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라는 이름 석 자를 머리에 새기게 된 것은 정말 우연한 계기였다. 2015년 10월 여의도 사학연금회관에서 열린 '독도, 일본 극우논리와 국내 학계 대응의 문제점'이라는 이름의 학술 세미나 자리에서였다.
이 세미나에서 신운용 박사(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책임연구원)는 '일본의 독도 침략 논리와 국내 학계의 추종-이른바 시네마현 고시 제40호의 실체와 박유하의 독도 주장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한 마디로 요약하면 '독도공유론'을 주장하는 박유하는 친일파라는 것이었다.
독도공유론을 주장하는 박유하는 <화해를 위해서>에 실린 '독도-다시 경계민의 사고를'이라는 글에서 "차라리 독도를 양국의 공동 영역으로 하면 어떨까 (......) 전쟁을 하면서까지, 즉 평화를 훼손하면서까지 '지킬' 가치가 있는 영토란 없다"라면서 최상의 가치는 '한일 간의 평화'임을 강조했다.
이 같은 박유하의 '독도 공유론'에 대해 일본 지식인들은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고, <화해를 위해서>는 2007년 아사히신문사의 오사라기 지로 논단상을 수상했다. 신 박사는 '친한파 일본지식인'과 손발을 맞춰가면서 독도공유론을 주장하는 박유하 교수는 '사상적 확신범'이며, 식민사관에 경도된 '사상활동'을 벌이는 식민지근대화론자, 친일파 지식인이라 규정했다. 겉으로는 한일 화해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사안마다 일본의 주장을 대변한다는 것이었다.
이날 세미나 참석 이후 박유하 교수가 단지 <제국의 위안부>라는 저서로 '위안부 논쟁'을 불러일으킨 일문학자가 아니라 역사 교과서, 야스쿠니신사, 독도 문제로 논란이 생겼을 때 일본의 입장을 전파하는 '친일파 지식인'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겼다.
박유하 교수 본인 스스로도 '친일파'라는 호칭을 마다하지는 않는다. 이미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에 발간된 <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 서문에서 박유하는 "어쩌면 이 책이 일본을 옹호하는 책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누구도 '옹호'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타자와의 '공존'의 모색"이라고 덧붙인다.
책 에필로그에서 그는 자신의 이런 노력이 "친일파로 보이는 두려움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고 밝히면서, '친일파'가 되기를 자원한다.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대체적으로 호의적인 일본인들을 '친한파'라 칭하는 의미에서라면, 나는 '친일파'라고 그리고 최고조로 보이는 지금의 한일관계가 한두 마디의 '망언'으로 깨지지 않는 탄탄한 관계로 이어지려면, 맹목적인 반일파나 반한파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을 필요할 때 가차 없이 가할 수 있는 친일파와 친한파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해방 후50년 이상이 지났으니 이제 구 친일파 아닌 신 친일파쯤이 있어도 좋지 않은가?"<제국의 위안부>는 이처럼 자발적 신친일파를 자처하는 일본문학전문가가 쓴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식민지 피해자 입장에서 읽으면 불편하지만 신친일파의 입장에서 독해를 하면 술술 잘 읽힌다. 일본의 우익과 리버럴이 모두 환영하고 찬사를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상범 행세하는 명예훼손 피고인
나는 복자 (인쇄물에서 내용을 밝히지 않으려고 일부러 비운 자리에 ○○○ 따위의 표를 찍음) 처리된 삭제판 <제국의 위안부> 표지를 종로 교보문고 매대에서 처음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가해자가 피해자 흉내를 내고, 명예회복 하나 바라보며 살고 있는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한 '피고인'이 마치 사상의 자유를 억압받은 양심수, 사상범처럼 순교자 행세를 하는 것에 말문이 막혔다.
그 순간 <제국의 위안부>를 해부하는 책, 자발적으로 '제국의 동지' '제국의 변호인'이 된 박유하의 실체를 드러내는 책을 기획하기로 마음 먹었다.
복자 처리된 책은 법원에서 34곳 삭제 결정이 난 뒤에 제2판으로 다시 찍어서 서점에 배포한 책이었다. 이 책에는 '제2판 34곳 삭제판'이라는 글자가 훈장처럼 박혀 있었다.
그리고 표지를 감싼 붉은색 띠지에는 "<제국의 위안부>를 법정에서 광장으로, 2015년 11월 18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혐의 형사기소에"라는 광고 카피를 크게 적어 놓았다.
이는 마치도 승리자가 뿌린 호외와도 같아 보였다. 나눔의집 할머니들은 <제국의 위안부> 삭제판 발행 소식을 듣고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에 겨우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할머니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며 격노했다.
