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커피 한 잔보다 빨리 읽히는 그림책이지만 만드는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음식도 알고 먹으면 더 맛있지요. 책 만드는 과정도 알게 되면 그림책이 또 다르게 보일 거예요.
그래서 창작 그림책 제작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사실 책의 제작은 작가마다, 출판사마다, 책마다 다 경우가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시키는 건 쉽지 않지만, 통상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말이전 기사 [한권의 그림책이 나오기까지①]
'쓱' 읽는 그림책, 과정은 간단치가 않습니다에서 이어집니다.
3. 원화 완성이야기를 만들고 구성하는 과정은 거의 예외 없이 선행되지만, 3번 원화 완성, 4번 더미북 만들기, 5번 출판사와 만나기는 실제로는 순서가 바뀌거나,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케치 상태의 더미북을 여러 번 만들어 본 다음에 원화를 그린다거나, 출판사와 회의 끝에 원화를 수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원화 작업은 작가가 생각하기에 이야기의 내용과 잘 맞고 효과적인 표현을, 자신의 스타일로 구현해내는 과정입니다. 종이에 물감이나 건식 재료(색연필, 목탄, 연필 등)으로 그야말로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 전통적인 의미의 원화라면, 요즈음은 컴퓨터 그래픽으로만 작업을 하는 작가도 많습니다. 보통은 수작업과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혼용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원화라는 개념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4. 더미북 만들기그림책은 '그림'책일 뿐 아니라, 그림'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더미북을 만드는 것은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더미북이란 가제본을 뜻하는 말입니다.
한 장의 그림을 그려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과정에서 캐릭터도 챙기고, 담아야 하는 내용도 빠뜨리지 말아야 하고, 시각적으로 강약도 줘야 하고, 배경도 잘 처리해야 하지요. 그런데 한 장 한 장 훌륭하게 만들어놨는데, 책으로 엮으면 흐름이 툭툭 끊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상미는 빼어난데 스토리가 전달이 잘 안되어 감정이입이 어려운 영화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더미북을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툭하고 튀는 장면이 없는지, 흐름은 자연스러운지 말입니다.
스토리보드로 일련의 흐름을 볼 수는 있습니다만, 실제 책의 크기로 만들면 느낌이 상당히 다릅니다.
그림 자체는 좋았는데 책으로 만들면 너무 답답해 보이거나, 또는 너무 허전해 보이기도 하죠. 그래서 실제로 작가들은 더미북을 여러 권 만들게 됩니다. 고되고 번거로운 일이지만, 그래야 책의 완성도가 올라가기도 하고요.
자, 이제 더미북을 잘 만들었으면 출판사를 만나러 가볼까요.
5. 출판사와 만나기맛있게 책을 만들었으니 함께 읽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출판사는 작가의 책을 독자와 만나게 하는 중간 다리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지요. 자신의 작업과 잘 맞을 만한 출판사를 한 군데 (혹은 여러 곳) 선정해 직접 더미북을 보내거나, 혹은 이메일로 pdf 등 미리 보기 할 수 있는 형식의 파일로 만들어 보냅니다.
출판사 측에서도 투고 원고를 검토한 다음, 출판해 보고 싶은 책이라면 작가와 미팅을 하게 되지요. 작가가 먼저 이렇게 더미북까지 완성해서 보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출판사에서 먼저 그림책을 기획한 다음 작가에게 청탁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기획에 따라 글, 그림 작가가 다르기도 하죠.
출판사(편집자)와 작가는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파트너의 관계가 됩니다. 더 좋은 작업을 위해, 편집자가 의견을 제시하고 그것을 작가가 받아들이면 내용이 일부 수정되기도 합니다.
출판사가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작가도 여러 가지 조건이 맞게 되면 드디어 계약서를 쓰게 됩니다. 계약서 이후는 작가가 이만큼 달려온 만큼 또 해야 할 일이 생깁니다. 그 이후는 다음 회에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그림책을 만드는 프리랜스 디자이너입니다. 이 글은 그림책 출판사 이야기꽃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