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69, 50, 57, 60, 70'얼핏 '로또(Lotto)'처럼 보이는 이 숫자는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매년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 순위다. 지난 20일 공개된 '2016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대한민국은 전체 180개 대상국 가운데 70위를 기록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10단계나 떨어져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09년의 69위를 밀어내고 역대 최하위를 기록하게 됐다.
세계의 언론 자유를 증진시키고 언론 상황을 감시하는 RSF는 2002년부터 세계의 언론자유지수를 집계하기 시작했다. RSF는 세계 각국에 파견되어 있는 특파원과 저널리스트, 인권활동가, 법률전문인 등이 각 나라의 언론 자유 수준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이들이 매년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는 각국의 언론 환경을 평가하는 가장 공신력있고 권위있는 지표로 인정받고 있다.
대한민국의 언론자유지수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31위를 기록하며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급속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2009년에 69위까지 추락했고,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50위를 기록하며 반등하는가 싶더니 이후 매년 하락하고 있다. 급기야 올해는 70위를 기록하며 역대 최하위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RSF는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대한민국의 언론자유지수가 하락한 이유를 비교적 상세하게 밝혔다.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 치하에서 미디어와 정부 당국 사이의 관계가 매우 긴장스럽다"며 "정부는 비판을 점점 참지 못하고 있고 이미 양극화된 미디어에 대한 간섭으로 언론의 독립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최대 7년의 징역을 선고할 수 있는 명예훼손죄가 미디어 자기검열의 주된 이유"라며 "북한과의 관계에 대한 공공 토론은 국가보안법의 방해를 받고 있다. 이것 또한 온라인 검열의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성을 상실한 미디어 환경과 언론을 상대로한 정부의 소송 남발, 그리고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국가보안법 등이 대한민국의 언론자유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의미다.
RSF의 지적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언론의 독립성과 자율성,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같은 비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언론 장악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면서, 미디어법을 날치기시키고 언론사에는 낙하산을 투입시켰다.
그 결과 정권을 감시하고 권력의 부정과 부패를 고발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정권을 비호하고 권력의 부정과 부패를 방조하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박근혜 정부의 언론자유 위축을 비판하는 RSF의 핵심적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정부의 언론통제가 저널리즘의 실종으로 이어져 척박한 언론 환경을 조장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정부와 주류언론은 이같은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의 시선이 객관적 지표로 아주 유효하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의 열악한 언론자유 환경을 우려하는 RSF의 비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의 언론자유 위축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 비단 RSF뿐만이 아니다. 각국의 언론 환경을 평가하는 또 다른 국제언론감시단체인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언론자유도 조사에서 대한민국은 OECD 34개 회원국 중 30위를 기록해 '언론의 자유가 없는 국가'로 분류됐다. 프리덤하우스의 평가는 언론자유국의 지위를 잃은 2011년 이후 변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언론통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강압적 통치와 독단과 독선을 지적하는 세계 언론의 비판도 끊이질 않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시사주간지인 '더네이선'을 비롯,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로이터통신, 르 몽드 등 세계 유수의 신문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고압적인 통치행위를 비판하며 위협받고 있는 대한민국의 언론자유를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자유지수는 그 나라의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다. 그런 면에서 갈수록 하락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언론자유지수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하고 있다는 경고음이나 다름이 없다. 대한민국의 언론환경을 비판하는 세계언론의 시선 속에는 이처럼 간과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함의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세계언론의 날선 비판 속에 담겨있는 의미를 직시해야 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문제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의 '격(格)'에 대한 문제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국민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