심지어 박유하 교수는 삭제판을 온라인에 무료로 배포하면서 "고통스러운 '위안부' 경험을 하셔야 했던 분들과 전 세계 한국 분들께 이 책을 바칩니다."(2016.2.1.)라는 말을 페이스북에 남겼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유희남 할머니는 "박 교수가 한국 여성으로 태어나 한국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면 그런 책을 팔겠다고 나서면 안 되지요."라고 말하는데, 그런 할머니에게 책을 바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의 '거짓말'
이 책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의 제목 후보 중의 하나는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의 거짓말>이었다. 주변 출판인들에게 물어봤을 때 반응도 좋았다. 그런데 집필에 참여한 재일교포 교수, 활동가가 강력히 반대했다.
'거짓말'이라는 말은 일본에서는 우익들이 위안부 문제로 논쟁할 때 즐겨 쓰는 속된 말이고, 그들처럼 감정적인 대응을 하지 말자는 이유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거짓말'이라는 제목을 포기한 게 아쉽지만 일본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재일교포 일본군 '위안부' 연구자의 의견을 존중할 필요가 있었다. 이분들은 20년 넘게 위안부 관련 연구와 운동을 해왔고 앞으로도 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제국의 위안부>를 세 글자로 요약하라고 하면 '거짓말'이 가장 적합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은 허위 사실을 적시해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제국의 위안부> 34군데의 내용에 대해 삭제 명령을 내렸다.
그 34곳의 '허위 사실'을 세 가지로 압축하면 '위안부는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다' '강제연행은 없었다' '위안부는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다'라고 할 수 있다.
올해 4월 18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형사재판에서 명예훼손혐의로 기소된 박유하 교수의 재판을 방청했다. 이날 박 교수는 "검찰이 위안부의 강제성 부인, 매춘부, 동지적 관계라는 세 가지 거짓말을 한 혐의로 나를 기소했다"며, 이에 관해 하나하나 상세히 반론을 폈다.
이에 대해 검사는 피고인 박유하가 '의도적'으로 역사사실을 왜곡하고, '교묘하게' 역접과 비약을 섞어서 허위사실을 적시했다고 반박했다. 앞으로의 재판에서도 위의 세 가지 사항이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것이 재판의 쟁점이 될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해서 쓸 말이 많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하고 한 가지만 적어본다. 그녀는 판검사, 기자, 학자, 대중을 향해 수십 번에 걸쳐서, 논란이 된 '자발적 매춘부'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오해이고 오독이고 의도적인 왜곡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여러 명의 연구자가 제국의 위안부를 읽은 뒤 박유하가 일본군 위안부를 여러 대목에서 '자발적 매춘부'로 규정했다고 판단했고, 재판부는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라는 구절을 삭제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라는 이미지를 우리가 부정해온 것 역시 그런 욕망,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296쪽, 삭제)'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를 무엇이라 읽어야 오독이 아닐까. 대략난감이다.
일본 우익의 거짓말
일본판 제1부 제1장 5절에는 한국판에 나오지 않는 <식민지의 거짓말>(植民地の<嘘>)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위안부를 매춘의 틀에서 파악하고 있는 박유하는 식민지조선의 업자, 가족, 딸 모두가 거짓말에 가담하게 되는데, "거기에 개재된 거짓말은 위안부가 될 운명의 여성들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 나아가 가족들을 그 구조로 들어서기 쉽게 하는, 무의식 속에서 공모한 것 <거짓말>이기도 했다"라고 쓴다.
그 거짓말은 종국엔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마지막 단계에서의 민족적인 차별을 정시(正視)하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했던" 민족의 거짓말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한 여성학자는 '일본어판'에만 있는 '민족의 거짓말(民族の嘘)'이란 표현을 보고 "이것은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주의적 인식-불온한 사기집단-을 교묘히 뒷받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일본 우익의 위안부 관련 집회에는 '거짓말'(lie, 噓), '날조'(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양 거짓으로 꾸밈)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일본 우익단체는 <제국의 위안부>에 나오는 사진과 박유하 교수가 고안한 '동지적 관계'라는 말을 적절히 배합해서 선전물을 만든다고 한다. 그들이 전단지에 넣기 좋아하고, 강변하는 핵심 주장은 이렇다.
-종군위안부는 돈 벌러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다.-강제연행은 날조다.-성노예는 거짓말이다.박유하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 집필 의도가 한일의 '화해'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책의 핵심 요지와 일본 우익의 핵심 슬로건이 거의 일치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 이는 360쪽에 달하는 본문 내용과 34곳의 삭제 문장을 살펴본 뒤 '제국의 위안부'라는 제목을 살펴보면 더욱 명확하게 감이 온다.
