁명 의지를 발휘한 이웃 동네 서산 주민들에 대한 미안함도 크다. 서산 주민 몇 분과 통화를 하면서 미안함을 표했고, 야권이 분열한 상황에서도 전국적으로는 선거혁명을 이루었으니 그것으로 위안으로 삼자는 말도 나누었다.
분열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총선 직전에 쓴 내 글 <
각성하라, 분열을 패배를 낳는다>가 내포하고 있는 염려와 의도는 모두 들어맞은 편이다. 분열이 패배로 귀결된 현상들을 무시할 수 없다. 분열의 당사자인 안철수는 "양당 구도로 선거를 치렀으면 100% 졌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분열을 합리화하기 위한 궤변이다. 야권 후보들이 단일화를 하지 못해 새누리당 후보들이 어부지리로 당선한 곳은 경기 안산을 비롯하여 33개 지역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나는 분열이 패배를 낳는 일반적인 현상을 우려하면서도, 유권자들 스스로 표를 분산시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글을 썼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표의 분산을 막기 위한 의도로 그런 글을 썼던 것이다. 야권이 분열한 상황에서도 선거 혁명이 이루어졌으니, 내 글의 의도 또한 일정 부분 이루어진 셈이다.
호남을 석권하여 3당 구조를 성립시킨 안철수는 "우리가 3당 체제를 주도하겠다"는 말로 기염을 토하고 있는데, 자만심을 노출하는 말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는 좀 더 겸손해져야 한다. 자신이 분열의 당사자로 언제라도 분쟁의 도화선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호남의 유권자들이 그에게 민주주의의 선봉에 서라고 표를 주었지 '중립'을 잘 유지하거나 사안에 따라서는 새누리당에 잘 붙으라고 표를 준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야권 분열을 합리화하는 말을 하기에 앞서 앞으로 어떻게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며 정권교체를 이룰 것인가, 그 방도를 천명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이 훼손시킨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처참할 정도로 망쳐놓은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한 방책을 모색하는 일에 더불어민주당과 최대한 공조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
자신의 권력을 위한 소리(小利)에 집착하여 민주주의 복원과 경제회복 노력에 공조하지 않고 야권의 힘을 분산시키는 일에 매진한다면, 그에게 표를 준 호남 유권자들은 곧 후회하며 지지를 철회하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박지원도 처신을 잘해야 한다. 당선 후 맨 먼저 한 말이 "'문재인의 광주 발언'을 잘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너무 치졸하다. 문재인이 총선 전 광주를 방문했을 때 "호남이 저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날 것이고,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박지원은 그것을 호재로 여기는 듯하다. 문재인의 그 말을 가지고 '당선 인사'를 하기보다는 앞으로 민주주의를 복원하기 위한 의지와 방책을 먼저 표명했어야 한다.
깨진 콘크리트 틈새로 물도 흐르고 꽃도 피어날 터안양에서 사는 누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연히 선거 얘기가 나왔다. 70평생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선거를 치렀지만, 이번처럼 '재미있는' 선거는 처음이라고 했다. 재미있다는 표현이 너무도 재미있었다. 재미있는 선거도 있다는 사실이 문득 신기하기도 했다.
어제(16일) 우리 성당에서 혼인성사가 있었다. 성가대 봉사를 하고 나서 잔치 음식을 먹으며 동료 단원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선거 얘기가 나왔다. 한 친구가 "40% 콘크리트가 깨졌다"는 말을 했다. 모두들 그 말에 동의했다. 한 친구가 더욱 자매있는 말을 했다.
"콘크리트가 깨졌으니 그 틈새로 물도 흐르겠지. 그러면 거기에서 풀들도 나고 나무들도 자라겠지. 그리고 꽃들도 피어나겠지. 깨진 콘크리트 틈새에서 자란 나무에서 꽃이 피면 그 꽃송이를 하나 박근혜에게 보내줄까? 민주주의 꽃이라고 이름 붙여서…."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다. 콘크리트의 견고함만을 믿고 콘크리트 위에서 사는 사람은 나무도 새도 보지 못하고, 그만큼 세상을 모르는 사람이리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절로 내 목 안에서 노래가 나올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