'제국의 위안부'라는 제목'제국의 위안부'라는 제목 자체가 일본군의 전쟁범죄를 덮을 목적으로 고안된 것 같다. 그 동안의 '위안부' 관련 책처럼 '일본군 위안부'라고 하지 않고 '제국의 위안부'라고 제목을 단 이유가 무엇일까. 거기에는 화해를 위해 '신친일파'를 자처하는 박유하의 몇 가지 '간계'가 엿보인다.
첫째, '제국의 위안부'라는 말은 조선인 위안부도 "어디까지나 '준일본인'으로서 제국의 일원이었"(60쪽)기에 일본군과 사랑도 나누는 '동지적 관계'에 있음을 암시한다.
두 번째, 이 책은 "위안부 문제를 단순히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제국'(국가의 세력확장)의 문제로 다루었"음을 강조한다. 일본 천황, 일본군국주의 책임 문제가 제국이라는 다분히 추상적인 이름으로 흐려진다.
세 번째, "아시아의 불행은 서양의 제국주의에서 시작된 것"(298쪽)이라며 전쟁범죄, '위안부' 문제의 근원적인 책임을 일본제국이 아닌 서양제국에게 떠넘긴다.
결국, '제국의 위안부'라는 말은 '조선인 위안부'를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로 만들어 일본군의 범죄를 면죄해 주는데 쓰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안부' (성노예) 문제는 단지 일본만의 책임이 아니며 일본보다 일찍 제국주의 확장을 한 서양에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초점을 흐리게 한다. 이처럼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 제목은 일본의 전쟁범죄, 식민지 지배 책임을 희석화, 추상화하고, 축소하는 데 활용된다.
일본 우익과 리버럴은 왜 <제국의 위안부>에 찬사를 보낼까<제국의 위안부>가 전하는 메시지는 일본의 우익뿐만 아니라 역사수정주의 성향을 보이는 일본 리버럴 지식인의 욕망, 요구와 딱 맞아떨어진다고 한다. <제국의 위안부>를 심도 깊게 비판해온 정영환 준교수(메이지가쿠인대학)는 "일본의 논단이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를 예찬하는 현상은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지적 퇴락'의 종착점이다"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 책이 일본 언론계에서 이토록 폭넓게 예찬 받은 것은 박유하씨가 일본사회의 지식인의 욕망을 민감하게 감지하여 전전의 대일본제국의 책임 부정과 전후사의 수정이라는 두 가지 역사수정주의에 호소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의미에서 '제국의 위안부' 현상이라는 것은 일본의 지식인, 언론계의 문제인 것이다."(정영환)이런 판단에 근거해 볼 때 일본의 '제국의 위안부 현상'은 의도적이고 정략적으로 조장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단지 박유하라는 여류작가, 여성교수 한 명의 독특한 해석에 지지를 보내는 게 아니라, 일본 내 역사수정주의와 맥을 같이 하기에 극찬해마지 않는 것이다.
일본에서 성행하는 역사수정주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증언과 자료를 제멋대로 짜깁기해서 조선인 '위안부' 상을 조작함으로써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군과 정부의 책임, 나아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 책임까지 부정, 왜곡"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고 한다(<Q&A '위안부' 문제와 식민지 지배 책임> 서문 참조)고 한다.
이것이 우리가 <제국의 위안부>를 경계해야 할 주요한 이유이고 '소모적' 논쟁을 감내해야 하는 까닭이다. '화해'의 담론으로 포장하고, 표현의 자유로 띠를 두르고, 사상 검열 당한 피해자 흉내를 내지만 '제국의 위안부'는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제국의 위안부'의 결정적 문제는 식민지 지배의 문제를 식민지 피해자가 아니고 제국의 눈, 가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박유하 교수의 태도에 대해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에서 이재승 교수는 "박 교수는 근본적으로 침략과 전쟁을 억압받는 여성이나 주권을 박탈당한 민족의 관점이 아니라 제국의 시선에서 제국의 변호사로서 다루고 있다"고 비판한다.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하여!'라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면서 <제국의 위안부>를 펴낸 당신은 누구 편인가? 엄연히 전쟁범죄 피해자가 실재하는 문제에서 '당신은 누구편인가'라는 질문은 단지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질문은 아니다. 한국과 일본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의 문제, 인권의 문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실린 글 '제국의 변호인'에서 손종업 교수가 박유하 교수에게 던진 말을 되새겨 본다.
"박유하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의 편익을 추구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녀의 책이 어떤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가가 문제일 따름이다. 학문은 '해결책'이 아니라 '진실' 또는 '사실'을 통해 기존의 패러다임과 맞서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최진섭 기자는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 기획자이자 필진 중 한 사람입니다.